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6. 작품론20

아트경기_이병찬 작가 이병찬이 만든 거대한 생명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모습을 한 채로 시시각각 전시장에서 움직인다. 비닐을 라이터로 녹여 손으로 이어붙인 그의 작품은 얇고, 연약하고, 가벼운 재료인 비닐로 제작됐고, 텅 빈 내부에는 바람을 주입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보인다. 각기 다른 크기의 전시장을 거대한 스케일로 가득 채우며 관객을 압도하는 그의 작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인천 송도에서 학교를 다니며 허허벌판, 공사판이던 지역이 개발의 과정을 통해 자본의 위엄을 과시하는 새로운 도시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목도했다. 도시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다름 아닌 자본이다. 불안정한 주거 환경 속에서 수 차례 이사를 다니고, 자본의 논리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항상.. 2022. 10. 17.
아트경기_박해선 작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잘해야 한다” 같은 말을 여기저기서 흔하게 듣는다. 2022년 한국은 바쁘고 힘들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로 번아웃은 물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운동이든 취미생활이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또 새로운 하루를, 한주를 살아나간다. 예술의 역할이나 중요성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한다. 누군가는 새로움에 대한 추구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면, 누구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누군가는 치유나 심리적 만족감을 강조한다. 박해선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남들이 무심코 지나갈 법한 사소한 장면을 그린다. 원래의 가치를 상실하였거나, 온전하지 못하다는 이유.. 2022. 10. 17.
아트경기_장입규 작가 싸이월드에 미니룸이라고 각자의 미니홈페이지 안에 작은 방을 꾸며 만들어놓을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 있었다. (요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으로는 네이버의 제페토나 아크버스가 있다.) 가상공간에서 나를 대신할 아이콘의 머리모양, 옷, 표정 등을 고르고, 말풍선에 하고픈 말도 적어넣는다. 실제 내 방이 어떻든 상관없이, 미니룸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구와 사물들로 가득 채워넣을 수 있다. 우리는 실제 삶의 공간보다 더 빛나고 아름답고 귀엽게 미니룸을 꾸밀 수 있고, 나의 취향을 누구에게나 보여준다. 이곳은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의 과정을 정 반대로 뒤집어, 미니룸이 진짜라고 상정하고,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 미니룸의 모습을 똑같이 펼쳐보이는 걸 상상해본.. 2022. 10. 17.
[one work⑯] 국동완 <A Ferry> 2016 국동완 종이에 색연필 195x64cm 2016 국동완의 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6개월 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매일 일기쓰듯이 조금씩 채워나간 이 드로잉은 1mm도 안되는 듯 보이는 얇은 선들로 세밀하게 그려졌다. 그는 작품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천천히 나아가면서 그날그날 손이 움직이는 대로 배에 이야기를 입혔다. 관객은 오랜 시간 그림 앞에서서 작품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부분은 일본의 우끼요에를 떠오르게 하며, 어떤 부분은 미래주의적 다이내미즘을 연상시킨다. 배는 각기 다른 풍의 문양으로 여러가지 모습을 담은 옷을 입고 있다. 배 중앙에 위치한 창문은 마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영정사진처럼 새겨 넣었으며, 햄버거를 좋아.. 2016. 3. 10.
[one work⑮] 정희민 <dreamland> 2014 정희민 oil, acrylic on canvas 162.2x97cm 2014 정희민은 구글 맵을 통해 지구 저편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하고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공간을 화면 내에서 구현한다. 커서를 옮겨 뷰포인트를 바꾸다보면 어느 순간 연결된 이미지들이 깨지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 파편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포착한 화면은 모니터 위에서 재구성된 가상 현실에 다름 아니다. 화면 중앙에 두 번 반복해서 덧붙인 메모장의 만화 캐릭터와 이 그림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보이는 물결 문양은 관객들 눈 앞에 보이는 화면이 납작한 2차원의 평면임을 확인시켜주듯 삽입되어 있다. 하나의 완전무결해보이는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얼기설기 다시 엉겨붙어 생경한 미래도시 같은 풍경이 된다. * 정희.. 2016. 3. 10.
[one work⑭] 김화현 <Crimson/White> 2014 김화현 장지에 수묵 후 채색 49x39cm 2014 어렸을 때부터 한글과 영어를 만화책으로 공부했던 김화현. 그는 그가 가장 익숙한, 그리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에는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이 마른 몸과 가냘픈 얼굴선을 가진 젊은 남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의 그림이 동양화의 재료를 사용한 것이라는 점은 짚고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화현은 작품에서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등 양극점에 있는 요소들을 혼재하여 사용하거나, 어울리지 않을 법한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그가 사용하는 재료와도 깊은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지에는 아교포수를 하여 번짐을 줄이고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도록 처리하는데, 이는 영정화 등에서 주로 사용되던.. 2016. 2. 11.
[one work⑬] 민유정 <폭풍우 #1> 2012 oil on canvas 62x80cm 2012 민유정은 끔찍한 사건의 현장 사진을 주요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전쟁, 비행기 추락사고, 폭풍우, 지진, 등 다양한 인재 및 자연재해의 현장이 주제다. 그러나 언뜻 제목이나 설명을 읽지 않고 무심하게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파스텔 톤의 색채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밝고 아름다운 느낌마저 준다. 작가 역시 일반 대중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직접 겪지 않는 수많은 사고의 현장을 사진으로 접한다. 사진으로 포착되어 인터넷에 나열된 이미지들은 사건의 순간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특정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러티브 역시 점차 흐려진다.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득 품은 그의 작품에서 관객은 작가의 눈과 손이라는 필터를 거쳐 또다시 새로운 세계.. 2016. 2. 6.
[one work⑫] 천창환 <Fig> 2014 acrylic on cotton cloths 110x110cm 2014 천창환은 현존하는 이미지(기호)를 새롭게 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여관을 전전하며 돌아다니던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발길을 옮기던 중, 간판에 새겨진 붉은 사인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여관은 잠깐의 쾌락을 위한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거처를 찾지 못해 임시로 머무는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쉼의 공간일 것이다. 이처럼 공간 뿐만 아니라 이미지 역시, 그것을 보는 사람이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같은 대상을 다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천을 꾸깃꾸깃 접은 다음, 그 위에 그가 발견한 기호를 촘촘하게 새겼다. 이후 천을 펼치고 나머지 부분을 메꿔나가는.. 2016. 2. 2.
[one work⑪] 최정주 <찰칵> 2015 최정주 46x53cm 2015 최정주는 기존 영화의 한 장면을 가져다 그것을 캔버스 위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첫 번째는 키스 장면을 그린 시리즈였고, 두 번째는 잠자고 있는 인물 시리즈였다. 이 두 시리즈의 공통점은 기존에 존재하는 영상 속의 한 장면을 가져다 화면 위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냈다는 데 있었다. 두 시리즈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를 말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여행을 다니던 중, 혹은 일상에서 직접 찍은 스냅사진을 보고 그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을 지나다가 남아서 버려진 배달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비둘기 떼의 모습이라던지,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는 아파트 중앙의 놀이터 전경, 혹은 첨성대 앞에서 웃고 있는 애인의 모습 등을 그린다. 에스키스 대신 항상 붓을 먼저 .. 2016. 2. 2.
[one work⑩] 전현선 <서툰 관찰자의 기록> 2015 전현선 watercolor on canvas 162.2 x 372.7cm 2015 전현선은 캔버스 위에 수채물감에 미디엄을 섞어 그린다. 드로잉의 느낌에 가까우면서도, 납작한 물성이 강조되어 생생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화나 신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스스로 새로운 서사를 화면 위에서 만들어 나간다. 그는 "신화를 좇는 일이 과거로 떠나는 일 같지만, 그것이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상 속의 상황 속에서 그는 명쾌한 답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대상을 캔버스 위에 그리면서 그가 가장 자주 그렸던 형태는 원뿔이었다. 원뿔은 추상적이지만, 동시에 근원적인 형태감을 갖춘 대상이다. 원뿔은 특정한 대상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기호로서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 2016. 1. 24.
one work 시리즈 설명 일 년에도 수천 여 건의 전시가 열리고, 새로운 작가들이 미술계/대중에게 계속 소개된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붙잡지 않으면 작은 모래알들은 어느 새 우수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이미 전업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관련 평론글, 스테이트먼트, 전시서문 등 관련 텍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어느 정도 작품세계나 작업관이 구축되어 견고해진 상태의 작가의 경우에는 그를 설명하는 방식이 대부분 비슷한 경향을 띤다. 그래서 이미지 작업을 언어화하는 일이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그렇지만 전시 횟수나 작품 수가 많지 않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젊은 작가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젊은 작가의 작품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필자와 .. 2016. 1. 21.
[one work⑨] 문경의 <푱 푱푱 푱푱푱 푱> 2015 문경의 캔버스에 유채 162.2×260.6cm 2015 문경의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활용하여 작가가 영향을 받은 각종 소스들을 뒤섞어 만든 새로운 이미지를 그린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행사 어시스턴트로 고용된 두 젊은이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생존을 위해 알바를 해야하는 젊은 여성은 교복을 입고 여고생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며, 끝없이 울리는 전화벨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애니메이션 캐릭터 넥타이를 한 남성 역시 분주하다. 삼다수와 볼빅은 비슷한 디자인을 한 물병이다.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모종의 연관관계를 읽어낼 수 있는데, 사용된 언어가 우선 다르고, 변환되는 과정에서 원형 역시 변형된다. 이는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많은 미대생들이 겪는 상황과 닮아있다. 재료도, 기법도 .. 2016. 1. 21.
[one work⑧] 고근호 <A to A'> 2014 고근호 acrylic on canvas, 130.3*291.0cm (3 parts, 130.3*97.0cm each), 2014 고근호는 구글에서 기호 군집체인 유니코드 블락(unicode block)을 다운로드 받았다. 또한 스크린에서 매우 작은 크기로 존재하는 각종 화살표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모아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캔버스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화면 안에서 만들어진 A는 A'가 되고, A와 A'는 또 다른 A''가 되면서 이러한 반복의 행위가 이어져 나간다. 아무 색도 입히지 않은 퓨어한 바탕 위 에는 물을 섞지 않은 순도 백 퍼센트의 아크릴릭 물감을 진득하게 바른다. 각각의 이미지는 하나의 두께를 만들면서 레이어가 쌓일 수록 화면에서.. 2016. 1. 14.
[one work⑦] 강서경 <Mora> 2015 강서경 Gouache on mulberry papart mounted on canvas 50x40x12cm 2015 모라(Mora)는 국어국문학자료 사전에 따르면, "음의 길이에 있어 상대적인 단위"를 뜻한다. 단모음 1음절의 음장을 1모라, 장모음 1음절의 음장을 2모라로 취급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시간을 내포한 단위로 그것들이 모여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마치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문장과 문단을 이루듯이, 강서경의 최소 단위는 끝없이 증식 가능하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기본 단위가 연결돼 이어지는 형태인 셈이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는 정간보의 개념도 쓰고 있는데, 이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량악보로,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칸을 나누고 그 한 칸을 1박으로 인식.. 2016. 1. 14.
[one work⑥] 최수인 <구름 아래 우주선> 2015 최수인 Oil on canvas 227x145cm 2015 / oil on canvas 227x145cm 2015 / oil on canvas 227x145cm 2015 2009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최수인. 그가 꾸준히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에 관한 것이다. 그는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방어 심리와 그것을 잘 표현하기 위한 나만의 무대를 지속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초기 작품은 특정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당사자가 포즈를 취하고 세팅된 무대에 서 있는 장면들을 담고 있다. 자연물, 인물, 배경 등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특정한 심리적 분위기를 말하고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다 점차 한 인물의 개인적 경험으로 이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인공과 배경이.. 2016. 1. 14.
[one work⑤] 김미영 <A Freeze Fame> 2014 김미영 Oil on Canvas 97 x 130 cm 2014 작가에게 흰 화면은 벽에서 나무 지지대의 두께만큼 떨어져 존재하는 하나의 레이어다. "얇게, 두텁게, 빽빽하게, 느슨하게, 긋기도, 펴기도, 흘리기도, 누르기도, 긁어내기도" 하면서 이 모든 붓터치가 합쳐져 하나의 구멍을 메꾼다. 김미영은 캔버스를 일종의 게이트, 창문으로 생각한다. 세상과 작가 자신을 잇는 어떤 통로로서의 화면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게이트에 작가는 격자무늬를 반복해서 그려넣는데, 이는 창살의 은유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다양한 붓놀림으로 쌓아올린 색채 덩어리들을 일정 부분 '닦아 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흰 사각형 안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얹어 만드는 행위가 아닌, 기존에 쌓아올린 것을 덜어내는 방식을 활.. 2016. 1. 14.
[one work④] 노은주 <풍경1> 2015 노은주 oil on canvas 162.2x130.3cm 2015 노은주는 기존에 재건축 현장을 담은 보도사진을 변형한 이 시대의 풍경화를 줄곧 그려왔다. 집이라는 공간 구조가 인간의 삶에 직,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조망해보려 한 시도였다. 폐허가 된 오래된 집들, 그리고 하얗게 뒷 배경을 처리해서 초현실적 느낌을 부각시켰다. 배경과 더불어 아슬아슬하게 지탱되고 있는 나무, 종이 구조물들을 함께 그렸다.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대상은 폭삭 주져앉아 형체가 사라진 풍경과 대비를 이뤘다. 그러다 가장 최긍 작업은 조물주로서의 작가의 자의식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도시 곳곳에서 주워 모은 쓰레기, 혹은 건축 현장의 잔여물, 그리고 작가 자신이 직접 종이로 만든 구조물들을 함께 병치하여 일종의 2016년.. 2015. 12. 29.
[one work③] 채유수 <지하철> 2011 채유수 2011 지하철은 대도시에만 있다. 아파트 숲에서 사람들은 매일 아침 걸어나와 지하철에 몸을 싣고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지하철은 버스나 자동차에 비해 교통 체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이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시간을 더 들이더라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은 다들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다. 크로키(croquis)하기에는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가만히 있는 사람, 그리는 이를 의식하는 모델보다는 신경쓰지 않는 모델을 그리는 것이 수월하다. 채유수는 1, 2, 3, 5호선에 몸을 싣고 각 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재빨리 포착해 냈다. 그것은 몇 백, 몇 천 점이 되어 책 한 권으로 묶인다. 날짜 별로, 역 별로, 사전식으로 정리해서 엮었.. 2015. 12. 28.
[one work②] 이환희 <Grounds> 2015 이환희 Marker pencil drawing and oil on canvas 90.9x72.7cm 2015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여러 개의 이미지들을 불러 온다. 각각의 아트보드(artboard)들은 동일 선상에 놓여 평평하게 겹친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같은 툴의 사용이 누구보다도 익숙한 젊은 작가들에게 이러한 방식을 통한 이미지 배합은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마티에르(matière)가 강조된 부분, 싸이 톰블리의 낙서처럼 무심하게 마커로 그은 교차선, 심장과 그것에 연결된 정맥과 동맥처럼 보이는 저 구조물은 하늘에 둥 떠있듯 그림자가 바닥에 깔려 있다. 그림의 각 부분 부분들은 일러스트레이터 툴에서 불러다 모은 이미지들처럼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듯 있는듯 함께 부유한다. 그는 자신의 눈과, 귀.. 2015. 12. 27.
[one work①] 박정혜 <亡者’S> 2014 박정혜 Acrylic on canvas 9􀀚7x97cm 2014 화면 안에는 수박 씨앗 모양으로 잘린 색종이가 7장 겹쳐져 놓여 있다. 겨자색 사각형 넷과 검정 사각형 셋. 그 잘려나간 조각들 역시 화면의 빈 부분에 위치한다. 화면 안에는 작은 화면들이 계속 얹혀진다. 어떤 대상인지 쉽사리 인지할 수 없는 평면-조각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배경과 대상을 분리해서 인지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은 자못 초현실주의적으로 느껴진다. 음과 양, 안과 밖, 덧셈과 뺄셈, 자르기와 붙이기, 볼트와 너트 같이 쌍을 이루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그 짝이야 말로 한 쌍을 이뤄 새로운 것을 생성해내는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쌍을 이루는 요소들이 함께 놓여 있다는 점에서 '소우.. 201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