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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인터뷰] WEEKEND_이환희 작가와의 대화

by ㅊㅈㅇ 2017. 2. 8.


위켄드 설치 전경.


이환희 작가와의 대화


일시: 2016.12.15. 14:00-16:00

장소: Weekend 위켄드

인터뷰어: 최정윤, 이나정


이환희는 2015년 COMMON CENTER의 그룹전 《오늘의 살롱 2015》에 참여하여 ⟨Grounds⟩(2015)를 비롯한 몇 점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조소과 출신인 작가가 점토로 직접 만든 오브제를 캔버스에 옮겼다는 점, 구성이나 색채 사용방식이 매우 비전통적 방식이라는 점 등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2014-15년에는 이미지의 클라우드화(cloudfication)[1] 과정을 언급하곤 했다. 클라우드(cloud)는 무의식적으로 이미지를 조합해서 만든 저장소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이미지들은 다시 수출, 번역되어 본인이 구축한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큰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자기-참조적인 작업이 계속 만들어지게 된다. 이전 작업의 특정 요소는 다음 작업에 영향을 주면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형태로 작업이 구축되는 것이다. 20호(72.7x60.6cm)의 크기로 이미지를 쭉 나열, 반복해왔는데 규격화된 크기가 주는 느낌이 작가가 말하는 클라우드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느껴졌다. 한편 이번 개인전이나 원앤제이 갤러리의 그룹전 ⟨룰즈⟩(2016)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큰 캔버스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클라우드의 개념이 작품에서 어떻게 실제로 활용되는 것인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품을 설명할 때 클라우드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과거의 작업은 촉각적이거나 이미지적인 모티브 아래에 완성된 것이다. 이를 클라우드화 시킨 다음 다시 각각의 이미지로 나눠진다는 의미에서 나는 아직 이 방식이 나의 작품에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미지를 클라우드화하는 것 보다는 형식적인 변화를 주는 등 하나의 모티브를 포착한 다음, 이전 작업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살펴본다.

예를 들어 ⟨Grounds⟩(2015)에서 선보인 면 분할법이라던가 색깔 배합 등 사소한 것들이 순환되어 다음 작업인 ⟨The Lucile Lortel⟩(2015)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살색과 분홍색의 조합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면을 분할하는 과정을 거쳐 조금 더 창의적인 드로잉으로 만들고 싶었다. 또한 ⟨A Lovely Day⟩(2016)와 ⟨A Massive Gut⟩(2016)은 이미지가 같지만 그것을 다루는 과정이 어떻게 전체적인 oeuvre에 영향을 주는가에 관심이 많다. 모티프를 받고 부하시켜서 다음 그림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A Lovely Day⟩(2016)가 처음 만들어졌는데 ⟨A Massive Gut⟩(2016)을 살펴보면 비슷한 요소들이 많다는 걸 찾을 수 있다. 부분적으로 확장, 축소하고 중간 부분만 그렸다가 위에 하얗게 깔끔하게 칠하고 분홍으로 칠했는데, 이것은 ⟨National Guard⟩(2016)의 분홍 부분과 흰 여백을 인용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클라우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미지가 클라우드를 크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했는데 지금 과정은 클라우드 자체에 속했던 모티프가 캔버스에 맞아 떨어지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다.

‘부하(stress)’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을 해석하자면 “이렇게까지 해도 그림이 되는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이미지에 대한 일반적인 규범을 깨려고 하는 것인가?

깨는 것이 아니고 깨짐의 바로 앞, 깨짐의 긴장 상태에 있는 회화성 조차 회화 화면의 최종성finality에 기여할 수 있을까-에 가깝다.

궁극적으로 작품이 이미지로 읽혀지고, 평면 회화로 존재하기를 바라는가?

회화 작품에 경우에는 회화라는 게임 안에 있었으면 한다.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 서 있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밀도, 혹은 완성도와 같은 것들의 줄타기를 재미있게 한다. 캔버스 위의 보더라인-조각성도 응시를 통해 결국 회화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업할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는가? 특별히 명확한 대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로 일반 관객들은 전시를 관람할 때 작품을 개인적인 경험이나 지식과 연결해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어떠한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나? 작품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형식실험 자체인 것인지, 개인의 삶에서 시각적인 것이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는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2~3년간의 전작들은 캔버스에 (제소까지만 바른) 여백이 많았다. 올해 초에 들어서 웬만하면 여백을 다 채워서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Spooky⟩(2016)를 보면 왼쪽 면이 비워져 있는데 올해 첫 번째로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마무리한 작업이다. 최대한 채워보자는 마음가짐과 여백을 유지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A Massive Gut⟩(2016)은 면 분할만 스케치해놨고, 그것을 캔버스에 옮기되 형광 마커로 화면을 꽉 채워보자는 것이 모티프였다. 이런 과정 자체가 아까 말한 부하의 일부분이다. 휘발성이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화면을 채울 때 어떤 효과가 나오느냐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재료적인 측면/형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이미지가 살아나기보다는 그냥 형식적인 그림이 된다. 요즘 이런 것들을 머릿속에서 통제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요즘 작업 방향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A Massive Gut⟩(2016)은 마커로 칠한 배경, 면 분할, 재사용된 이미지, 그리고 파란색 젤 미디움의 조합, 중간의 분홍색 물감을 연하게 바른 선,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해서 깔끔하게 처리한 면, 분홍색 면 덩어리 등 7~8의 모티프를 어우러지게 사용한 것이다. 올해에 쓰고 싶은 많은 모티프가 다 들어있는 작업이다.

왜 살색인가?

그냥 좋아한다. 독일제 슈민(Schmincke) 물감에서 Flesh Tint라는 물감을 쓰는데 사실 질이 좋은 물감은 아니다. 구성 성분도 레진이고. 그러나 발림성이 매우 좋다.

시각적인 이유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맞다. 색깔이 예뻐서이다. 최근엔 살색을 쓰는 비율을 조금 줄여가고 있다. 어쨌든 2015~2016 작업이고 그때는 살색이 강조된 모티프였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한 것이다.

작품이 하나하나를 가진 규칙이나 스스로 퀘스트 같은 것들이 매번 있었는데 작품이 작품을 낳는 맥락으로도 보여질 수 있겠다. 이러한 전체 구성을 염두에 둔 것 같은, 그러나 어울림이기도 하고 부조화 같기도 한 느낌이다.

그때그때 성취해내야 할 ‘퀘스트'나, 잘 지켜야 하는 ‘규칙'을 공유하는 작품들은 이미지와 색상/톤,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갖고 일하는지 등이 비슷하다. 작품이 작품을 낳는 구조 자체도 흥미를 갖고 있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독립적일 수 있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Gargoyles⟩들은 두 점이 하나로 연결된 작업이라고 언급했다. 제목 Gargoyles의 뜻이 무엇인가?

가고일은 건물에 붙어져 있는 석조각이다. 그렇게 제목을 짓게 된 이유가 화면 양 옆의 검은색 부분에서 가고일이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년 제목을 붙이는 방식이 여러 가지인데 작업 중에 붙이거나 작업 후, 아니면 단어로 시작해서 그림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번 연도에는 작업할 단어들을 정해놓고 한번 이미지화 해보자고 했다.

올해는 단어가 먼저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된 것들도 있다. ⟨Gargoyles⟩(2016) 은 오히려 작업이 끝나고, 인상적인 일부에 감화되어 제목을 지은 것에 가깝다. 잘 지어졌다.

이 형광 분홍색 역시 작품에서 자주 사용된다.

‘쿠사카베’라는 물감인데 한국에서 정식 수입을 하지 않는다. 과천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수입하셔서 그분께 연락을 드려 사서 쓰는데 이것도 같은 이유다. 사실 좋지 않은 물감이지만 발림도 좋고 무엇보다 색깔도 좋다.

아직 조각 작업도 하는가?

큰 작업하기는 어렵다. 레진, 강화석고, EVA 등으로 입체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작업들이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어떤 작업을 좋아하는지 알려달라.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좋아한 작업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모세상⟩이다. 내가 미술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낮에 책 하나 골라서 버스 타는 길에 오가며 읽는 것을 3달 정도 지속했는데 어느 날 책이 없었다. 마침 서점에서 고른 책이 미켈란젤로의 도록이었는데 작품이 너무 멋있어서 그날부터 조소 학원을 다녔다. 항상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모세상⟩이다. 기교도 부리고 잘난 척 하고 싶을 때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조각을 본다. 더 어릴 때는 베이컨(Francis Bacon)을 좋아했었고 요즘에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이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이렇게 좋아한다.

왜 회화를 선택했나?

입학 첫날부터 하고 싶었던 작업은 큰 조각이나 회화였다. 조각은 원형을 만들고 캐스팅하여 석고, 폴리, 레진으로 떠낼 수 있어야 완성이 되는데 부과가정이 너무 많았다. 그때 당시 만들고 싶었던 조각을 캐스팅할 기술이나 재료에 대한 숙련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당시에는 물감을 바를 수 있는 회화로 시작했다. 그리고 회화를 다작하면 조각도 더 잘 만들어진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선이 잘 보이니까. 현실적인 조건만 가능하다면 거대한 조각/캐스팅 작업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림을 관람할 때 항상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며 시점을 다양하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Spooky⟩(2016)를 한정 하자면, 개인적으로 왼쪽에서도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표면의 마띠에르가 평면에서 볼 때 넓게 펴져 화면으로서 보이는것도 좋지만, 왼쪽 반측면에서 보게 되면 화면이 힘을 약간 잃는 대신 표면이 서로 엉켜붙어 강조된다.


[1] 작가는 “내적으로 구축한 클라우드에 이미지를 아카이브하는 과정을 클라우드(cloudification)”라고 부른다. 그리고 매체를 통해 구현된 이미지 역시 인식되어 재클라우화(recloudification) 된다. 작가는 이런 클라우드화-재클라우드화를 통해 “매체의 당위성을 파악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환희(b. 1990)는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2014년에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고 원앤제이갤러리(2016, 서울, 한국), COMMON CENTER(2015, 서울, 한국)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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