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갤러리 설치 전경. 사진: 권현정
대량생산된 사물로 만든 조각적 오브제
: 작가 최고은 인터뷰
이번 전시에는 <물物놀이(MATERIAL POOL)> 6점을 출품했다. ‘사물을 가지고 어떤 놀이를 하는’ 작품처럼 읽힌다.
2016년 초 아트스페이스오에서 한 달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물物놀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4주 동안 전시장에서 실제로 작업을 하며 여러 사물들이 재료, 작품, 생활용품으로 호환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장면’을 가변적인 전시의 형태로 선보였다. <물物놀이>는 전시장에 정제된 결과물을 진열하는 형태의 전시라기보다는, 물질을 다루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재료나 행위의 개념에 대한 무게를 덜어내고 마치 놀이처럼 물질을 다루는 과정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낸 틀이다.
기성 오브제를 재료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친밀해진 가운데 보게 되는 사물 이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좋아한다. 평소 그저 배경으로 무심히 봐왔던 대상에 대해 불현듯 조각적인 호기심이나 기대가 생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재료로 취한다. 또한 기성 오브제를 사용하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소환하게 되는 미술사적 숙명도 재밌고도 지겹다.
기성 오브제가 지시하는 사물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인 기능을 배제하고 사물 자체가 담고 있는 순수한 재료와 색감에 집중하여 미학적인 요소를 도출해내고 있는 듯 보인다.
오브제가 지시하는 사회적, 문화적인 의미 같은 것들처럼, 작업을 할 때 감각에 계속 성가시게 따라붙는 것들에 대한 입장을 보이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난데없이 냉장고를 반으로 잘라 평상으로 너무 잘 쓴다거나 거울 뒷면의 색감에서 미학적인 지점을 도출하는데 몰두해버리거나 하는, 어찌 보면 무심함과 황당함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일종의 반응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거울, 에어콘, 냉장고 등 대량생산품이 필연적으로 갖는 특성을 작품에서 활용하는 것인가?
효율적인 기계공정으로 생산된 사물, 건축 환경은 일상이다. 평소 이것들이 어떻게 덩어리를 이루는지 자세히 보곤 하는데 많은 것들이 판재를 조립하거나 외피를 찍어낸 것에 표면을 장식한 채로 비어있다. 입체나 공간에 대한 이러한 경험은 작업에 영향을 준다. 오히려 맨질한 표면 그리고 빈 공간을 보게 한다. 또 어떤 면에서 기성 오브제는 유사성에 대한 감각을 생각해보게 하는데 그런 이유에서 제조년도, 생산업체, 사용 환경 등의 변수에 따라 묘하게 다른 백색 표면의 미세함에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기성품을 재료로 쓸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
재료를 다루는 원칙이나 순서를 정해둔 것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식자재를 손질할 때 생물의 뼈나 내장 따위를 발라내듯이, 재료를 세척하거나 내부의 각종 부품이나 말단의 장식을 제거하는 등의 수행하는 절차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는 오래두고 보면서 지속적으로 이것을 재료로 취하게 된 지점을 복기해보는 한편 조각의 몸체로서의 가능성을 살핀다. 내 작업은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에 가깝다.
작품을 제시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작업실에서 1차로 작업을 마친다면 작업이 전시 공간에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2차 작업이라 생각한다. 되도록 작업을 완전히 규정하기 보다는 상황에 반응하려하는 편인데 그런 측면에서 오브제라는 재료는 불안정하고 느슨하다.
일상에서 오브제를 경험하는 방식은 상당히 촉각적이다. 실제로 만지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시장에서 관객은 일정한 가시거리를 유지한 채 작품을 감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부 작품에 한해 사람들이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대하듯 전시장에서 작품 위에 직접 앉거나 만질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을 일상화하는 것 이외에도,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다른 작품이 내 작품의 영역을 침범하기’를 허락한 전시가 있었다. <실키 네이비 스킨>(2016)이다.
<실키 네이비 스킨>에서는 참여 작가 세 명의 작업을 물리적으로 겹쳐서 설치했다. 전시에서 내 작업은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활동하는 무대가 되었다. 나에게는 일종의 (다른 작가의) 새로운 동역학을 내 작업의 요소로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는 경험이었다. 상대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활용하도록 수용하는 일, 반응을 주고받는 일, 이 일련의 과정을 내 작업으로 소화해보는 경험을 통해 작품이 존재하는-서는 방법에 대해 이전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시도를 하게 된 점이 있다.
2016년 6월에 오픈베타공간 반지하에서 개최한 <식은 조각> 전시도 규격화된 재료를 사용해 다른 규격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이어지는 맥락이 있어 보인다.
<식은 조각>은 빠른 호흡으로 드로잉을 하듯 진행한 종이 조각 작업이었다. 종이의 물성이 마치 ‘식은’ 상태를 감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오브제가 크고 견고한 물성 때문에 계획을 세워가며 긴 호흡으로 수행해야하는 작업이었다면 종이 오브제는 그에 비해 싸고 다루기 수월하면서도 시트 구조의 입체라는 점에서 기존 작업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주로 스케치북이나 출력용지, 규격 봉투와 같은 종이 기성 오브제를 해체해서 재조합하는 종이로 된 조각을 만들었는데 이 작업은 이번 전시에 출품한 벽면 조각으로 이어졌다.
‘토르소’라는 키워드가 작품의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것 같다.
작년 개인전 전시 제목을 <토르소>라 지었다. 내 작품은 사물의 머리나 팔, 다리와 같은 말단이 되는 부분을 생략하는 방법을 통해 조각적인 미를 취한다는 측면에서 토르소와 일견 형식적인 유사성을 갖는다. 김종영미술관은 조각 전통의 미술관이다. 관람객은 미술관 정문으로 들어와 상설 전시와 야외 조각 정원을 거치며 김종영 조각가의 돌과 나무로 된 수공적인 조각 작품을 관람한 후 내 전시를 보게 되는데, 그런 장소적 상황이 흥미로웠다. 작품을 토르소라 명명한 것은 ‘이것이 토르소다’라기보다는 ‘왜 토르소가 아닌가? 그렇다면 토르소(의 조건)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됐으면 했기 때문이다.
<사물들: 조각적 시도> 전시에서 작품을 디스플레이하면서는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뒀는가?
전시장에는 유독 좌대나 가벽, 계단과 같은 공간 구조물이 많았다. 작품을 이와 병치하거나 벽으로 납작하게 펼쳐 배경이 되는 방법으로 조각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색면이 전시장에 배경처럼 놓임으로써 다른 작품과 관계하거나, 좌대 위에 작품을 얹는 전통적인 조각 설치 방식과 대조를 이루는 등 관객이 다른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내 작업을 바라보길 바랐다. 또한 참여 작가와 기획자가 조각을 바라보는 시선의 무게 차이가 흥미로웠다. 윈도우에서 작품이 장식적인 오브제로 배치된 듯 느껴졌는데, 같은 맥락에서 거울 수납장을 비일상적인 높이로 높게 설치한 것은 작업에서 고수했던 무게감을 덜어내는 새로운 시도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 달라.
며칠 전 2016년 작업 이미지를 묶어 일종의 애뉴얼 리포트 형식의 포트폴리오 북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전시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보여주는 방법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시도하는 일이다. 작품을 전시로 끊어 보여주거나 작품 개별에 집중하는 방식보다는 작품이 보여진 장면을 나열하는 방법을 떠올린다. 그리고 올해도 열심히 작업을 하자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겠다.
'Art > 5.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WEEKEND_이환희 작가와의 대화 (0) | 2017.02.08 |
---|---|
[인터뷰] 평등하고 자율적인 '상태'의 구현: 작가 조재영 인터뷰 (0) | 2017.02.08 |
[인터뷰]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작가 황경현 인터뷰 (0) | 2017.0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