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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4. 전시 서문

[전시가 끝나고..1] <룰즈>와 <사물들: 조각적 시도>를 회고하며..

by ㅊㅈㅇ 2017. 12. 13.

전시를 준비하고 만들 때에는 어느 순간 당장 눈 앞에 놓인 일들에 바빠 한 발자국 떨어진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고 난후에 이 전시가 어떤 의미로 나에게 남는지, 그 이후의 움직임들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등등에 관해서 정리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두 가지 제안 때문에 다시금 작년 이맘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고 있다. 

2017년도 이제 몇 일 안 남은 시점에서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이번주 토요일에 인천 임시공간에서 하게 될 공개 세미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No curator>라는 비공개 워크숍이다. 두 가지 모두 내가 기획한, 혹은 공동기획한 전시에 관해서 이야기하게되는 자리이다. 전자는 인천문화재단 지역문화인력양성과정의 전시기획파트 기획 워크숍으로, 김수지라는 기획자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나는 12월 16일 토요일 3~4시까지 한시간 동안 "<사물들: 조각적 시도>(2017) 전시의 기획 과정"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이고, (공동 기획자인 김수정, 추성아씨에게 사전에 동의를 얻어 개인적으로 발제를 하게 됐다.  이 전시에 관해서는 다른 두 명의 기획자가 나와 개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안상훈 작가가 뒤이어 "한국 동시대미술에서 추상 페인팅 작업을 하는 의미"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다. 후자는 비공개 워크숍으로 이양헌 기획자가 준비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룰즈>(2016)는 회화 전시였고, <사물들: 조각적 시도>(2017)는 조각 전시였다. 왠 철지난 장르 전이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자주 보지는 못했던 작가들이 다양하게 참여해서 흥미로웠다, 혹은 시각적으로 잘 정제되어 아름다운 전시였다 라는 정도의 평을 들었다. 두 전시 모두 기획자가 보지 못한 관점을 제시하는 리뷰는 없었다. 충실하게 의도를 설명해주거나, 혹은 기획자 인터뷰 형태로 몇몇 매체에서 소개된 정도였다. 그 이후에 나는 회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더 많이 만날 기회가 생겼고, 많은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두 전시는 형식 자체에서 일종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교집합을 찾기 어려운 두 가지 관심사가 겹쳐져 있는 모양이랄까. 하나는 세대적인 것이고, 하나는 장르적인 것이었다. 많은 작가, 기획자들이 혐오하는 카테고라이징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이전 세대에서는 발견하기 힘든-특성이 있을까?"에 관한 질문과, 또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지는-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는-장르적 구분은 정말로 무용한가?"하는 질문이었다. 앞의 질문은 작가 개개인에만 의존하는 형태가 아니라, 그것들을 묶어줄 수 있는 하나의 흐름이 존재할 것인가?에 관한 궁금증이고, 후자는 미술이라고 하는 영역이 건축, 영화, 사회 등 다양한 다른 분야와의 긴밀한 연결고리 안에서 열린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미술의 영역 안에서는 흥미로워보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영역에서도 주목할만큼 중요한 입지를 가지는가?에 관한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다른 영역에서는 활용되지 않는 전통적인 장르에 국한시키는 장치들을 두었다. 사진이나 디자인, 퍼포먼스, 영상의 장르전은 계속 이어져나가는 반면 회화나 조각은 그렇지 않은데,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이런 생각도 있었다. 세대적인 것에 관한 관심은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기까지 과정에서부터 관심을 두었던 일이다. 매번 편집회의 때마다 내가 가지고 오는 주제들은 이미 15여 년의 세월동안 잡지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 지식이 항상 부족함을 느꼈고,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었다. 그렇지만 내 또래의 시작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분명히 새로웠다. 동 세대의 작가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여러 특성 중 한가지로 모아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보고 싶었다. 또한 '청년 세대'로 불리는 작가군은 어느새 매우 편협하게 좁혀져 있었고, 그 테두리, 그 무리 외에도 의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있는 다른 작가들을 찾아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관심을 둔 주제가 유일하게 중요하다거나 하는 식의 가치 판단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특성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방향의 모습을 담는 일에 집중했다. 

동시대미술을 접하고 말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은-나의 경험부족에서 오는 오해일 수 있겠지만- '계'에서 인정받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작품 이외의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데,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따라가는 상황은 적어도 피하고 싶었다. '패거리 문화' 역시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머리로 생각해서, 결정하고, 글을 쓰는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았다.  

저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사실은 웃긴 일이다. '주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획전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하나의 주제에 다루고 있는 작가/작품으로 꾸려진 전시도 있고, 기획자가 만들어놓은 느슨한 주제 안에 기획자가 초대한/좋아하는 작가들로 이뤄진 전시도 있고, 여러 심사위원이 뽑은 수상자를 한자리에 모으는 형식의 그룹전도 있고, 공모의 형태로 지원한 사람들을 모두 전시할 수 있도록 하는 그룹전도 있다.) 그래서일까 내용적인 것보다도 형식적인 틀거리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도 같다. 오랜 시간 작가 리서치를 거쳐 기존에 전시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작가들을 찾고, 전시에 초대했다. '미술계'에서 이미 충분하게 인정받은 작가가 아닌 누군가를 전시에 초대하는 일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각기 다른 관심사를 가진 작가들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아서 기획의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참여작가 그 누구도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어떤 특성으로 설명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어쩌면 그런 세대적 특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불가능한 일을 벌였구나." 하지만 만약 이 전시가 주목을 받았고, 많은 관객이 봐 주었다면, 그런 불가능한 질문에 없을 수도 있는 답을 찾기 위해서 벌인 짓에 사람들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두 전시 모두 감각적인 지점, 취향의 문제 등이 많이 반영됐다. 두 전시 모두 비재현적인- 혹은 더 쉽게, 무디게 말해서 추상적인 작업들로 전시장이 채워졌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준비 과정 중에 내내 떠올랐다. 좋은 작가는 정말 많다. 그들의 작업을 한 자리에 잘 모아서 전시로 꾸리고 싶었다. 현상을 보고 그것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회화의 경향에 대한 어떤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중점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 어떤 특성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자리였다. 회화로 똑같이 제한을 둔다 하더라도, 다른 특성으로 누군가가 기획을 하는 일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참여한 작가 일곱은 각각 제작 과정, 재료,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너무도 달랐지만, 시각적으로 누구나 -말로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이론적으로는 탄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공통된 분위기를 흐릿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획전의 경우 전시 서문이 개인전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기획자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기획의 글보다도, 선택한 작품, 작가, 그것을 공간 안에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든 환경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이 중요하다면 글만 쓰면 된다. 그러나 굳이 어떤 상황이 '전시'로 만들어질 때에는 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품과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부딪침 같은 것이 진짜 가장 중요한, 재밌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만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 그 기획자가 만든 전시는 어떤 작가가 참여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 기획자는 특정 작가에게 정확하게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런 재료로 이 자리에 이런저런 것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전자는 기획 자체가 느슨한 경우일 것이고, 후자는 기획이나 전시의 완성된 모양새에 대한 예측된 결과물이 지나치게 뚜렷한 경우일 것이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작품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 정해진 기획에 예시로 끼워넣는 전시도 재미없고, 기획이 흐릿하여 어떤 작품이 들어가도 문제없는 전시도 재미없다. 작가가 원하는 것과 기획자가 원하는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오랜 대화와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이고, 관계와 관련된 것이고,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이다. 이건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위에 언급한 두 경우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무엇을 포기할 지 선택하는 것도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자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후자는 규모가 커서 모두의 말을 다 듣고 존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모두가 꼭 그래야만 하는 원칙은 없다. 각자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성향이 '다를' 뿐이다. 잘 들어주는 listener형의 기획자가 있는가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는 leader형의 기획자도 있을 수 있다. 

이 두 전시를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더 이상 세대적인 특성을 쫓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정도다. 세대적인 것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시도는 (내 역량 안에서) 해볼 수 있는만큼 해본 것 같다. 이 두 전시를 보고 주제적으로 더 디벨롭할 요소들을 발견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을 이어나가서 전시 혹은 글로써 발전시켜주면 좋겠다. 정제되지 않은, 러프한 형태의 어떤 생각 덩어리를 던져놓는 일 이후의 어떤 방향들이 이어져나갔으면 좋겠다. 그만큼 관심을 가질 누군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K모 선배 기획자가 젊은 작가들의 조각에 관한 리서치를 하고 계신 듯하니, 아마도 일부는 이어져나가지 않을까 싶다. 기획자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전시를 하나 만들게 되면, 그것과 이어지는 어떤 종류의 고민의 지점을 작품화해야만 하는 어떤 갈증 같은 것들이 생기는 것 같다. 지금 보았을때는 너무도 설익고, 너무도 무모한 일이었을지라도, 그때는 꼭 그것을 해야만할 것 같은 커다란 당위성,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아마도 <청춘과 잉여>전에서 못다한 어떤 얘기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동 기획한 <청춘과 잉여>(2014) 역시도 '주제전'은 아니다.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심사위원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모음전 형태로 보여지거나, 개인전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내려오는 관심사를 다른 선배 작가와의 관계로 잇고 싶었다. 각자 자기 일을 하는 '따로 국밥'의 형태가 아니라,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연결해보자는 시도였다. '미술계'-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누어져 있는 분파를 막론하고 오직 주제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면서 다섯 개의 큰 주제가 한 전시 안에서 다루어 졌고, 주제전이라기 보다는 이어진 다섯 쌍의 모양새-형식이 더 중요한 전시가 됐다. 이후 전시는 공간의 특성, 참여 작가의 유명세 등 여러가지 외부 요인으로 노이즈가 많이 끼었고, 네임 드라핑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은 치기 어린 젊은 기획자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말 그대로 비판하기 쉬운 명분이 먼저 공론화되면서 우리의 진짜 의도는 퇴색됐다. 사람들은 오해할 권리가, 나는 변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2014년 겨울 이후 나는 서울을 떠나 광주로 거처를 옮겨 7개월 여의 시간동안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이런 저런 골치 아픈 관계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뭔지,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은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지 그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다시 돌아왔고, 또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학기 처음으로 출강하게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다. 주 교재로 활용한 주제로 분류해서 동시대미술을 소개하는 <테마 현대미술 노트>는 나에게 적절한 시점에 다가와주었고-번역이 정말 훌륭해서 읽기 편한 책이었다,-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정체성, 몸, 시간, 장소, 언어, 과학, 영성 이라는 세부 주제들로 1980년대 이후의 미술을 분류해서 풍부한 예시와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한국 버전으로 언젠가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 2012년 석사 졸업을 앞두고 선배들이 소개해준 곳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다. 그때 남의 말을 열심히 옮기면서, 언젠가는 내 말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어쨌든 나는 나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꿈을 꾸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이뤄진다고 믿는다. 미술은 여전히 너무나 재밌고, 좋은 작가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다 만날 수 없을만큼 많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나는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SNS를 열심히 하는 소수의 말들에 매몰되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면서 리프레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9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두 번째로 참여한 프로젝트는 장터 기금을 받아 진행된 "블라인드 데이트"였다.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작품을 전시하고 실제로 구매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작가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제 물질-작품 그 자체가 가진 특성에 오롯이 집중하고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이런 취지에 깊게 공감했다. 뒤 이어 이어진 장준호 작가의 개인전도 마찬가지. 물질 자체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뚝딱뚝딱 만들기를 시도한다. 박용석 작가가 아티스트 토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있다. "윌링앤딜링 같은 건강한 공간에서 가능하다면 2년에 한 번 정도는 개인전을 하고 싶다. 돈이 없어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돈이 많아 지나치게 폼 잡지 않을 정도의 개인전 말이다." 흥미로운 일들을 재밌게 계속 벌여나가기 위해서는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규모-물리적 공간, 예산, 인력 등-를 유지해야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이 일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들과 계속 함께 해야하는 것 같다. 돈도, 명예도, 아무것도 내 손에 남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는 지칠때 지지해줄 수 있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나의 판단과 결정을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동료가 절실히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의 솔직함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내가 일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은 그다지 솔직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남에게 관심이 없다. 거기에 더해 결과물이 좋은 것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과정에 관한 관심'은 말로만 그렇다.) 아니면 그렇지 않더라도 그럴싸하게 보이는 포장지를 원한다. 그렇게 진심은 덮어버리고, 멋진 껍데기를 둘러입은 무언가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영향력있는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똑같이 따라하거나, 두꺼운 편견의 안경을 끼고 누군가를 재단하고 분류한다. 그게 '우리 편'의 눈 밖에 나지 않을 수 있는 쉽고 안전한 판단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두는 '완성품'을 원하기 때문에, 더 나아지는, 발전하는 과정의 누군가, 혹은 무엇을 받아주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때, 남의 조언을 듣고 잘못을 개선하거나, 혹은 실력이 더 좋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은 있다, 아니 꽤 많다. 내가 모를 뿐이다.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을 계속 만나려고 노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미술의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는 기획자가 있다면,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기획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후자가 더 편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동시대미술에 관심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로 좋은 작업들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그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서 (아직은 잘 모르지만) 시장과 현장을 연결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다. 

결과물이 얼마나 뛰어난지 못지 않게 나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 이수경 선생님이 올해의 작가상 인터뷰에서 작품을 하면서 나는 더더 예뻐지고 몸도 마음도 편해지고 행복해지고 싶다 는 식의-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좋은 작가, 좋은 기획자는 조급하지 않고, 더 큰 그릇이 되어 여러 상황들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 역시도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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