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기획전: 사물들: 조각적 시도
기획: 김수정, 추성아, 최정윤
작가: 문이삭, 조재영, 최고은, 황수연
2017. 1. 11 ~ 2017. 2. 18 / 월요일 휴관
오프닝 리셉션 / 2016. 1. 11 수요일 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주말,공휴일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우리는 이제 세상을 평평한 모니터, 스마트폰 등을 통해 접한다. 직접 보고 느끼는 세상만큼이나 간접적인 창구를 통해 2차적 경험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면’이라는 인터페이스를 더 많은 작가들이 작품에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각문화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역으로 기존에 ‘조각’이라 불리던 형태의 작품, 3차원의 공간 안에서 하나의 덩어리(mass)로 존재하는 작품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질문해보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재료를 깎거나 뼈대에 살을 붙여 형상을 구현해내는 방식의 작품을 지칭한다. 그러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이 늘어나고, 또 하나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작가들 역시 매번 다른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 재료나 제작 방식으로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적 맥락 속에서 유의미한 ‘조각적인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와 연관된 형식적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물들: 조각적 시도(Things: Sculptural Practice)»는 이처럼 30대 초중반의 젊은 작가 네 명의 작품에서 나타난 각기 다른 방식의 조각적 시도를 탐색한다.
전시 제목에서 사용된 단어 ‘사물들’과 ‘조각적 시도’는 참여작가 네 명이 공통적으로 탐구하는 주요 키워드이다. 사물의 사전적 뜻은 “물질 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이르는 말”이다. 네 명의 작가가 제시하는 오브제는 각자가 바라보는 현실에서 만들어낸 삼차원적인 덩어리(mass)이다. 또한 이들의 조각적 시도는 사회적, 문화적 영역에 속하는 전통적 상징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특수한 가치보다 형태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탐구에서 출발하여 각기 다른 감각을 수단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참여작가 문이삭, 조재영, 최고은, 황수연은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이 아닌 재료의 선택, 제작 방법, 작품의 형태를 통해 덩어리를 인식하고 만들어내는 현재의 조각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들의 조각적 시도는 가장 먼저 완성된 형태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제작 과정 혹은 지시하는 상태에 초점을 둔다.
문이삭(b.1986)은 사용자가 평면과 입체-사물을 대하는 시각성을 기반으로 하는 3D제작 프로그램의 뷰포트(Viewport) 문법을 참조하여 이미지를 물리적 공간 안에서 재병합한다. 문이삭은 스크린 속에서 평면일 뿐인 4개의 시점(위, 전면, 왼쪽, 투시)을 입체로 변환하고 육면체 스티로폼을 기본 재료로 열선을 활용하여 어떤 ‘사물’을 만들어낸다. 열선에 추를 매달아 스티로폼을 깎아 나가는 제작 과정에서 중력, 시간, 재료로 인한 변수가 발생하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하나의 매스가 생성된다. 그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기본 입체도형 소스에서 시작해 다양한 사물, 이후에는 조각의 가장 전통적인 소재인 인체까지 다루고 있다. 상징적 의미를 갖는 인물의 두상이나 신체를 모티프로 삼지만, 특정 도상이 갖는 서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형태적 실험을 위한 요소로만 활용한다. 나아가, ‹세례요한의 두상(Head of ST John)›(2016) 시리즈에서는 3D프로그램의 4가지 시점을 기반으로 만든 스티로폼 두상을 전통적 방식의 소조의 기법을 활용해 만든 점토 가면으로 덮기도 했다. 이와 같이, 문이삭은 스크린의 내부(2차원)와 외부(3차원)의 충돌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표면을 매핑하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변수들이 포함된 모든 것을 일련의 ‘사건’이라고 지칭한다.
문이삭, 세례요한의 두상 6(Head of ST John 6), 2016, 발포폴리스틸렌, 아이소핑크, 에폭시, 레진, 안료, 탈크, 32x43x37cm
문이삭, 표준원형(지표면, 튜브1, 주전자2) 2016, 스티로폼, 아크릴채색, 에폭시코팅, 23x42x25cm, 34x37x32cm, 36x45x34cm
조재영(b.1979)은 기존의 오브제를 해체해 재조합 하거나, 특정 대상을 비전통적 방식으로 구현해내는 데 관심을 갖는다. 원본성, 영원성, 권위 등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카드보드지와 같은 가벼운 재료로 만든 텅 빈 오브제이다. ‹Monster›(2016) 시리즈는 개별 대상의 구체적 형상이 아니라, 그것이 놓인 상황 자체를 프린트 스크린 하듯 캡쳐해내는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끝없이 변화하는 물리적 상황 혹은 상태처럼, 전시가 종료되고 나면 마치 세포가 분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만든 오브제 역시 계속해서 증식하고 변형된다. 각 면에 칠해진 각기 다른 색은 만들어진 시기 구분을 위해 덧입혀진 것이다. 특정 대상이나 사건을 언어로 규정하고 말할 때 그것의 본질과의 거리감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이는 어떤 오류 또는 오해를 낳는다. 이 때문에 작가는 식별 가능한 모든 대상을 숫자로 인지하여 어떤 중립성을 창출한다. 조재영은 일관되게 기하학적 선과 면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데,이를통해 앞이나뒤,위나아래,중심과 주변 등 그 어떤 차별이나 구분 없는 자율적이고 평등한 오브제가 생성된다.
조재영, Monster, 2015, 판지, 접착지, 목재, 바퀴, 가변설치
조재영, Through another way, 2014, 판지, 나무, 60x310x230cm
최고은(b.1985)은 기성 오브제가 지시하는 사물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인 기능을 배제하고 사물 자체가 담고 있는 순수한 재료와 색감에 집중하여 미학적인 지점을 도출해낸다.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물과 마주할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이면의 모습들의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역으로 드러내 물질에 대한 내밀한 관찰을 보여준다. ‹물物놀이(Material Pool)›(2015-2016) 시리즈의 경우, 거울의 뒷면을 작품의 요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량생산된 거울의 뒷면은 제조일과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마감되어 있고, 작가는 이러한 우연적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사물을 제작한다. 전통적인 조각의 맥락을 재치 있게 재해석해 보여주는 작품은 ‹토르소(Torso)›(2016) 시리즈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조각에 등장하는 토르소(Torso)는 이상적인 인체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파손된 인체 조각의 일부를 보여준다. 작가는 에어컨, 서랍장의 다리나 문짝등을 제거하고 속이 비어있는 형태를 제시한다. 조각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는 달라졌지만, 작가가 바라보는 토르소가 과거의 토르소와 일견 유사한 지점을 찾아볼 수 있다.
최고은, 토르소+물놀이(TORSO+MATERIAL POOL), 2016, 혼합재료, 가변크기
최고은, 물物놀이(MATERIAL POOL), 2015-2016 혼합재료
황수연(b.1981)은 네 명의 작가 중 가장 적극적으로 물질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탐구한다. 그 탐구는 새로운 ‘만들기’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작품 제작에 있어 작가의 신체적 활용과 개입이 필수적이다. 조각이 회화와 다르게 시각이 아닌 촉각을 우선으로 하는 것처럼, 황수연의 조각적 시도는 작가가 상상한 특정 질료에 대한 감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데 있다. 황수연은 작업 과정에서 촉각적 감각을 동원하여 외부의 힘이 개입한 이후에 전혀 다른 질량과 형태를 갖는 물질의 속성에 대해 연구한다. 즉, 그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위반하는 양감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호일, 모래 등과 같은 매우 예민하고 가벼운 소재를 이용해 이를 무겁고 단단한 물질로 탈바꿈시키는 식이다. 여기에 입체감이 형성된 유기적인 형태가 만들어지지만 그에게 특정 형태가 항상 중요하지는 않다. 이처럼 황수연의 작업은 감각에 기반한 불가능한 형상을 자신의 신체적 동력으로 완성하는 것을 기초한다. 또한 작가는 하나의 감각이 타 감각을 촉발하여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형상적 우연성과 지난한 작업의 시간성이 내포된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
황수연, 더 단단한(More Hard), 2014 알루미늄 호일, 가변크기
황수연, 더 무거운(Heavier), 2014 모래, 본드, 가변크기
한 때 조각은 납작한 조각, 가벼운 조각 등으로 대체되기도 하며 덩어리와 재료의 사용에 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조각적인 시도는 무엇일까. 우선 현재 동세대 작가들이 평면과 입체를 인식하는 지배적인 인터페이스가 모니터 및 스크린 상의 프로그램으로 대체됨에 따라 모니터를 통해 사물을 만들거나 더 원시적으로 조각적인 시도를 하는 양극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오래 전부터 조각가의 과업은 표면에서 덩어리를, 형태에서 용적을 파악해야 했던 것이 현재 이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나지만 그것이 명백하게오늘날의 조각적 시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되려 «사물들: 조각적 시도»의 작가들은 덩어리를 표방한 조각만이 갖고 있는 껍데기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 이는 평면이 가지지 못한 특수한 감각이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실체를 제시하고자 하고,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는 전통적인 조각에 대한 저항도 아니고, 그것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가장 적합한 방식의 조각적 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은 2011년에 시작한 신진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으로 한국 현대미술계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신진 큐레이터를 발굴, 지원한다. 매년 3명의 큐레이터를 선정하여 1년 동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 강의·세미나·워크샵으로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을 깊이 있게 다룬다. 1년의 교육기간 후, 두산갤러리에서 3인이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해, 그간의 연구를 구체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큐레이팅 기회를 갖게 한다. 2016년 제6회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참가자로 선정된 김수정, 추성아, 최정윤은 2016년 동안 기획자로서의 태도와 실무를 배울 수 있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공동기획 전시의 주제 연구와 각종 세미나를 진행했다.
[작가 소개]
문이삭 / 1986년 출생. 국민대학교 입체미술과와 동대학원 졸업. 공간413(2016, 서울, 한국)에서 개인전 개최, 아시아문화전당(2016), 스페이스K 광주(2013), 수원미술전시관(2013), 노암갤러리(2012), 아트+라운지 디방(2011)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
조재영 / 1979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 조소과 졸업.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예술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 금호미술관(2016), 갤러리 쿤스트독(2014)등에서 개인전 개최., 아모레퍼시픽미술관(2015), 문화역서울284(2014), 토탈미술관(2013)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
최고은 / 1985년 출생. 서울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김종영미술관(2016)에서 개인전 개최. 아트스페이스 오(2016), 인사미술공간(2016) 외 다수의 프로젝트 및 전시에 참여.
황수연 / 1981년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 조형예술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갤러리AG(2014)에서 개인전 개최. 커먼센터(2015), 금호미술관(2015)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
[기획자 소개]
김수정 / 1982년 출생. 순수 미술을 전공하며 미술사, 큐레이팅도 함께 공부했다. 전시장 지킴이, 도슨트, 인사동 갤러리를 차례로 거치며 일을 배웠고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3년 정도 재직하였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 오래 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아카데믹하면서도 실용적인 지식을 쌓았고, 인턴으로 근무한 퀸즈 미술관에서는 예술기관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브룩클린에 위치한 시각 예술 레지던시 ISCP를 끝으로 뉴욕에서의 실무 경험을 마감했으며, 현재 마음 맞는 두 친구와 공동 설립한 온라인 시각예술중심 플랫폼 '아트 트라이앵글'에서 전시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며 주변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최정윤 / 1986년 출생.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박사 과정에 있으며,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와 흥미롭게 본 전시에 관한 글을 쓴다. 부산비엔날레 《배움의 정원》(2012) 코디네이터, 월간 아트인컬처 기자(2013-4), 아시아문화개발원 공간기획팀 공공미술 담당 연구원(2015)으로 일했고, 《관계-수집: 윤정미 개인전》(2014), 《청춘과 잉여》(2014), 《룰즈》(2016)를 기획했다. 현장과 역사, 작품과 이론,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좇아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매순간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16년 12월부터 동료 작가 제니 조와 프로젝트스페이스 Weekend를 공동 운영한다.
추성아 / 1986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및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경영 석사과정을 마쳤다. 연희동 프로젝트, CJ문화재단, 금호미술관 등에서 전시 어시스턴트로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작가 비평 글쓰기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코디네이터로 재직 중이다. 주로 문학과 음악으로 작가의 작업을 해석하는 지점에 흥미를 가지며, 동연배 작가들의 작품 수집과 미술인으로서 동'세대'가 처한 각자의 위치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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