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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인터뷰] 3D프린터의 무한한 가능성과 예술의 새로운 역할에 관하여 : 작가 하석준 인터뷰

by ㅊㅈㅇ 2016. 9. 22.

 


3D프린터의 무한한 가능성과 예술의 새로운 역할에 관하여

: 작가 하석준 인터뷰

 

3D프린터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관객에게 작가 하석준의 개인전 <달콤한 에너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사회 속의 새로운 예술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3D프린터를 품고 있는 비너스 조각상, 앞에 서면 인터액티브한 영상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수도자 상, 수십 개의 비너스 얼굴들이 모여 있는 평면 작업, 윈도우 갤러리에 나열되어 있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작은 오브제들, 그리고 그 과정을 작가가 직접 설명하고 있는 1인 미디어 영상까지, 각기 다른 매체, 형식의 작업들을 관통하는 그의 관심사에 관해 들어보자.

 

이번 전시의 제목이 <달콤한 에너지>이다. 달콤한 메이플 시럽 향기가 전시장에서 느껴진다.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서는 3D프린터 네 대가 항시 가동된다. 옥수수 전분과 사탕수수 등이 결합된 재료를 녹여서 오브제를 만드는데, 모터가 뜨겁게 돌아가고 재료와 만나면서 연기가 발생되고 동시에 달콤한 냄새가 난다. 작품 제작기간 내내 이런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가 처한 물리적인 환경에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제목인데, 실제로 작품에 활용되는 에너지, 기술이 주는 달콤한 편리함과 그에 수반되는 환경오염, 전자 쓰레기 등 나의 관심사 전반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선택하게 됐다.

기존 작업 세 점과 함께 지금까지 모은 3D프린터 출력물들을 윈도우에 배치한 작업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버전의 새로운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수도자-고통의 플랫폼> 시리즈는 개인전마다 매번 출품했다. 전시에서 기수처럼 꼭 필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상영되는 영상은 전시 주제에 따라서 매번 변경하는데, 이번에는 관객이 앞에 서면 비너스가 나오는 인터액티브 영상이 재생된다. 2012년 밀라노와 서울에서 광고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를 메고 걸어가는 퍼포먼스였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따라오기도 했다. 이런 맥락을 실내 전시장에서 전달하기 위해 인터액티브 영상을 활용했다. 이 작품은 이후의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처럼 기능한다.

<달콤한 비너스+레디메이커>3D프린터로 출력한 비너스 안에 실제 3D프린터가 들어있는 구조다. 계속해서 만들 준비가 된(Ready to make)’ 듯 보인다.

3D프린터는 초창기에 피규어나 마스코트 등을 제작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3D프린터는 산업혁명 시기의 증기기관차와 같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기계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생산 비용을 줄이고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이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더욱 뛰어난 신기술을 끊임없이 도입해야한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점차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Marginal Cost)으로 최적의 생산성에 도달하고 있다. 3D프린터는 새로운 제조 모델로, 이제 사람들은 필요한 제품이나 부품을 스스로 출력할 수 있고, 네트워크를 통해 오픈소스로 공유된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전통적 공장제조와는 달리 버려지는 원료를 최소화할 수 있다. 3D프린터는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력하는 형상을 비너스(Venus)로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중에 <치료자(The Healer)>(1937)를 보면, 사람의 몸통이 새장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몸통이 3D프린터로 이루어진 오브제를 만들어보게 됐다. 이종교배(hybrid) 할 때 어떤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가장 최신의 기술이다 보니 지극히 전통적이고 또 상징적인 도상을 활용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도상은 대부분 그리스 조각들이었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비너스 조각상을 3D스캐닝한 양질의 데이터가 온라인상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여담이지만 검색 중에 우리나라 입시미술학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데생 소묘용 석고상들에 관해서도 알게 됐다. 아그립바, 줄리앙 등의 석고상들은 일본에서 몰드를 수입해 캐스팅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캐스팅의 경우에는 좌우, 상하 반전 등의 변경이 실질적으로 불가하지만,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에는 손쉽게 데이터 조작이 가능하다.

말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이번 전시에 출품한 <달콤한 비너스>는 실제 비너스를 좌우 반전 효과를 줘서 변경한 버전이다. 프린터 위치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반대로 출력했지만, 디지털이 가능하게 하는 즉각성을 실험해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누구나 쉽게 복제하고 변경할 수 있는 상황을 드러내고 싶었다. 디지털이 주는 눈속임은 첨단 기술의 극점에 있는 특성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버전의 DIY 영상작업은 유투브(YouTube)에 올릴 예정이라고 들었다.

3D프린터를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 1인 미디어 형식의 동영상을 찍었다. 내가 작업하는 것을 고스란히 다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유투브, 비메오(Vimeo), 페이스북(Facebook) 등 인터넷상에 공유 플랫폼도 워낙 많다보니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업로드 할 계획이다. DIY동영상을 제작해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등장하게 될 네트워크 기반의 공유경제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의 예술의 역할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주는 형식 자체도 전통미술의 형식과는 다른 지점이 필요하다. 작가가 직접 재료, 기법 등 전반적 과정에 관해 공개한다.

삼성전자에서의 근무, 상업영상 제작 등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형식적, 내용적으로도 더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한 듯 보인다.

건축, 디자인, 공연,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다. 기술과 예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술은 한순간에 갑자기 등장할 수 있어도 예술을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스마트폰, 컴퓨터, VR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한순간에 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예술은 변화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기 때문에 정체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른 분야에서의 경험 때문일지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매체를 활용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다.

3D프린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가.

2012년 겨울 3D프린터를 만들어보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조소과를 나온 동료 작가 임도원의 제안으로 함께 해보게 됐다. 일부 조각가들은 누구나 손쉽게 조형물을 만들 수 있게 되는 새로운 기술을 극도로 싫어하고, 또 누군가는 신기술을 빨리 습득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후자에 속했다. 워크숍의 결과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계를 만들었지만, 수차례 분해와 재조립을 거치면서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임도원 작가는 20147월 미진사에서 <크리에이티브 3D 프린팅 &모델링>이라는 책도 펴냈다.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부상> 역시 3D프린터의 중요성에 관해 이론적 배경을 잘 정리하고 있어 일독을 권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처음 소형 컴퓨터(Personal Computer)가 들어왔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즈음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다. 그때 배웠던 프로그램은 아직도 쓰이고 있고, 코딩하는 데에도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3D프린터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예술과 재난>팀 멤버들과의 프로젝트로 보인다.

기후변화와 재난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제욱, 그리고 시각예술가 임도원, 신기운과 함께 3D프린터를 재난 지역으로 가져가 아이들의 망가진 장난감을 복원하고 교육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재난 지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과 기초적 지원이겠지만, 예술가가 개입해야 할 시점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3D프린터를 가지고 가서 아이들의 장난감을 고쳐줌으로써 상실감을 줄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맡았다. 앞으로도 예술과 재난 팀 프로젝트를 더욱 발전시키고 또 이어나가려고 구상하고 있다.

3D프린터로 만드는 예술 작품, 혹은 일상 소품들이 빠른 시일 내에 늘어날 것으로 보는가.

기존의 체제, 혹은 스타일이 쉽게 무너지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안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전통 조각 역시 3D프린터가 등장했다고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제 조소과와 같은 기존의 과들은 과 이름을 바꾸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고, 대학 내에도 3D프린터의 보급이 점차 증대되고 있는 추세다.

개인이 3D프린터를 쓰게 될 단계는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보급되기에는 아직 가격이 비싸고, 사용법이 복잡하다. 하지만 어느 날 알파고(AlphaGo)가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처럼 3D프린터 역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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