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시 바라보다
창밖의 지나가는 자동차 구경을 좋아하는 두돌 아들 덕분에 나 역시 창문 너머의 풍경을 매일같이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 같은 방향에서 같은 풍경을 오랜 시간 바라보는 일이 상당히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무심코 아들이 환호하는 자동차의 색과 모양, 움직임에만 집중하다가, 그 다음에는 가까이에서 날갯짓을 하는 비둘기를, 그 다음에는 배경처럼 한결 같이 한자리에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계절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는, 변화무쌍한 날씨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몸소 체감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와 수풀의 초록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몇일 사이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다채로운 초록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색색의 꽃잎이 활짝 피어나며,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는 각종 곤충과 새들을 유인한다. 자연의 변화는 매년 이뤄지는 당연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없는 삶에 쫗기느라 이 같은 과정을 지긋이 지켜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 흔치 않다.
임현경이 그린 나무, 숲, 정원의 풍경을 살펴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이미지와 조형물, 영상물 사이에서 눈을 쉴틈 없이 바삐 살면서, 이러한 자연이 만든 초록을 통해 상쾌하고 또 산뜻한 휴식을 체험할 수 있다. 커다란 비단 화폭안에 빼곡히 메워진 나뭇잎을 눈으로 따라가고 있노라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낮은 소리로 지저귀는 새의 울음 소리, 상쾌한 향의 풀내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풍경을 오래 들여다보고 또 그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작품에 성실하게 담고 있다. 그는 잎 하나하나를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리는데, 노동집약적인 행위와 이에 수반되는 시간은 마치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휴식과 회복에 대한 행복한 상상에 푹 빠져 있을 때쯤 이러한 나무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도시의 환경 속에서 나무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주어야 하고, 해충이 생기면 퇴치할 수 있도록 약을 뿌리고, 나무가 아프면 주사바늘에 영양제를 넣어 꽂아준다. 겨울에는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어 수액이 흐르지 않고 나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다. 이런 노력의 손길을 떠올려보면, 그 무엇도 거저 되는 법이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한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함에 있어서 많은 노력과 가르침이 필요함을, 다시 말해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임현경의 나무는 인간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홀로 서 있으면서도 또 누군가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 말이다.
나무가 한명의 사람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끼는 데에는, 배경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많은 그림에서 원경의 배경으로 나무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풍경 전체를 담는다면, 해당 장소를 상기시킬 수 있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배치되기 마련인데, 임현경의 나무는 흰 배경 위에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 기다란 비단 족자에 그려진 작품 <숲의 장막>은 한그루 한그루 각기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비슷한 간격을 두고 띄어진 채로 그려져 있다. 작가가 그린 나무들은 종만 다른 것이 아니라, 해당 나무가 살고 있는 계절/시간 역시 다르다. 작가는 나무를 통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또 죽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갖는 유한한 인생 자체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조금씩 그 색과 형이 다른 것 역시 한 명 한 명 자신만의 개성을 보유한 인간과 닮았다.
그의 작품에서 또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천처럼 보이는 장막이다. 장막은 여러 그루의 나무를 한데 묶어 덮고 있다. 장막은 일견 외부로의 위협이나 방해요소에서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각각의 나무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막은 세상 속에서 우뚝 솟아 존재하고 있는 나무 각각을 무리로 엮어 일종의 공동체 안에 포함시키면서, 내부와 외부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소속감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배타적인 태도를 생성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어떤 무리에 속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또 성장한다. 연결과 무리지음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자 전략이고,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던 개인은 누군가와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또 구성원을 늘려간다.
비단 위에 먹과 물감으로 채색을 한 그의 작품은, 은은한 색감을 뽐낸다. 먹의 강한 기운이 극적으로 강조됐던 이전 작업과는 달리, 먹의 존재감은 다른 색채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비단의 앞과 뒤를 오가며 색의 두께를 입히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비단을 투과해 배어나오며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낸다. <숲의 담장> 작품은 실제 해외에 거주하면서 작업한 작품인 만큼, 아치형의 문과 별도의 담벼락없이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로 만들어진 담장.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붉은색과 푸른색의 새들까지 풍경 자체가 주는 이국적인 특성이 도드라진다. 동양적 재료를 이용해 서양적 표현방식이나 소재를 담은 그의 작품은, 동서양의 각기 다른 특성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준다. 이것은 많은 정보가 혼재하고, 이동이 잦은 동시대의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정윤(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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