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x, 김동찬 개인전 <당신의 개인전> 2019.12.16.~2020.1.8. 전시 리뷰
천장과 바닥, 기둥까지 모두 흰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들로 왁자지껄하다.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는 난로를 가운데 두고 간이의자가 네 개 서로 마주보며 놓여있다. 그곳에 김동찬 작가가 앉아있었다. 입구에서 받은 전시 초대장 역시, 축구 경기 티켓과 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마치 내가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이 된 기분이 들도록 했다.
작가 김동찬의 축구 사랑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던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있는 이름을 새긴 응원 머플러는 한 벽 가득 걸려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익숙하게 아는 이름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름들은 김동찬과 함께 축구를 하는 가까운 지인들, 아마추어 축구단 선수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15개의 단채널 비디오 <Radar>가 오래된 텔레비전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이 역시 아마추어 축구단 지인들의 모습을 개별 촬영한 것이다. 텔레비전의 두꺼운 무게감 때문에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점차 색이 흐려지고 어둡게 보이는 효과 때문에 오래된 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명한 선수 대신, 모든 관객은 거의 다 알지 못하는, 작가의 친밀한 관계에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김동찬 작가는 삶이 예술이 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비축지축>은 도자 작업 위에 축구공을 얹을 작품이다. 김남수의 글 “김동찬 작가와 나눈 축구와 (비)예술에 관한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글에 따르면, 비축지축은 “축구공은 안 찼는데, 국구가 이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0여 개의 작품은 전시장 여기저기 놓여있는데, 이 공들은 매번 월드컵 때 사용된 공들이다. 한정판으로 판매가 되며,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의 철학적, 기술적, 사회적, 지리적 문제나 고민들이 집약적으로 디자인에 표현되어 있다. 일례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한 2002년 월드컵에서는 피버노바(Fevernova) 공이 사용되었다. 피버노바는 열정을 뜻하는 피버(fever)와 별을 의미하는 노바(nova)의 합성어이다. 디자인을 살펴보면, 화려하고 혁명적 외관과 색채는 아시사권 문화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한국과 일본의 힘을 황금색으로 형상화하고, 붉은색 불꽃무늬는 두 나라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불의 이미지를, 4개의 삼각 모양은 양국의 균형적 산업성장을 형상화하는 등 한국과 일본의 기술혁신을 의미한다. 일반 사람들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공의 디자인과 기능의 발전을 통해 김동찬은 축구가 이어져 온 역사의 단면을 제시한다. 항시 움직이고 발로 차야하는 공의 속성과는 정 반대로, 살짝만 밀어도 깨지기 십상인 도자기로 그것을 동일하게 만들어 실제 공을 위에 얹은 형태로 전시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축구의 역사적인 맥락을 공을 통해 보여준다면, 그에 더해 앞서 살펴본 <Radar>와 같은 영상 작업을 통해 가장 개인적인 방식의 접근으로 축구에 대해 말하며 일종의 대비를 이룬다. 허수아비와 같은 모양으로 어정쩡하게 놓여있는 <a midfielder>는 축구 선수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역설적 기능을 갖는다. 그 뒤로 보이는, 전시 포스터에도 활용된 <공은 둥글지 않다>는 캔버스 위에 흰색과 검은색 물감을 칠한 것으로, 실제 축구공을 잘라서 분해하면 나오는 평면도이다. 정육각형과 오각형의 조합으로 원형의 공이 만들어져있음을 보여준다. <너 자리를 알라>는 나무에 새겨진 문구는 전시 전반에 흐르는, 작가의 삶의 철학과도 같다. 축구 경기가 마치 삶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삶이라는 게임에서 각자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 깨닫고, 자신의 포지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게임을 구성하는 수많은 구성원 가운데, 나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작품이나 전시로만 본다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엉성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대신 오랜 시간 작가가 진심을 다해 고민해 온 주제,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작가는 안산의 경기창작센터, 부산의 홍티아트센터 등 여러 지역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또 소통하기도 했고, 현재는 인천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으며 그간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작품과 전시를 완성시켰다. 이번 전시 <당신의 개인전>에서는 삶에서 예술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가치관과 작업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김동찬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지칭하거나,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축구 신동이라는 6살짜리 조카를 언급하며, 축구 유학을 가게 되면 유럽에 함께 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환하게 웃어 보였다.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느꼈던 것들, 그 안에서 누린 자유로움, 한국의 빠른 속도 감각이나 유행, 트렌드를 쫓지 않는 대신 묵묵히 자신의 관심사를 발전시켜온 뚝심. 어쩌면 진짜 예술적인 삶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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