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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1. 작가론

[작가론] 강현선(Kang Hyunseon): 진짜와 가짜가 섞인 세계

by ㅊㅈㅇ 2016. 11. 29.

강현선: 진짜와 가짜가 섞인 세계


우리는 모두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판별하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우리는 가짜를 더욱 진짜처럼 느끼는 삶을 살게 되었다. 컴퓨터, 텔레비전, 스마트폰까지 가짜를 진짜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구글에서는구글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미술을 접할 수 있도록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도 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일견 이러한 흐름에 역행(?) 하는 듯 보일 수 있겠지만, 강현선은 미디어 환경에서 체험하는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 세계에 옮겨놓음으로써 무엇이 진짜인지 혼동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가 놓인 상황을 다시금 살피게 한다.

<Gallery>(2003)은 유학 생활 가운데 현실에서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꼈던 강현선 작가가 빠져 있던 게임 심즈(sims)에서 가져온 장면을 현실세계에 펼쳐 보인 작업이다. 심즈라는 게임은 현실과 동일하게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집을 치우는 등 실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행위들을 플레이어가 직접 설정한 가상의 캐릭터를 빌어 하게 되는 형식을 가졌다. 강현선은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번 돈을 모두 모아 유명 미술 작품을 구입해 갤러리를 차린다. 웃으면서 작가가 회고하길, 게임 상에서도 갤러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이같은 게임 내의 세계를 현실세계로 다시 가져오게 된다. 가상 갤러리 이미지를 확대 출력하면서 픽셀이 깨지는 것도 개의치 않아 명백히 가짜임이 드러나는 형태를 취했으며, 더 나아가 실제 액자 몇 개를 그 위에 거는 등,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줄타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Deep Sworn Vow>(2006)에서는 발화자와 수용자의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용의 방식을 다룬다. 영국에 머무르면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영어 소리가 일부 한글처럼 느꼈던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 영화의 일정 부분을 편집해서 영어처럼 들리도록 만든 영상 작업이다. 특정한 반응을 기대하거나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수용자가 놓인 문화적 상황적 맥락 속에서 그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알게 한다. 이 같은 오해의 맥락을 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3년 공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한 전시<Dual City>에서는 게임의 캐릭터로 분한 동료의 사진을 합성하기도 하고, 여러 개의 브랜드 아파트 이미지를 섞어 하나의 아파트를 만들기도 했다.


 

<gallery> variable size, mixed media 2003 / <버티컬 가든> 디지털프린트, 가변크기, 2016


이번 전시 <튀어나온 돌과 펜스>(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6.11.11~30)에는 이전에 작업이 구사했던 여러 방식을 재호출하여 엮은 신작<버티컬 가든>(2016)을 출품했다. 아파트의 베란다 부분 사진 위에 그래픽으로 구사한 식물 이미지를 합성해서 넣고, 그것을 벽 전체에 가득할 만큼 거대한 크기로 출력해서 붙였다. 작품을 보는 관객은 전시장 안에 있는 동시에, 아파트의 베란다를 볼 수 있는 바깥의 위치에 선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사진의 실제 이미지와 합성해서 넣은 그래픽 이미지는 멀리서 봤을 때에는 큰 무리 없이 섞여 있지만, 가까이 가서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특정 부분은 진짜인척 하는 가짜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아파트>(2016)8곳의 아파트 내부 모습을 촬영해 이어붙인 영상 작품으로, 비록 여러 곳의 모습을 담은 것이지만, 공간이 균질하게 나누어져 있어 마치 한 장소를 보여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안에 각기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게 되면 그 가정만의 색깔의 묻어나면서 개별적 특성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은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현실을 지켜보는 대신,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도피처를 찾는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컴퓨터 게임이라든지, 만화같은 새로운 세계 말이다. 어렵고 무겁게 여겨지던 책 대신, 다른 종류의 인터페이스를 지닌 허구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고 여겨지는 가상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꿈꾼다. 실재와 가상을 혼동하는 사람들 중 소수는 현실 세계에서 폭력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상세계에서 발현되는 상상력 덕분에 삶이 더욱 즐거워지기도 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거리감만 유지할 수 있다면, 진짜 같은 가짜 덕분에 현실 세계가 더 풍요로워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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