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에 보내는 경외감
인터넷 상의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SNS에서 친구를 맺은 지인들의 피드를 받아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대륙의 기상’ 시리즈를 접해본 적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륙의 박물관>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한 박물관의 전경이, <대륙의 핫소스>라는 제목 밑에는 스티로폼에 핫소스를 몇 방울 떨어뜨리자 스티로폼이 녹아내리는 모습이, <대륙의 얼룩말>에는 흰 말에 검정 줄을 그려넣은 말의 모습이, <대륙의 빵>에는 빵 앞부분에만 샌드위치 속이 들어있어 실상은 텅 빈 샌드위치의 사진이 실려있다. 수십, 수백 여장의 사진들은 중국에서 발견되는 기행 혹은 남다른 스케일을 가진 사건이나 장소 등을 보여준다. 이 시리즈의 사진들은 상식 선을 넘어서는 충격, 상상하기 힘든 웅장한 스케일, 혹은 어떤 상황에도 민첩하게 현실에 적응한 인물들에 집중한다. 이 사진을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놀람, 경외, 조롱 등 다양하다. 어차피 이 시리즈의 배경은 중국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게 될 확률은 거의 없고, 사람들은 그들을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 때문에 댓글에서 누리꾼들은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조롱의 태도 -지저분하고 덜 문명화된 상태라 무시하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대륙의 기상 시리즈의 핵심은 중국 본토에 대한 희화화이다. 인터넷 상에서 누리꾼들이 중국을 ‘대륙’이라고 부를 때에는 조롱조가 어느 정도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1
<동굴에 울려퍼지는 아주머님들의 노래> 148x104mm pencil and color pencil on paper 2015
<식후시간을 즐기는 을지로 아저씨> 257x364mm pencil and color pencil on paper 2016
호상근의 드로잉 중에서 사람들의 기행을 담은 시리즈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륙의 기상 시리즈를 대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동굴에 울려퍼지는 아주머님들의 노래>에서는 모두 비슷한 머리 모양으로 파마를 하고, 알록달록 총천연색의 등산복 자켓을 입은 아주머니 무리를 그렸고, <노을 지는 해변가>에서는 바닷가 석양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셀카를 남기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람만 있으면 됩니다>에서는 검정 손수건을 얼굴에 얹고 그것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전진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식후시간을 즐기는 을지로 아저씨>에서는 앞에 놓인 선반의 높이가 얼마가 되든 상관없이 한 쪽 다리를 그 위에 얹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위 작품에 관해 설명을 할 때에도 관객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고, 작가도 함께 웃었다. <00년 한의원>같은 경우에도 <따뜻한 냉커피>같은 짤방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악마의 편집’ 방식-나무에 가려서 1을 보지 못했던-을 작가가 체득하고 삶에서 적용한 경우였다.
하지만 소위 ‘짤방’이라고 불리는 이미지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것을 구현해내는 방식에 있다. 짤방은 인터넷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저용량의 이미지 위에 조악한 폰트를 사용해 짤막한 제목을 붙이는 형태로 주로 업로드 된다면, 호상근은 얇은 연필, 혹은 색연필을 가지고 섬세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을 그리는 일을 한다. 종이 위에 건성 재료를 이용해 친필로 써 내려간 엽서처럼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탄생된다. 이런 태도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는 단순히 조롱, 희화화의 의미로 이 이미지들을 재현해내고 있지는 않다고 보였다. 작가가 대상을 향해 갖는 일말의 경외(awe)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주차금지> 297x210mm pencil and color pencil on paper 2015
<주차금지> 235x163mm pencil and color pencil on paper 2011
작가의 이러한 태도가 가장 집약적으로 잘 드러나는 시리즈는 바로 ‘주차 금지’다. 사실 이제 많은 건물들은 지하주차장을 가지고 있고, 새로 지어진 건물일수록 자동 주차인식기까지 달려있고, 무인정산기 역시 확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주차 금지라는 표지판이 필요한 지역은 서울에서도 비교적 예전의 모습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 낡은 건물, 개발의 혜택을 덜 입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량생산된 일반적인 주차금지 표지판-주황색 플라스틱 판넬 위에 흰 글씨가 적힌-을 쓰지 않는 곳이라면, 음식점이나 공공기관 같은 기능을 가진 공간이 아니라, 사유지, 집 앞 일 가능성이 크다. 그 곳에다가 차를 주차한다고더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 같은, CCTV나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지 않을 곳이지만, 어쩌다가 누군가가 차를 세우면 집 주인이 매우 불편해지는 그런 곳 일테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굳이 돈을 들여 주차금지 표지판을 사지 않는 대신, 물리적으로 차가 들어와서 공간을 차지할 수 없도록, 빈 공간을 채우는 어떤 사물을 그곳에 놓기 시작한다. 커다란 빨간 ‘고무다라이’에다 흰 페인트로 주차금지 라고 쓰고 나서는 행여 그게 바람에 흔들릴까, 차주인이 손쉽게 그것을 들어서 옮길까 걱정이라도 되는냥, 무게나 꽤 나가는 흙을 성심성의껏 채우고, 그 위에 식물까지 심었다. 흰 버킷 위에 주황색 러버콘(rubber cone)을 얹고 빗자루를 뒤집어 끼워넣은 것도 있다. 작가는 이러한 오브제들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귀엽다”고 언급했으며, 이웃 주민들은 그 오브제가 누가 만든 것인지 알테니 흥미롭다고 했다. 삶에서 진짜 필요에 의해서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싸구려 오브제들을 얼기설기 모아서 만든 임시방편적 오브제이지만, 그것에는 만든 이의 미감이나 성격, 상황 등이 반영되어 있다. ‘생활의 달인’이나 ‘서민 갑부’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처럼, 사소하고, 하찮아 보일 수 있는 기술이나 어떤 대상으로부터 존경할만한 요소를 찾아내서 이질적인 공간에 있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도 재료적 변형이 비교적 자유자재로 이뤄진다는 점에서-종이 위에 색연필로 그렸던 이미지를 캔버스에 유화로 확대하여 똑같이 그리는 등- ‘어떻게’ 그리는지의 문제보다는 ‘무엇을’ 그리는 지가 작가에게 더 중요한듯 보였다. 그가 그릴 대상을 선택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작가 스스로 직접 보고 경험한 일상의 한 순간을 캡쳐하는 방식이었다. 후자에서 이미지가 선택되는 방식은 인터넷 상의 ‘짤방’이 가지는 희화화의 작용 메커니즘을 일견 닮아있다고 보았지만, 일부에서는 사소한 일상의 지혜에 대한 존경심이 드러나기도 했다. 위대한 마스터피스 한 점을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대신, 그는 작품 자체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가지고 다니면서 그릴 수 있는 손 쉬운 재료 위에 작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특이한 풍경의 사진을 찍어 즉각적으로 올리듯이, 세대적인 것으로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특유의 가벼움이 전반적으로 녹아 있고, 그런 솔직함이 즐겁게 혹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엽서로 돌려 보낸 작업들의 저작권 문제, 작품 보관의 문제에 관해 호상근 작가가 보였던 “아직까지 그런 나쁜 사람은 없었다”는 낙관주의적 태도처럼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쿨함’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http://www.thisisgame.com/webzine/gallery/tboard/?board=33&n=1107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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