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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7. 번역, 요약

Tobin Siebers <Disability Aesthetics> 2010

by ㅊㅈㅇ 2018. 10. 12.

Introducing Disability Aesthetics.pdf

disability_최정윤.pdf


Tobin Siebers <Disability Aesthetics> 


인간의 몸은 미적 생산에 있어서 주체이자 객체가 된다몇몇 몸은 기쁨을 주지만 몇몇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18세기에 발명된 미적 무관심성의 개념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데, 이것은 예술의 즐거움을 육체의 즐거움에서 구별한다. 또한 20세기에 발명된 시각성의 개념은 시각적 인지방식의 육체적 특성을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비물질적인 미학은 몸의 역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예술의 정의를 제한한다

최근에는 점차 미적 대상의 물질성에 감정적인 반응을 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앤디 워홀의 자동차 사고, 재난 이미지 등에서는 미술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인간 육체의 연약함을 재현한다백남준, 메리 더피, 마크 퀸, 크리스 버든 등은 그들의 몸을 하나의 기구, 혹은 작품으로 활용한다. 얼굴이나 머리로 그림을 그리거나, 스스로를 총으로 쏘거나, 피를 얼려 조각을 만들거나, 그들 스스로를 일상적이고 동시에 비일상적인 상황에 위치시킨다. 

폴 멕카시, 타이리 가이튼, 데미안 허스트 등은 잔해, 쓰레기, 신체의 일부 등 미술 바깥의 영역의 것들을 미술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작업은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미학에 있어서의 새 영역을 개발해서도 아니고, 육체와 그것의 정서적 영역이라는 대상 그 자체에 미학을 돌아오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Disability Aesthetics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장애를 재현한 것을 이론화하려는 첫 시도이다. Disability Aesthetics는 미적 재현의 전통에 있어서 장애의 모습을 강조하는 비평적 컨셉트를 지칭하고자 붙였다. Disability Aesthetics는 균형, 완전함, 아름다움, 건강한 몸의 재현을 인식하는 것을 거부한다

나의 목표는 1) Disability를 하나의 비평적 프레임으로 만들어서 미적 생산과 감상의 정의에 내재된 가정에 질문을 던지는 것 2) disability를 미래의 발전에 가치가 있는 중요한 미적 가치로 설명하는 것내 주장은 disability를 받아들이는 것이 미의 인식을 확장시키고 다양화한다며, disability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예술적 아이디어와 대상을 제한하는 일이다. 이제 작가들은 내가 disability aesthetics 라고 부르는 것을 끌어안고 근본적인 미적 가정을 재고려하고 있다.

Disability는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결함, 퇴보, 일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인간의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우리의 식견을 넓혀주며, 미학의 역사에 있어서 있어온 가정들을 실험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중요한 것은 어떻게 작가들이 구체적으로 근원적인 미의 가정을 재고려하고 있는지 이며, 내가 disability aesthetics 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 이다.


양팔을 가졌더라면 밀로의 비너스 아름다운 신체의 전형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르네 마그리트는 그의 버전으로 비너스를 만들면서 채색을 했다. 잘려진 팔 부분을 어둡게 칠해서 고통스러운 절단의 흔적처럼 보이도록 했다. 현대미술에서 disability는 유니크한 소스로, 현재에 새롭게 창조된 과거이다.

나치 아트가 키치로 여겨지는 이유? 만약 육체의 완벽성을 쫓지 않았다면? 아르노 브레커의 조각이나 이보 사리제의 그림이나 모두 남성성, 여성성의 전형에 알맞은 육체의 형태를 보여준다. 남성은 벌크업된 근육의, 여성은 재생산이 가능한 건강한 몸.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건강해보일지라도 감정적으로는 텅빈 듯 보인다히틀러는 모딜리아니, 클레, 샤갈의 이미지를 불구가 된 것, 백치/천치, 열등한 인종 으로 평가하였는데, 현대미술에서 이들은 masterpiece로 평가 받는다

현대미술은 지속적으로 육체의 완결성, 하모니, 이런 것들을 거부하는 것의 연속이다. 만약 현대미술이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disability를 끌어안았기 때문이고, disability는 다른 버전의 아름다움이다.

1977년에 반달리즘이 있었는데, 램브란트의 초상화에 황산을 뿌려서 회복할 수 없게 명작을 망쳐놓은 일이 있었다. 문제는 이 중요한 작품이 더 이상 미술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이 아니라, 파손된 이 작업이 미적 역사에 있어서 더 최근의 단계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바로크적으로 보이지 않고, 더 현대적인 인상을 주는 것내 포인트는 반달리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disability의 효과를 미적 감상에 적용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disability는 현대미학에 있어서 필수적이며, disabilty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Paul McCarthy <Death Ship>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os Angeles,CA, performance 1981


Paul McCarthy <Mother Pig> Shushi Gallery, San Diego Performance 1983



두 명의 중요한 작가로, 폴 맥카시와 주디스 스콧이 있다.

폴 맥카시는 몸을 이용한 퍼포먼스와 음식이나 양념 등을 이용해 만드는 예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 대신 20세기의 프릭 쇼(기형인 사람이나 동물을 보여주는 쇼)에서처럼 신체의 변형/기형을 미술관 공간 안에서 노출시킨다. 그는 예술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능력이 있는 육체를 보여주는 데에 전문가이다.

<Hollywood Halloween>은 할로윈 마스크를 작가가 쓰고 있다가 그것을 찢어서 벗는 퍼포먼스이다. 이 마스크는 햄버거 고기와 케첩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것을 찢는 것은 일종의 스스로를 훼손하는 행위로 비춰진다. 이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육체적 변형이 가해질 때에는 개선이나 치료 등의 목적에 따라서 이뤄진다는 개념을 뒤엎는다. 

<Death Ship>은 배의 선장이 모자를 관객에게 내미는데, 관객을 여행으로 초대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육체, 음식, 오물 등이 뒤섞여 경계가 흐려진 곳이다. 캡틴이 그의 몸을 케첩과 다른 음식으로 문지르고, 그의 항문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feeding tube를 끼고 있다.

<Mother Pig>는 스스로를 하나의 조각처럼 만드는 과정인데. 가공육과 양념을 사용한다. 작가는 돼지 마스크를 쓰고 있고, 케첩으로 자신의 성기를 문지른다. 날 고기의 냄새와 톡쏘는 양념의 향이 퍼포먼스 공간에 침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일상의 음식과 살 냄새에 반응하는 것처럼 반응하게 만든다.

<Video of Fool>은 관객의 리액션을 보여준다. 즐거움에서 머뭇거림 그 다음에는 혐오로 감정이 변화한다. 음식으로 스스로를 문지르거나,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 반복하거나, 대중 앞에서 스스로를 애무하는 등의 행동들.

<Plaster Your Head into a Wall>은 작가가 그의 머리와 왼쪽 팔을 벽의 구멍에 집어 넣은 다음 오른 손을 이용해서 구멍을 석고 반죽으로 막는 작업이다.


Judith Scott, untitled, no date, Creative Growth Center


주디스 스콧. 

지적 장애와 예술 사이의 파열에 도전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섬유를 이용한 작업을 제작하는데,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조각저구형태가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전혀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미술관에 간 적도, 미술 책을 본 적도, 스스로가 작가인 것도, 예술을 만들려고 의도한 적도 없었다. 들리지도 않고, 말할 수도 없고, 소통이 불가한 상태로 고립되어 있었다. 35년동안 센터에 있다가, 쌍둥이 언니가 그녀를 구해서, creative growth center 에 보내주기 시작했다. 이곳은 장애인들이 시각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었다. 하루에 6시간씩 섬유를 이용해 조각을 만들었고, 이 페이스로 10년이 넘도록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작품을 만들어나가는데, 하나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탄생하게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 모양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스콧의 조각은 하나의 유니크한 바디의 인상을 주는 형태로 완성된다.

John MacGregor 라는 학자는 스콧의 작품을 오래 연구한 연구자인데, “심각한 정신 지체가 진실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을 못하게 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스콧은 분명히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가들이 그랬던 것 같이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 역사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예술의 개념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Disability는 여러 다른 주제처럼 하나의 주제가 아니다. 이것은 예술 작품 안에 내재된 개인적인 전기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액트도 아니다. 이것은 언급한 모든 것이며, 그 이상이다. disability는 미적 value 이며, 육체가 다른 육체가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에 관한 비평적 인지를 늘리는 일이다.

disability aestheticsdisability가 비평적 프레임-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미적 가정에 대해 질문하는, 그리고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미래의 개념에 대한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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