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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2. 주제론

[사진이론] 권오상의 ‘사진-조각’에 나타난 혼성적(hybrid) 특성 연구

by ㅊㅈㅇ 2016. 7. 8.

권오상 발표용 이미지 0615.pdf

권오상의 사진-조각에 나타난 혼성적(hybrid) 특성 연구

 

. 들어가는 글

서양 현대미술사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주의,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 등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형적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 역사는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에 정리되어 쓰이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전반적인 흐름의 기술은 개별 작가의 작품에 관한 집요한 탐구의 결과물이 축적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1980년대 말경부터 모더니즘의 신화를 해체하고자 등장했던 미술 안에서의 다양한 실험의 양상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의 현대 미술가들은 작가별로 개별적인 방식으로 각자가 직면한 주요 주제를 다루어 특정 사조나 경향으로 전체를 호명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선형적인 진보의 발자취를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미술의 역사는 일방향적 전후관계를 뛰어넘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띈다. 이 때문에 동시대미술계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살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작가의 개인적 행보의 변화에 예의주시해야 했다.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자신이 가진 관심사나 주제의식과 형식 혹은 매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작품을 선보여 온 작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진을 이용한 조각, 2차원의 평면적 이미지를 활용해 구축한 3차원적 오브제를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했다고 평가되는 권오상의 작품에 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1971년 출생의 중견 작가 권오상은 현재까지 총 2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국내외 그룹전 90여 회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중견작가다. 그의 작품에 관해 쓰여진 글들은 대부분 전시 서문 혹은 리뷰, 작가론으로, 지금 미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들이 작성한 것이다[각주:1].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대부분의 글은 그 시기에 선보인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거나, 혹은 작가 인터뷰를 기반으로 특정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 연유, 작가의 의도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본고에서는 먼저 사진-조각의 정의와 등장 배경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고, 사진을 직접적으로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 <데오도란트 타입><더 플랫>을 중점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더 스컬프처><뉴 스트럭처> 시리즈에서는 전통 조각에서 가져온 레퍼런스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전통적 조각으로 회귀를 시도했다. 사진-조각이라 불리고 있는 권오상 작품은 전통적으로 분류되어 온 장르 구분 중 하나인 사진 혹은 조각 분야에서 이해되기에는 충분치 않은 경계적 특성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미술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글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1978)에서 다루고 있는 전통 장르 개념의 해체와 북해로의 항해: 포스트 미디엄 시대의 예술(A Voyage of the North Sea: Art in the Age of the Post-Medium Condition)(2000)에서 말하는 포스트 미디엄 조건에서의 매체에 관한 논의를 기반으로 권오상의 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지속적으로 이어져나가고 있는 관심사의 변화과정을 추적할 예정이다.

 

. 사진-조각의 정의와 등장 배경

온라인 예술 채널 아트 레이다(Art Radar)는 동시대미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What is...?” 시리즈를 연재하였다. 디지털 아트, 남아시아의 미니어처 아트, 로봇 아트, 실 아트(string art), 단색화 등 특정 국가 또는 재료, 사조 등으로 묶일 수 있는 몇몇 작가들을 소개하였다. 20152월에는 사진-조각(photosculpture)’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였고, 기사에서는 권오상의 작품도 다뤄졌다.[각주:2]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사진-조각이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여러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된 사진을 기반으로 사진 여러 장을 활용하여 부조 또는 조각을 제작한 것을 의미한다. 사진-조각의 역사를 살피다보면, 1859년 프랑스의 사진가이자 조각가인 프랑소아 윌렘(François Willème)이 가장 처음으로 사진-조각을 고안해낸 것을 알 수 있다. 윌렘이 사용한 장치는 24개의 섹션으로 분할된 돌아가는 플랫폼으로 구성돼 있었다. 모델이 포즈를 취하면, 15도씩 떨어져서 원을 그리며 놓인 24개의 사진기에서 각각 사진이 촬영되고, 각기 다른 앵글에서 찍힌 사진들을 모으면 대상을 가장 현실과 가깝게 묘사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이 같은 과정은 동시대미술에서의 사진-조각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사진과 조각이 함께 활용된 첫 번째 예라고 할 수 있다.

윌렘의 발명품이 나온 지 100년이 지난 1960-70년대에 이르러 사진-조각은 예술의 분야에서 출현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점차 다양한 매체를 혼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실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이 각광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매체는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이 순수미술의 영역 안으로 편입되면서, 많은 작가들은 사진을 이용한 혼성적 형태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을 보여주는 전시들로는 197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조각에 들어간 사진(Photography into Sculpture)가 있다. 23명의 미국, 캐나다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현대 기술문명의 진보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각주:3] 그 외에도 <렌즈를 기반으로 한 조각(Lens-Based Sculpture. The Transformation of Sculpture through Photography>(리히텐슈타인미술관, 2014.5.16-8.31), <사진적 오브제(The Photographic Object, 1970>(하우저앤워스갤러리, 2014.6.26-7.25), <조각의 이미지(L’image dans la Sculpture)>(퐁피두센터, 2013.5.2-8.5) 등이 있다.

사진-조각의 종류에는 사진을 엮은 것(Photoweaving), 3D 사진-조각(3D Photosculptures), 사진과 다른 재료들을 한 데 섞어 만든 콜라주, 사진-조각적 설치작품까지 다양하다. 사진-조각을 제작해 온 아시아 지역 작가로는 베트남 출신의 딘 큐 레(Dinh Q. Le, b.1968)[각주:4], 파키스탄의 라시드 라나(Rashid Rana, b.1968), 한국의 권오상(b.1974), 장승효(b.1971), 고명근(b.1964), 호주의 저스틴 카마라(Justine Khamara, b.1971), 일본의 유키 키무라(Yuki Kimura, b.1971), 인도의 자리나 빔지(Zarina Bhimji, b.1963), 재시리 아비찬다니( Jaishri Abichandani, b.1969), 이란의 나비드 누르(Navid Nuur) 등이 있다.

  

. 권오상의 사진-조각에 나타난 혼성적 특성

1. 데오도란트 타입(1998~현재)

크지 않은 체구의 몸을 가진 권오상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나서, 손쉽게 제작 및 운반이 가능한 가벼운 조각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조각의 재료로 사용되어 오던 나무나 청동 같은 육중한 재료 대신 그가 고안해낸 것은 우레탄폼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을 콜라주한 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데오도란트 타입이라는 시리즈명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데오도란트는 사람의 체취를 약화시키기 위해 다른 것으로 덮어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사용된 것으로, 그의 작품이 실제 어떤 대상과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과 다른 재현된 대상임을 은유한다. 또한 데오도란트 뒤에 타입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칼로타입(Calotype), 암브로타입(Ambrotype)과 같이 사진의 역사에서 화학적 처리 방식에 따라 달리 이름 붙여진 기존의 기법 중 하나로 데오도란트 타입을 위치시키고픈 작가의 욕망을 드러낸다.

<참을 수 없는 무거움>(1999)은 말 그래도 가벼운 돌멩이 조각이었다. 돌의 사진을 여러 겹 붙여 돌을 닮은 덩어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쌍둥이에 관한 540의 진술서>(1990)은 동일한 외관을 한 두 명의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의 작업노트에 따르면 이 인물을 실제 쌍둥이가 아닌 한명의 인물을 두 번 복제해 낸 형태였다. 사진 이미지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진실과는 무관하게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고,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쌍둥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에 관해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포촘킨적 사기행각[각주:5]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8세기 중엽, 러시아의 절대군주가 된 예카테리나 2세는 표도르 3세를 축출하면서 제위에 올랐고, 러시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성공한 통치자였다. 그의 남성편력은 매우 대단했는데, 그레고리 포촘킨은 수많은 정부 중 한 명으로 크림반도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787년 여제가 크림반도 시찰을 예고하자, 낙후된 마을 풍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돈된 시가지 풍경을 그린 가리개를 강변에 세워 여제의 환심을 사게 된다.[각주:6] 속은 텅 비어있는, 그러나 2차원의 그럴싸한 이미지로 실체를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권오상의 데오도란트 타입을 포촘킨적 파사드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권오상의 사진-조각은 분명하게 그것이 실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만든 3차원의 오브제는 멀리서 보았을 때는 실제 크기와 유사하게 만들어져 있어 그것을 진짜로 착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 그의 사진 콜라주는 사진이라는 투명한 매체를 이용한 조각이지만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연결고리가 느슨하며, 이음새가 자연스럽지 않아 그것이 완벽한 가짜임을 전면에 노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권오상이 사진을 이용해 조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포촘킨적 파사드의 제작과정과 유사할지라도, 그것이 가짜임을 태연하게 직접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제작 목적의 상이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의 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 중에는 유독 인물상이 많다. 가족, 동료 작가를 비롯해 추후에는 작업실 어시스턴트까지 일반 대중(ordinary people) 그 누구라도 가능한 듯 보인다. 기념할만한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한 인터뷰에서 권오상은 주로 친구들이나 미술관계자와 같은 가까운 사람을 모델로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촬영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함께 작업하기 편한 사람을 찍게 되더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Miss>(2002)의 경우에서처럼 특정 포즈는 잡지나 티비 광고를 참고하여 변형하기도 하고, <Pieta>(2007)와 같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패러디하기도 하는 등 일반 대중을 모델로 활용해 작가가 고안한 구성을 다양하게 재현한다.

2008년에는 영국 맨체스터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 <데오도란트 타입>을 개최했다. 작가는 맨체스터의 작가 레지던시에 머무르면서 도시에 체류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넓은 공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던 그는, 그곳에서 보았던 인물상이나 기마상과 같은 기념 조각들, 여유롭게 도시를 산책하는 각양각색의 시민들을 등신대 크기의 사진-조각으로 제작했다. 각기 다른 넓이와 높이의 좌대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넓은 전시장 공간을 채웠으며, 관객들이 전시장에 들어와서 관람을 하는 모습은 마치, 무엇이 조각인지 무엇이 관객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아이소핑크로 가벼운 뼈대를 만들고 사진 수백 장을 붙여 사진조각을 만드는 그에게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이슈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그때 그가 관계를 맺거나, 경험하거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누구를 다뤄도 어색하지 않았다.

2012년에 이르러서는 다루는 대상 자체를 확장시켜 보려고 시도했다. 하나의 동물, 인물, 물체의 형태를 시각화해 왔던 과거와는 달리, 하나 이상의 여러 사물을 결합시켜 좀 더 복잡다단한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직접 사진을 찍어 제작하는 방식 이외에도 전혀 연고가 없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같은 인물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여러 요소가 섞여 새로운 양감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권오상은 고전 조각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이질적인 요소가 뒤죽박죽 결합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그가 다룰 대상이 무엇인지가 이전보다 좀 더 중요해지게 됐다. 전화기, 가방, 섬유유연제, 사다리 등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표가 다 노출되어 있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제품들과 골동품 도자기, 기암괴석, 중국식 화초, 불상 등 아시아의 전통적 요소를 보여줄 수 있는 특징적인 오브제를 한데 뒤섞음으로써 전통과 현재, 혹은 동양과 서양 같은 대립점에 위치한 이념들을 한자리에 끌어 모았다.


2. 더 플랫(2003~2010)

잡지 속의 명품시계를 보고 차보고 싶다는 동료작가의 말에 권오상은 그것의 사진을 오려서 그의 손목에 채워주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조각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라면 사물,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덧붙였다.[각주:7] <데오도란트 타입>에 이어 그가 선보인 <더 플랫> 시리즈는 대중매체, 잡지 광고 등에서 오려낸 상품의 이미지를 오린 뒤 그것을 철사로 고정시켜 세운 다음,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큐레이터 류한승이 썼듯이, 더 플랫 시리즈는 입체(상품)평면(잡지 이미지)입체(조각)평면(사진)으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사진의 평면과 조각의 입체를 절묘하게 결합시킨[각주:8] 것이다. <데오도란트 타입>에서 사진을 이용해 조각을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면, <더 플랫>에서 작가는 이미지와 실재를 가지고 여러 차례 차원 변경을 감행한다. 관객은 최종적으로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미지를 자세히 관찰한 뒤, 제작 과정을 상상한다면, 손에 잡히기 전에 빠져 나가고 또 새로운 것이 손에 놓인다는 점에서 마치 서커스의 저글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권오상의 형식-실험은 <더 플랫>을 통해 좀 더 복잡한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한번 흥미로운 형식의 게임을 발견하고 나면, 권오상은 그것을 놓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틀 안에서 업데이트된 새 버전을 내놓는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한 <더 플랫> 시리즈는 대개 명품 시계, 귀금속, 향수, 악세서리, 화장품 등 특정한 종류의 상품만을 모아서 세워둔 것이었다면, 2010년 제작한 <더 플랫> 시리즈는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듯이, 200912월호 잡지 월페이퍼에서 오린 다양한 오브제들을 오려서 화면을 구성한 형태이다. 월페이퍼는 건축, 패션, 여행, 미술 등을 고루 다른 다국적 잡지로, 멋진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전자가 유형별로 오브제를 모아 만든 작품이라면, 후자는 동일한 시기에 생산된 이미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오브제들이다. 사진과 조각의 영역을 넘나드는 이 시리즈에서도 주목할 만 한 점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본질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0년 선보인 새로운 <더 플랫> 시리즈는 2003년의 그것과 꽤 다른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데오도란트 타입> <더 플랫>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분명 형식 실험에 더 치중한 것이었겠지만, 그 시리즈를 통해 재현하고 있는 이미지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2003년 버전에서는 화면 속에 위치한 각각의 사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소비사회에서 통용되는 상품의 가치에 관해 되묻게 했다면, 2010년 버전에서는 전경과 후경이 존재하며 가득한 화면 구성이 두드러져 마치 한나 회흐(Hannah Höch)의 포토몽타주를 연상하도록 한다. 포토몽타주(photo-montage)란 동일화면 내에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합성해 이질적 이미지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는 기법이다. 한나 회흐, 존 하트필트(John Heartfield)와 같은 독일 다다이즘 작가들은 1930년대 초반 포토몽타주 기법을 활용해 당대의 정치 상황을 풍자하기 위한 작업을 다수 제작하였다. 2010년의 <더 플랫> 시리즈는 화려한 이미지들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단숨에 작품에 매료되게 하지만, 동시에 광고에 의한 자극을 통해 대중이 욕망하게 되고, 보이는 이미지로만 판단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질문명에 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문화를 즐기는 편에 속할지도 몰라요[각주:9] 권오상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소속 갤러리와 꾸준히 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작업량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제작 어시스턴트 고용이 불가피하며, 그들의 노동에 관한 정당한 보상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 판매 이외에도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소속 없이 기획하고 글을 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들이 있다. 미술가 역시 직업인으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하는 경제적 조건이 있다. 미술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하고, 공적 기금이나 후원자에만 의지하는 것보다는, 작품 판매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자금 운용 체계를 만들고, 그것을 활용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일종의 CEO 마인드를 갖는 일은 현대 사회에서 미술가가 미술을 하면서 그것으로 자생하기 위한 영리한 생존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과 미술이 합치되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일 거라는 말처럼, 작가의 삶의 방식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작업을 물질문명, 자본주의 비판이라고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 ‘기술적 지지체로서의 사진-조각

권오상의 작업을 사진과 조각,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형식 실험이라고 본다면, 그의 사진조각은 전통적인 장르에서는 구분이 불가능한 경계에 놓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데오도란트 타입>이나 <더 플랫> 이후 권오상은 <더 스컬프처>라는 청동과 같은 전통적 재료를 활용한 조각이라든지, 사진 이미지를 확대 출력하여 공간에 세워 둔 <뉴 스트럭처> 등을 선보이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조각가로 규정하려 했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조각의 범주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를 보였던 이론가 중에는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있다. 1990년대 말부터 크라우스는 포스트 미디엄에 관한 논의를 지속해 왔는데, 이것은 모더니즘적 매체특정성의 종언을 전제로 매체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크라우스는 그린버그식의 모더니즘이 비평적 유효성을 상실한 시대에서 포스트 포멀리스트적 면모를 드러내며 해석의 기반이 되는 기존 이론적 틀을 깨고 그 범주를 확장시켰다.

그 중에서도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1978)는 현대조각의 변화 양상을 잘 짚어낸 대표적인 글로 평가받고 있다. 크라우스는 그린버그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것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설정하지만, 그 역시도 형식을 기반으로 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크라우스는 기념적인 재현으로서의 전통적 조각부터 점차 확장되어가는 조각의 범주를 추적한다. 복제품의 등장, 기념비를 세울 장소에 두지 않았다는 점, 재현에 충실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기존의 조각과 다른 양상을 띠는 조각들을 설명한다. 놓여야할 장소를 잃어버린 모더니즘 조각은 기념의 대상이 사라지고 자기 지시적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 조각은 점차 건축이 아닌 것또는 풍경이 아닌 것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풍경, 풍경이 아닌 것, 건축, 건축이 아닌 것 4개의 기호 항으로 구성된 다이어그램은 단순히 대립적 관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기호항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영역과 중성적 영역까지를 다루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작가들은 이런 용어가 혼합되어 생성된 새로운 범주에 포함되는 작품을 대거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크라우스는 이제 조각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조각이라는 범주 내에 놓여있지 않고, 확장된 장의 한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조각은 모더니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그린버그가 주장해 온 미술의 순수성은 이제 동시대미술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기술하고 있다.[각주:10]

1980년대 미국 미술계에서는 미술시장이 확대 및 활성화되면서 미술의 상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개념미술 역시 판매의 대상이 된 상황 속에서 크라우스는 개념미술이 의미 없는 동어반복이라 비판하며 아방가르드로 보는 것에 반대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미술은 점차 스펙터클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라우스는 매체라는 논리가 없다면 미술은 키치로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 매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모더니즘이 키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이다[각주:11]고 언급하며,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구조주의 이론을 적용하고 있었다. 전통적 예술에서 논의되는 장르가 아닌, 일련의 규칙을 제공하는 틀 기술적인 지지체(technical support)’ 로서의 매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크라우스는 전통적 매체의 특권적 지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모더니스트적 매체 개념의 대안으로 포스트 미디엄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냈다.[각주:12] 전통적인 장르의 구분이 불가능해진 동시대미술계에서 미술 작품이 내용에 부합하는 고유의 매체, 형식을 갖는 것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용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한 구현방법에 관한 철저한 탐구가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

권오상이 작품에서 사용하는 사진-조각이라는 새로운 미디엄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매체로 규정될 수 없는 경계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파편화된 이미지를 모아 얼기설기 동시대적 형상을 구현해내고, 대중매체와 광고, 소비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의 일부를 화면 내에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권오상의 작품에 있어서 매체는 크라우스가 말하는 기술적인 지지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나가는 글

지금까지 <데오도란트 타입> <더 플랫>을 중심으로 권오상의 사진-조각에 나타난 혼성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사진으로 만든 텅 빈 조각, 사진을 세워놓고 다시 그것을 찍은 사진 작업 이후에 권오상은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들로 상상하여 제작한 전통적 재료로 만든 조각 <더 스컬프처>, 3차원의 공간에 세워진 스테빌 <뉴 스트럭처> 등 끊임없이 실제와 환영, 2차원과 3차원, 사진과 조각의 경계를 오가는 형식 실험을 펼쳐왔다. 대부분의 경우 권오상의 작업의 핵심은 지속적인 형식 실험에 있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자코메티와 브레송을 여전히 유효한 재현의 도구로 삼는 것, 그들을 미술사의 박제된 이름으로부터 구해내 현시대 예술의 실행가능한 매뉴얼로 가공하는 것이야말로 권오상의 변형된 조각[각주:13]이라고 썼다. 권오상의 조각은 분명 포스트모던적 상황 속에서 모더니즘적 장르특정성에서 벗어나 사진과 조각이라는 각기 다른 차원을 매개하며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동시에 그의 작품은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듯 명료하게 특정 순간을 담고 있어 명확한 독해가 가능하다. 한편, <뉴 스트럭처> 또는 <더 스컬프처>의 대형 작업 일부는 크라우스가 비판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미술의 스펙터클화 경향에 편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권오상이 작품을 통해 실행에 옮기고자 한 형식 실험들은 3D프린터가 개발되어 나온 현재의 상황가지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시대의 예술은 어떠해야 할지에 관한 고민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Rosalind E. Krauss, A Voyage on the North Sea: Art in the Age of the Post-Medium Condition, Thames & Hudson Inc., 2000.

Rosalind E. Krauss, Under Blue Cup, MIT Press, 2011

윤난지 엮음,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서울: 눈빛, 2004.

정연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서울: A&C, 2014.

 

학위논문

안해숙,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미디엄 조건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정기간행물

Rosalind E.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October, no. 8, MIT Press,

1979, pp. 30-44

Rosalind E. Krauss, “Two Moments from the Post-Medium Condition”, October 116(Spring 2006), The MIT Press, pp.55-62

Robert. Sobieszek, “Sculpture as the Sum of Its Profiles: Francois Willeme and Photosculpture in France, 1859-1868”, The Art Bulletin, Vol. 62, No. 4, 1980, pp. 617-630.

김지훈, 매체를 넘어선 매체: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매체 담론, 한국미학회, Vol. 82, No. 1, 2016, pp. 73-115.

최종철, 로잘린드 크라우스 포스트 미디엄 이론의 이중성에 관한 변증적 고찰,

한국미학예술학회, Vol. 46, 2016, pp. 211-263.

정연심, 포스트-미디엄과 포스트프로덕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미술이론과 현장, Vol. 14, 2012, pp. 187-215.

전영백, 확장된 영역의 미술사: 로잘린드 크라우스 미술이론의 시각과 변천,

현대미술사연구, Vol. 15, 2003, pp. 111-144..

함영준, 조각의 전통을 추적하는 메타-조각, 포토닷, 2016. 4.

류한승, 조소과 94학번 황금시대, 아트인컬처, 2014. 11.

백 곤, 바로크 풍 조각의 유희, 권오상의 사진조각, 미술세계, 2012. 6. pp.148-149.

반이정, 권오상의 패러독스, 포토넷, 2006. 4.

임근준, 환영과 실재를 가지고 노는 새로운 방법-권오상, 아트인컬처 2006. 3.

 

전시 카탈로그

Mary Statzer, The Phtographic Object 197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6.

신승오, 이미지의 기술, 페리지갤러리, 2014.

류한승, 권오상의 현대미술, 아라리오갤러리, 2012.

Eric C. Shiner, “The Manifold Destiny of Osang Gwon”, 아라리오갤러리, 2008.

Juhl. J. Lee, “Return of the Sculpture”, 아라리오갤러리, 2008.

이주현, 조각의 귀환, 아라리오갤러리, 2008.

최금수, 상상과 현실에 관한 몇 장의 진술서, 인사미술공간, 2001.

김승현, 지록위마-사진의 거짓 혹은 참 중에서, 인사미술공간, 2001.

이영준, 권오상 시스템에 대한 소고, 인사미술공간, 2001.

황록주, 마무리는 데오도란트 타입으로, 인사미술공간, 2001.

 

온라인 아티클

“What is photosculpture?”, Art Radar, 2015.2.27. http://artradarjournal.com/

2015/02/27/what-is-photosculpture-art-radar-explains/

Ian Wallace, “What Is a Photosculpture? Explaining Art’s New Hybrid Obsession”, Artspace, 2014.7.11. http://www.artspace.com/magazine/interviews_features/

trend_report/what-is-photosculpture-52420

  



  1. 2001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을 기해 발간된 도록에는 황록주(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 이영준(계원예대 교수), 김승현, 최금수(네오룩 대표)가, 전속갤러리인 아라리오갤러리 개인전을 위해 이주현, 에릭 샤이너,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글을 작성했다. 그 외에도 각종 미술전문지 및 단행본을 통해 임근준(미술평론가), 반이정(미술평론가), 백곤(장욱진미술관 수석큐레이터), 함영준(일민미술관 큐레이터), 김인선(스페이스윌링앤딜링 큐레이터) 등의 글도 찾아볼 수 있다. [본문으로]
  2. “What is… photosculpture?”, 《Art Radar》, 2015.2.27. http://artradarjournal.com/2015/02/27/what-is-photosculpture-art-radar-explains/ [본문으로]
  3. Press Release of (1970.4.8.-7.5) https://www.moma.org/momaorg/shared/pdfs/docs/press_archives/4438/releases/MOMA_1970_Jan-June_0035_36.pdf?2010 [본문으로]
  4. 딘 큐 레는 2015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개인전 (2015.7.25.-10.12)을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사진과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그는 태피스트리 모양으로 두 장의 사진을 엮은 작업을 선보였다. 베트남 전쟁 사진과 헐리우드의 상업이미지를 교차시켜 양극단의 상황을 동시에 보여준다. [본문으로]
  5. 임근준, 「환영과 실재를 가지고 노는 새로운 방법-권오상」, 《아트인컬처》, 2006. 3. [본문으로]
  6. 승효상, 「‘포촘킨 파사드’와 도시의 속살」, 《경향신문》, 2015.8.25. [본문으로]
  7. 권오상 작가와의 인터뷰, 2016.5.16 [본문으로]
  8. 류한승, 「권오상의 현대미술」, 아라리오갤러리, 2012 [본문으로]
  9. 권오상 작가와의 인터뷰, 2016.5.16. [본문으로]
  10. 유승민 역,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 윤난지 엮음,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눈빛, 2009, pp. 149-162. [본문으로]
  11. Rosalind Krauss, Yve-Alain Bois, Benjamin Buchloh, Art Since 1900: Modernism, Antimonernism, Postmodernism, Thames & Hudson, 2007. p. 674. [본문으로]
  12. 안해숙,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미디엄 조건’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본문으로]
  13. 반이정, 「권오상의 패러독스」, 《포토넷》, 2006. 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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