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서 주변으로,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으로
:<보이지 않는 가족>(서울시립미술관, 2016.4.5.-5.29)전 리뷰
“2015-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와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와 아키텐지역 현대미술기금이 공동 주최하는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긴 수식어만큼이나 여러모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전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제프 쿤스, 신디 셔먼,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 기념비적 사진 작품 200점이 출품됐다.
이 전시는 스타이켄이 기획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인간가족>전(1955)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식을 모체로 삼아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가족>전은 공모 방식을 통해 6백만 장이 넘는 사진 중 선택된 503점으로 구성됐으며,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순간들”을 구성하는 인류에 대한 ‘보편적’ 서사를 보여주었다. <인간가족>전은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전 세계 38개국 도시를 순회하며 소개되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인간가족>전은 인류애에 대한 감동 이면에 강력한 아메리카니즘을 기저로 삼고 있었다. 사진을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위한 효과적인 매체로 활용된 전시였던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후 “인간 대가족”이라는 평문에서 “삶의 복합성과 모호성을 ... 행복, 사랑으로 대체하여 모든 갈등을 자국 없이 봉합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이 전시를 비판했다. 바르트는 가족, 국가, 인류에 관한 신화를 깨고, 각기 다른 개인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타자화된 존재에 대한 환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디 셔먼 <퐁파두르 후작부인 푸아송> 1990 / 제프 쿤스 <아트> 1988-89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신화를 해체하기’, ‘중립 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 ‘자아의 허구’, ‘에필로그’까지 총 5개의 섹션으로 구분됐다. 첫 번째 방은 ‘신화를 해체하기’라는 제목이 붙여졌으며, 붉은 벽에 작품이 걸렸다. 섹션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관례, 기존의 위계질서를 비트는 작업이 전시됐다. 신디 셔먼은 <퐁파두르 후작부인, 푸아송>에서 스스로를 루이 15세가 가장 총애했던 평민 출신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으로 분하였으며, 1756년 후작부인이 의뢰했던 도자 그릇의 모양을 본 따 그 위에 사진을 입혔다. 제프 쿤스의 <아트>는 “작가 스스로를 왕위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며, 그것을 주요 미술잡지에 광고로 싣고, 또 상업 포스터로 제작해 팔기도 한 것이다. 신디 셔면이 누군가로 변장을 해서 그 허구를 폭로하는 방식이었다면, 제프 쿤스는 스스로를 왕으로 포장하여 잡지에 게재함으로써 시스템에서 생산될 수 있는 이미지의 허점을 전면에 드러냈다. 에두아르 르베의 <허구>는 두 장의 사진이 함께 전시됐는데, 하나는 속옷만 입은 여성을 여섯 명의 남자가 응시하는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면을 당당하게 응시하는 여성의 구두끈을 묶고 시중을 드는 남자 여섯을 포착했다. 여성의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 혹은 여성을 위해 무엇이든 구해 바치는 남성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정형화된 위계 관계의 양면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남성과 여성 비율이 일대일이 아닌 다대일인 것도 주목해볼만 하다.
토마스 루프 <집 No. 3> 1988 / 토마스 데만트 <방> 1996
두 번째 방 ‘중립 안으로’는 간결하고 중립적 태도로 한 순간을 포착한 일군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 걸맞게 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U.A. 플레이 하우스 뉴욕 1978>은 장노출을 통해 극장의 모습을 촬영해 상영되고 있는 영화는 ‘빛’으로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 토마스 루프의 <집>은 1950년에서 70년대까지 건설된 평범한 건축물들을 대형카메라로 촬영한 시리즈이다. 사진의 주제는 중앙에 위치하고 배경은 흐릿하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차하는 구성은 차분하고 또 엄격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집단적 중립, 순응주의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토마스 데만트의 <방>에서도 비슷한 중립성을 찾아볼 수 있다. 데만트는 방 안에 있을 법한 오브제들을 골판지와 종이 등을 이용해 제작해 그것이 실재인지 허구인지 구별이 어렵도록 만들었다. 그 뒤에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실재의 재현이 아닌 특성을 갖게 된다.
소피 칼 <맹인들> 1986 / 로버트 메이플소프 <세바스찬과 엔다> 1981
세 번째 방 ‘보이지 않는 이들’은 “거리의 아이들, 유랑자, 지적장애인, 노예, 사형수, 동성애자, 여성 시인”등 역사 속에서 항상 ‘소수’였던 이들의 이미지로 구성돼 있다. 소피 칼의 <맹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고, 그들의 답변을 적은 문구와 답변자의 사진을 함께 전시한 작품이다. 점점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쫓는 시대임을 감안할 때, <맹인들>을 통해 사회적 구조 속에서 배려 받지 못하는 소수자의 입장을 담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세바스찬과 엔다>는 백인과 흑인 남성 소년 둘을 담은 초상 사진이다. 정사각형 구도, 빛, 옷의 색깔, 표정 등 모든 것을 양쪽으로 대조시켜 형식적 미를 더욱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메이플소프는 동성애, 에이즈, 남성 누드 등 당시 금기시되었던 주제를 깊이 탐구하며 형식적 완벽성을 추구했다. 장 지엔의 <장 후아, 리홍리, 장 유웨이>는 소림사가 진행한 고아원 사업에 관여하게 되면서 촬영한 고아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다. 전신 포트레이트와 함께 개인정보, 경제상황 등 각자의 상황을 적은 메모를 함께 전시했다. 필립 바쟁은 <탄생>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의 얼굴을, <정체성 너머>에서는 죽음 직전의 환자들을 찍었다. 그는 사체의 얼굴만을 클로즈업해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가득 채운다. 검정색 벽으로 된 방 안에는 바쟁의 <WK>가 전시되는데, 426명의 얼굴 사진으로 만든 14분짜리 슬라이드쇼이다. 바쟁이 불특정 다수의 얼굴 이미지를 다루는 것은 피사체를 사회의 구성원 중 한명이 아닌, 유일무이한 개인으로 인지하고, 그들에 대한 배려를 회복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오를랑 <미국 원주민 자기 혼성화> 2005 / 아네트 메사제 <연인들의 초상> 1977
첫 번째 방에서는 바르트의 『신화론』 (1957)에 영감을 받아 기존의 단일한 위계질서를 해체한 작품을 전시했고, 두 번째 방에서는 『글쓰기의 0도』 (1953)에 따라 중립적 태도로 미학적 특성을 탐구한 사진을 선보였으며, 세 번째 방은 『카메라 루시다』 (1980)에서처럼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드러냄으로써 가족의 다양한 면면을 살폈다. 마지막 ‘자아의 허구’ 섹션에서는 『텍스트의 즐거움』 (1973)을 인용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작품을 소개했다. 오를랑은 전통적 미의 규범에 도전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통해 자신의 몸을 개조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 왔는데, <미국 원주민 자기 혼성화>에서도 미국의 원주민 추장으로 변신해 혼성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아네트 메사제의 <연인들의 초상>은 그녀의 친구들을 찍은 12장의 흑백사진으로 이뤄진 작품으로, 각 여성의 초상 사진 우측 하단에는 각자의 연인 이미지를 빨간 선을 두른 직사각형 구역 안에 삽입해 넣었다. 추후 모두 헤어졌다고 캡션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전시장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 마지막에는 에스텔 페레의 <세월을 거친 자화상>이 복도를 따라 놓여있었다. 페레는 얼굴을 세로로 분할해 왼쪽에는 전, 오른쪽에는 후의 사진을 배치하여 20년의 간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를랑이 스스로 다른 이의 모습으로 변신하였고, 메사제는 지인들과 그 연인의 사적인 관계를 폭로하였다면, 페레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자신을 직시한다.
총 2백여 점의 작품 중에는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온 작가의 작품이 꽤 많았다. 게다가 롤랑 바르트의 책에서 발췌한 문구들도 산재해 있었고, 사진사적 맥락 역시 알고 있어야 하는 만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지식이 필요한 전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중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탐색하고, 유일하고 획일화된 이상향을 쫓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차이를 받아드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사진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프로파간다식의 명확한 메시지를 갖는 전시를 만들기는 쉬울지 몰라도, 원본에 대한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에 반하는 차이를 드러내는 내용을 만들기는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관객에게 얼마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나처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진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들을 직접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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