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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4. 전시 서문

위영일 개인전 <새로운 구조를 향하여>(금호미술관, 2022.7.14-24) 전시서문

by ㅊㅈㅇ 2022. 7. 14.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Neutral structure 6 112.1x 145.5cm acrylic, spray, oil, water paint on canvas 2021

 

각종 기계가 작동하며 내는 굉음을 뚫고 영등포에 철공소가 즐비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2층에 위영일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지금까지 해온 수많은 작품들이 한쪽 방에 보관되어있고, 다른 방에는 작업대와 컴퓨터, 여러 종류의 재료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놓여져 있다. 벽면의 위쪽에는 작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는데, <아트페어 수칙>이라는 위영일의 2007년 작품이다. 평범한 글씨체로 마치 상장처럼 덤덤하게 적혀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1. 1초 안에 사로잡을 시각성, 2. 생각보다는 시각적 효과, 3. 운반과 보관이 용이한 형태, 4. 명성이 없다면 노동력, 5. 이미 유명하다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 재생산하라고 말이다. 이 작품은 예술적 신념이나 작가적 태도를 포기하고 미술시장에서의 성공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며,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처럼 읽힌다. 마지막 수칙으로 그가 언급한 비슷한 패턴의 반복/재생산은 위영일에게 있어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길처럼 보였다. 20여 년의 작품 활동 궤적을 살펴보면 그가 끊임없이 하나의 주제나 키워드 안에 포섭되는 것을 피하고자 절실하게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한 경력이 길지 않은 기획자/연구자로서 나는 세부 연구주제를 떠올렸을 때 연결하여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특정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반복 재생산이 매우 중요한 목표이자 당면 과제일 수 있다. 그러니까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역시도 다름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는 똑같이 보인다 하여도 비슷한 주제이지만 그 안에서도 계속 새로운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그 과정에서 탐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영일은 하나의 주제에 계속 머무르거나 반복/재생산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 선택을 했다. 이러한 데에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인 특정 스타일에 회의를 느끼며 그것에서부터 탈주하고자하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그의 박사논문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만화, 디자인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일을 해 온 그는 말 그대로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 솔직하며, 뛰어난 실행, 추진능력을 가졌다. 그만큼 그의 이전 작품들은 다채로운 시도들로 가득하다. 2000년대 초반 팝아트 스타일로 슈퍼히어로 여럿을 모아 만든 짬뽕맨작업으로 사람들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비교적 직설적으로 했던 위영일은 2010년대에는 알레아토릭 페인팅 프로젝트를 통해 페인팅 매뉴얼을 만들고 주사위를 던져 나온 결과 값대로 회화 작품을 완성하는 중성적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이번 개인전 <새로운 회화구조를 향하여>에서는 회화의 형식, 보는 방식을 중점적으로 탐구한다.

전시 제목 새로운 구조를 향하여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를 떠올리게 한다. 그린버그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미술을 위한 미술로 나아가야한 미술이 가진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궁극이 순수미술, 추상미술이라고 말한다. 회화에서의 형식주의, 순수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키치화, 혹은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정치적 이용과 같은 총체적 위기 속에서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탈재현을 지향하면서 작가들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게 되었으며, 형식만이 드러난 회화는 관객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되면서 모순적으로 교조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위영일은 그린버그 식의 형식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회화 영역에서의 새로움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전시와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화면 안에서: 중성적 구조, 중성색

위영일은 회화를 구성하는 것은 사각의 틀과 2차원의 표면이라는 명제를 일정 부분은 받아들이고, 일정 부분은 순응을 거부한다. 2차원의 표면이라는 점은 받아들여 화면 위에 형과 색을 구성하지만, ‘사각의 틀이라는 점은 둥근-사각형이라고 부르는 변형 프레임을 활용해 벗어나고자했다. 위영일의 <Neutral Structure> 시리즈는 기하도형이나 수직, 수평의 붓질을 피하고자 한 작품이다. 기하구조나 그리드 구조는 보는 이에게도, 또 그리는 이에게도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위영일은 이러한 편안한방식을 거부하기 위해 중성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올가미나 밧줄이 던져진 상태처럼 유동적인 형태를 구축하게 되는데, 이는 시각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무언가 불안정하고 조화롭지 않게 느껴진다. 이러한 인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바로 색이다. 그는 색 구성에서도 시각적으로 익숙하고 아름다운 조합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한다. 위영일은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에서 면적의 비율과, 색의 조합을 무수히 많이 시도하며 익숙하고 편안한 감각에서 탈주하기 위해 시도한다. 그의 이러한 노동을 기반으로 한 결정은 감각에만 의지하는 나이브한 태도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화면 밖에서: 회화-조각-설치

<Neutral Structure> 시리즈가 화면 안에서 익숙한 것들을 선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구조를 탐구했다면, <New Point>는 화면 밖에서의 시도들로 확장된다. 쉽게 설명해서, <New Point> 시리즈는 여러 개의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들로 이루어진 회화-조각-설치이다. 각기 다른 높이와 형태, 면적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들은 전시장의 벽면에서 구성되어 걸릴 때에만 작품이 완성의 상태에 이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평면의 넓은 면은 흰색으로 모두 비워져 있는 대신, 캔버스의 측면이라고 여기는 면들은 색면 처리 하거나 다양한 패턴을 채워넣는다. 관객은 편안하게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대신, 작품 주위를 이리저리 맴돌며 여러 각도에서 캔버스의 측면을 바라보게 된다. 2차원의 평면이 아닌, 3차원의 오브제라는 점에서 조각적이라고 여겨지며, 여러 점의 캔버스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최종 작품의 형태가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설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완결성을 띠지 않는 대신, 개별 캔버스들은 전체의 부분으로 기능하며 벽에 걸린다.

새로움이라는 것이 과연 남아있기는 한지 의구심과 회의로 가득하지만, 이러한 난제를 놓아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태도와 열정이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회화에 대한 지독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위영일은 회화작품이 갖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조건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대신, 동시대 환경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회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도록 한다.

더 이상 덧붙일 이야기가 없을 것처럼 단단하고 또 완전하게 느껴지는 역사의 무게 앞에서 가능한 시도들을 계속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작가가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이유이자 목적일 것이다.

 

New-point 3 Variable installation_ silk screen, acrylic, spray, oil, water paint on panel_2018(sejong museum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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