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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준 개인전 <Flowing Layers>(파이프갤러리, 2022.3.4-4.2)

by ㅊㅈㅇ 2022. 3. 15.

 

Pipe Gallery 전시 전경. 

 

본다는 것, 그린다는 것

 

회화, 환영(illusion)의 창()

홍성준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는 하늘과 바다가 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늘 혹은 바다의 풍경은 캔버스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임을 상기시켜 준다. 창을 통해 감상자는 하늘을 그리고 바다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회화를 하나의 창문으로 보는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로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는 건축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해 집에 창문을 많이 만들지 못했고, 실내에서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한 단순한 목적에서 그것을 그린 회화 작품을 실내에 걸었다. 화가는 회화 작품을 통해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 재편집하여, 평면을 바라보지만 입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원근법을 활용했는데, “회화는 세상을 향한 열린 창이라는 <회화론(On Painting)>(1435)이라는 책을 집필한 레온 바리스타 알베르티(L. B. Alberti, 1404~1472)의 표현은 당시 회화가 현실의 환영을 보여주는 창구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홍성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하늘과 바다의 이미지는 이렇듯 회화의 근원에 대한 레퍼런스처럼 읽힌다.

이번에는 하늘과 바다를 그린 작품들이 표현된 방식, 재료적 측면을 살펴보자. 홍성준이 그려 넣은 그림자와 명암의 상세한 표현은 그려진 대상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생생하게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내지만, 채색 이전에 캔버스 위에 한지를 얹고 밑칠을 하여 거친 질감이 도드라지게 된다. 이렇듯 밑바탕의 거친 질감은 그가 그린 풍경이 환영(幻影, illusion)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환영은 기만적 눈속임, 다시 말해, 감각의 왜곡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감상자의 눈앞에서 펼쳐진 멋진 풍경이, 매우 사실적이지만 그것이 진짜가 아닌 재현된 대상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메시지는 <Layers of the air>(2021)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가 캔버스 뒷면에 칠한 주황, 연두 등 형광색 면 때문에 더욱 견고해지는데, 그의 작품은 전시장에 걸렸을 때 해당색이 흰 벽에 반사되게 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실제가 아닌 막힌 평면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늘과 바다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으로서의 회화임을 강조하는 모티프였다면, 종이 혹은 사진처럼 얇은 면을 그린 <Study Layers>(2021) 시리즈는 회화가 환영임을 더욱 강하게 역설한다. 그가 만들어 낸 평면은 또 다른 평면 위에 쌓여 일종의 층을 만드는데, 종이와 같은 얇은 면은 평면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평면임을 확고하게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 홍성준은 회화가 현실의 환영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속임수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항상 함께 삽입함으로써 일종의 농담(pun)처럼 작동하게끔 했다.

2019년에 선보인 <IMG Drive> 시리즈는 캔버스가 마치 대리석처럼 표현된 바탕 위에 그려진 작품이다. 대리석처럼 보이는 문양은 큰 통에 기름과 물감을 섞고 캔버스를 담갔다 빼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흔적이다. 홍성준의 이러한 바탕 처리는 진짜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진짜처럼 보이는 눈속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다른 재료로 대리석과 비슷하게 구현해낸,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은 재료적 실험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플라톤이 복제물은 항상 원본보다 더 저급한 것으로 부정적으로 보았다면, 들뢰즈는 거짓은 참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분법적 시선을 탈피한다. 홍성준은 이처럼 환영적인 요소를 활용해 진실과 거짓을 말하는데 집중하지 않는 대신, 기존의 재료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탐색한다.

 

() 자체로서의 회화

모든 작가라면 자신이 다루는 재료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사용하는 재료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곧 좋은 작품이게 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마다, 혹은 작품마다 그 중에서 무엇이 우선하는지는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작품의 내용에 따라 매체를 선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재료에 따라 내용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그 두 가지 간극을 오가며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면, 작가로서의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지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홍성준은 그런 면에서 거침이 없어 보인다.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방문한 날, 작가는 작업실 구석 한편에서 물감 지층 덩어리를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은 갖은 종류의 재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들을 실험하는 데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해보고 싶은 것을 서슴지 않고 해보는 그의 추진력은 그로 하여금 재료 실험 그 자체를 작업으로 완성시킬 수 있도록 했다.

<Hanging>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아크릴릭 물감을 얇게 펴서 마치 종이처럼 만든 뒤, 건조 후에 그것을 떼어내어 그림의 바탕으로 사용하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인물을 그려 넣어 PVC 파이프 위에 걸어 문자 그대로 매달려(hanging) 있도록 설치했다. 2019년 라흰갤러리에서 선보인 <Hanging> 시리즈는 언뜻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모빌의 개별 요소들은 아크릴 물감을 얇게 발라 건조시켜 만든 표피(skin)이다. 이것 역시 앞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첫 눈에 보기에는 무언가를 닮은 복제품처럼 보이지만, 과정과 재료에 대해 알고 나면 그것이 재료적 실험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감상자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다가오지만, 반전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홍성준은 그림 자체에 정신적이거나 철학적인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지 않는 대신, 작품이 가지는 사물로서의 특성, () 자체로 바라보도록 한다.

아크릴릭 물감으로 만든 표피/면들은 여러 방식으로 전시되었는데, 그 중 <Study layers with acrylic skins>(2018)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파이프 위에 걸쳐놓은 채로 MDF로 만든 좌대 위에 아크릴 박스를 얹어 선보였다. 아크릴릭 물감으로 만든 스킨은 온도에 따라, 또는 놓는 방식에 따라 형태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차가운 물성을 가진 스테인리스 파이프 위에 무심하게 놓임으로써 물감의 물성이 대비되어 부각됐다. 2020년 학고재디자인: 프로젝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 <레이어스>에서 소개한 <Layers Unit>은 물감을 쌓은 덩어리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이다. 돌아가는 상자 위에 아크릴 물감을 쌓아 만든 사물/덩어리/조각을 얹어 재료가 가진 특성만을 강조하여 보여주었다.

회화 작품을 보는 사람은 단순하게 매끈한 평면으로 인식하고 쉬이 지나가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다면 회화 감상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지도 모른다. 캔버스 천을 사서 밑칠을 하고, 나무 프레임에 고정시키고, 한지나 다른 재료를 바탕에 깔아 질감을 만들고, 여러 차례 물감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뿌리고, 바르고, 칠하고, 긁고, 밀고, 담그고, 얹어두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는 보존을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한다. 이렇게 여러 층위의 레이어로 만들어진 것이 회화임을, 조금 더 직관적이고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작업이 탄생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게 한다.

<Condensed layers 1~50>(2022)는 여러 층의 레이어들로 구성된 회화 표면이다. 매번 다른 색의 물감을 쌓고 마르고 나면 또 다른 레이어를 얹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감상자가 보게 되는 가장 윗면에는 각기 각각 다른 회색으로 마감되어 있다. 재밌는 것은 이 작품이 물감을 밀어서 쌓은 것이라는 사실인데, 이러한 제작방식은 마치 벽돌을 쌓은 뒤 몰탈(mortar)을 이용해 미장을 하는 과정과 닮았다. 홍성준은 작품에 억지스러운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대신, () 자체로 회화를 바라보는 태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2019년에는 정샘물의 플래그십 스토어 플롭스(PLOPS)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정샘물은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속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홍성준의 작품을 보고 이러한 과정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작업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서 전시에 초대했다. 이런 저런 재료의 특성을 파악해서 실험해보고, 여러 층으로 쌓아서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메이크업과 회화가 닮은 지점이 있는 듯하다. 또한 2021년 쥬얼리브랜드 휴스타드(HUSTAD)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에서, 휴스타드는 홍성준 작가 특유의 레이어를 은으로 구현한 제품이 출시하였으며, 홍성준은 금속에서 느끼는 재료적 특성에 영감을 받아 은박과 한지를 사용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열린 태도로 미술 외 다른 영역 전문가와 소통하고 새로운 재료 실험에 임한 홍성준은, 이렇듯 무한히 자신의 활동 범주를 넓혀나가고 있다. 회화에 대한 그의 열렬한 사랑은, 다른 분야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통해 더 확장된다.

 

에어브러시와 아이패드

홍성준의 작업실에서 대화를 시작했을 때 그는 잠시 일어나 대화를 중단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사용 중이던 에어 콤프레서(air compressor)를 끄기 위해서다. 에어브러시는 공기압을 붓으로 사용하는 기법으로, 스프레이를 생각하면 쉽다. 도료를 분사하는 방식이라 붓자국을 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색을 덮을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떠올릴 수 있는 회화 작가 작업실의 전형이 캔버스 앞에 고독하게 앉아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면,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콤프레셔, 에어브러시, 그리고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스마트폰, 아이패드, 핸드폰과 컴퓨터까지. 작업실의 모습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계속 변화해가고 있는 듯했다. 또한 에어브러시는 화면에서 20cm 정도 거리를 두고 띄운 채로 분사해서 화면위에 고루 도포하는 방식으로 작은 입자로 뿌리는 것이다 보니, 호흡기에 입자가 들어가지 않도록 작가 역시도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해야 한다. 매끈하게 처리되는 표면, 빠른 속도감 등은 붓으로 그리던 그림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홍성준의 경우 세밀한 표현이 필요한 부분은 유화물감을 사용해 붓으로 그린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 자체가 영감의 주 원천이라고 말한 홍성준은, <IMG Drive> 시리즈를 통해 핸드폰 액정을 통해 보게 되는 수많은 이미지들과, 자신이 촬영한 사진들의 아카이브 그 자체를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다. 많은 작가들은 이제 실제 작업 이전에 컴퓨터를 이용해 사전 작업을 한다. 노트에 스케치를 하는 전통적인 방식도 있지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드로잉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온라인 툴에서 슥슥 긁어서 불투명한 창문을 닦은 것처럼 보이는 <2231> <2844> <2942>는 홍성준이 찍은 사진의 번호로 제목을 붙였다. 작가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반영된 작품 중 하나이다. 2021년에는 런던 왕립아카데미에서 영국의 회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116점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운 재료, 작업방식을 찾아나서는 것 역시 동시대 회화 작가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다.

이전에도 회화에서 에어브러시나 락카, 스프레이는 종종 사용되었다. 빈틈없이 빠르게 채색할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표현에 특화된 재료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완벽하게 마스킹 테이프로 처리하고, 또 공기압의 정도나 물감의 배합 비율 등 재료 숙달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는 재료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홍성준의 작품은 그의 개인적 특성이 드러나는 붓질(brush stroke)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붓질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평평하고 얇은 채색이 잘 어울린다.

 

문자, 이미지로의 가능성

2011년 작업부터 현재까지 홍성준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특성 중 하나는 바로 문자의 활용이다. 대부분 영어 단어로, 대문자로 쓰였다. 홍성준의 작품군 여럿 중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언어 기호의 사용이다. 문자는 항상 평면 위에서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회화 표면의 평면성을 명징하게 드러나게 하며, 더 나아가 기호로서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의미를 해체하며 언어기호의 이미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blue, violet, red, white, yellow, black>(2019)6개의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대리석처럼 표현된 표면 위에 직사각형으로 유동하듯 보이는 색면이 칠해져있고, 그 위에 영어 단어로 색의 명칭이 쓰여 있다. 홍성준은 물감을 여러 번 올려서 도톰하게 만든 뒤, 조각칼과 핸드 드릴로 깎아내는 방식을 이용해 부조처럼 표현했다. 재미있는 것은 뒤에 칠해진 색과 언어로 쓰인 색의 명칭이 불일치한다는 점인데, 이를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언어 기호와 회화 기호,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에 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layers of the air 2(skin)>(2021)은 청명한 하늘의 풍광을 담은 작품으로, 작품 중앙에 skin 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실제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착시를 느끼게 할 만큼 사실적인 하늘의 풍경 정 중앙에 삽입된 skin 이라는 언어 기호는, 그의 작품이 하나의 표피(skin)임을 잊지 않도록 재확인시켜주는 강력한 이정표로 작동한다.

<Untitled(JUST LEAVE IT)>(2012), <favourable circumstances>(2014), <UNFAMILIAR IN FAMILIAR>(2016), <Please>(2016), <FILTHY BUT FINE>(2017) 등 미술관을 비롯한 전시 공간에서 작품이 아닌,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재미있는 행위와 전시장에서 일어나지 말아야할 행위,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작품에서 다루어 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가늠할 수 없게 그려진 익명의 벽에 문자가 새겨져 있거나, 문자의 색이나 폰트를 달리해 단어를 분절하여 의미를 상상할 수 있게끔 했다. <Please>에는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한 문구인 ‘POST NO BILLS(벽보 금지)’를 주황빛 전단지로 가려,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도록 만듦으로써 더욱 이미지적인 기능을 하도록 했다.

 

나가는 말

홍성준은 회화의 근원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되어, 본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그린다면 왜 그려야하는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한다. 또한 그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는 데 거침이 없으며, 진지한 의미부여나 예술에 대한 폐쇄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더 열린 태도로 새로운 실험에 뛰어든다. 그의 솔직함은 여러 레이어가 쌓여 만들어진 회화의 재료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극대화된다. 본다는 것, 그리고 그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모든 회화작가가 끊임없이 안고 나아가야할 숙제와 같다. 그의 신나는 실험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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