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아가기: 나를 찾는 여정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란 향기로 기억이 환기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용어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물면서 그 맛과 향기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사진이나 특정 물건을 보거나, 향기를 맡거나, 맛을 통해 잊고 있었던 어떤 것을 떠올리는 경험을 종종 한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자신의 감각에 오롯이 집중하여 의식의 흐름에 따라 무언가를 생각하는 일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어딜가도 사람들이 그득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들을 매순간 바삐 처리하며,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연락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정신없는 일상을 목도하면서 덩달아 마음이 분주해지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 바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축복이라는 다른 이들의 말을 되뇌이며, 우리는 다같이 열심히 그저 달린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라본다. 비단 비싼 월세나 생활비, 학비 등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더라도 한적한 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예술가에게는 큰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작가와 그가 만든 예술작품은 어떤 면에서든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두 가지가 섞이지 않고 이질적이라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과 작품 사이의 간극을 더욱 좁히고자, 2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 그리고는 판포포구 쪽 작고 오래된 집 하나를 구해 그곳에서 작업실 겸 생활공간을 꾸렸다. 이곳 골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자기 자신만의 것을 더 잘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집 앞 자그마한 정원에서 풀을 뽑고,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사소해 보이지만 작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자그마한 물건들을 가져다 생활공간 이곳저곳에 배치한다. 자신만의 취향으로 가득한 비밀스러운 은신처, 작가 강수희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살아가는 것, 두 가지로 이루어진 단순한 일상을 살아낸다. 평범해 보이는 작은 일과를 수행하며, 그로 인해 소소한 행복감을 누리는 삶을 살고있다.
서울에 살면서 야생동물을 마주치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공원이나 아파트 마당에서 볼 수 있는 비둘기, 개미 이외에는 말이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까마귀, 소, 말, 노루 등 다양한 동물을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동물은 우리가 하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인간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 또 빼앗기지만, 조용히, 또 묵묵히 그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양보>(2022)는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며 만들어 둔 길 위에서 상향등을 켜고 달려오는 자동차의 운전자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는 노루를 그린 그림이다. 가로등도 하나 없이 더욱한 이차선의 좁은 길 위, 황색 실선 위 도로 중앙에 선 노루는 정면으로 운전자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내가 지금 지나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듯하다. <선크림 때문이야>(2021)에도 마찬가지로 고양이 두마리가 작품의 가운데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문지방 너머로 보이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와 마치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것같은 얼룩무늬 고양이. 그들은 혼자이기로 작정하고 내려온 이방인에게 편견없이 다가오는 좋은 친구들이다.
작가 강수희가 주로 다루는 소재 중 하나는 빵, 케이크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빵도, 그림도 동일하지만,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력, 무엇보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정해진 레시피대로 착착 수행하기만 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빵이 만들어지는 반면, 그림은 레서피가 없는 것은 물론, 시간을 많이 들여도 마음에 안들기 일쑤다. 게다가 작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이라 해도 다른 사람들이 쉬이 이해해주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 반면, 빵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의 폭발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 어쩌면 창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이기에, 비교적 짧은 시간의 노동으로 확실한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베이킹에 더욱 빠졌을는지도 모른다. 베이킹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레시피 대로 차근차근 단계별 임무를 수행해내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작가는 여러 재료를 섞어 반죽을 만들고 그것을 휴지(resting)시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만져져서 지쳐버린 반죽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인데, 반죽이 융화되고 안정화되어 제대로 된 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이것은 어쩌면 모든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빵-!>(2021)에는 앞서 언급한 빵과 동물, 그리고 제주의 풍경이 모두 담겨 있다. 빵 이라는 어설픈 글자로 이루어진 포스터는 관객의 시선을 빠르게 끌어당긴다. 어떤 빵을 파는 곳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면서도, 모든 창문과 입구가 꽉 막혀 있어 속을 볼 수 없는 건물이 신비하고 또 비밀스럽게 느껴진다. 창문에 붙어있는 이미지들은 포스터일까, 햇빛 가리개일까, 이곳은 마들렌을 파는 곳일까, 개인 주택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는 점은 유추해볼 수 있다. 독특한 속도표지판과 얼굴만 빼곰히 내민 말 한마리, 두 손을 번쩍 든 사람의 모습은 적막한 이 공간에 약간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포토샵으로 쨍하게 처리한 것같은 새파란 하늘은 울창한 나무의 초록색을 더욱 활기있게 만든다. 이 작품은 여러 개의 드로잉을 하나의 화면으로 옮겨 낸 작품으로, 강수희 작가가 느꼈던 여러 감정을 특정 풍경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정면과 측면을 볼 수 있게 마치 제품 설명 이미지처럼 그려진 마들렌, 하늘 위로 세차게 솟아오르는 분수까지. 관객은 작가가 느낀 감정을 똑같이 따라갈 수는 없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더해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 <해프닝: 산책과 모험 사이>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크기가 큰 작품 <섬 = 너 + 나>(2022)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강수희 작가 자신을 직접적으로 주제로 다루고 있다. 제주라는 섬은 너와 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작품의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이, 깨끗한 푸른 바다 위로 떠 있는 집 한채는 작가 자신을 은유하는 듯하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마귀들과 함께 초록 지붕과 빨간 문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집은 여러 식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다. 예술가는 현실이라는 땅 위에 발을 그대로 딛지 않는 대신, 10cm 정도 땅 위에 떠서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삶을 산다. 비현실적인 상상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말이다. 무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20세기 초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품과 같이 강수희의 작품은 상상적이고 비현실적 공간을 화폭에 담았다. 이성의 통제가 없는,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사유의 받아쓰기와 같은 그의 작품은 작가로 하여금 온전한 자유를 경험하게 한다.
강수희 작가의 제주살이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이곳 제주에서 느리게 살아가기는 실행하면서,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욱 잘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이 두 가지야 말로, 이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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