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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전시 리뷰] 여성, 역할, 미술: 임윤경 개인전 <친숙한 집단, 낯선 개인>(2016.8.20~9.11)

by ㅊㅈㅇ 2016. 9. 20.

 

여성, 역할, 미술

<임윤경 개인전: 친숙한 집단, 낯선 개인>(2016.8.20~9.11, 스페이스윌링앤딜링) 리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속도가 여전히 느릴 수밖에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열 달 동안 배가 불러서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보통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고, 보살피는 역할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주로 해왔다. 가정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 말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엄마들은 출산 이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일을 한다. 집에 떼어놓고 오게 되는 아가는 보모, 혹은 할머니들의 몫이다. 토크에서 임윤경 작가가 언급했던 것처럼, 여성이 해오던 육아 혹은 집안일은 또 다른 여성의 도움으로 그 공백을 메우게 된다. 30대의 여성이라면 여성으로서의 역할에 관해 누구라도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작가는 유년기에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과 더불어서 보모의 보살핌을 받았고, 또 자라나서 미국 유학을 떠나서는 뉴욕에서 보모로 용돈을 벌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성이라면 아이 돌보는 일과 연관된 에피소드 하나쯤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2012175갤러리에서 선보인 첫 개인전에 출품했던 <너에게 보내는 편지>는 보모들이 자신이 키웠던 아이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작업이다. 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전시에 출품한 <Q&A>를 읽을 수 있다. <Q&A>(2016)는 두 개의 모니터로 나뉘어서 상영되는데, 영상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어머니와 딸, 이렇게 네 가지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참여로 만들어 진다.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은 제외하고, 각기 다른 역할의 인물들을 연결해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했던 점에 관해 자유롭게 질문하도록 했다. 보모 중에는 조선족이나 필리핀 여성 등 타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임윤경 작가와 또 다른 필리핀 여성이 직접 통역을 했다. 작가는 또한 참여자들 사이를 잇는 매개자의 역할을 했다.

두 개로 나뉜 모니터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당사자는 매우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져있는 모습이었다. “일을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인지”, “타지에서 일하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참았는지”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안했는지등 매우 사적인 영역에 관한 질문들이 주를 이뤘다. 비슷한 질문이라도 상황이나 질문자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했는데, 관계는 쌍방의 상황에서 생성되는 매우 특수한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영역에서 이뤄졌던 일을 외부인 에게 맡길 때에는 상당한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그 사람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처럼 애착을 갖고 돌본 아기라고 하더라도, 고용주와의 계약관계가 종료되면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될 일은 없다. 어쩌면 한 공간에 꽤 오랜 시간에 있었을,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현실에서는 절대로 나누지 않을 지극히 사적인,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관해, 언어적, 문화적 차이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정 내의 여성의 역할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대상에 관한 미시적 관점을 가진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이주민의 삶, 노동자의 권리, 친밀함의 정도 등 참여자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복잡다단한 그물망을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장을 따라 들어가면, <이름 던지기>(2016)라는 또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된다. 영상 작업 옆에는 <이름 던지기 규칙>이 짤막하게 제공돼 있는데, 가까이에서는 가정 내의 호칭을 부르며 공을 던지고, 멀리 있을 때에는 이름을 부르면서 공을 던지는 간단한 게임이다. 실제로 영상에는 임윤경 작가의 직계 가족이 등장해 서로의 이름과 호칭을 부르며 서로서로 공을 던진다. 우리 모두는 여러 호칭을 갖고 살아간다. 가정 내에서만도 아내, 엄마, , 언니, 동생, 며느리, 올케, 손녀 등으로 불리며, 사회에서는 각종 직함으로 불리니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기대되는 역할과 책임이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이름으로 부르는 서구권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름 대신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의 엄마라고 불리기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는 원래의 이름은 사라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장 중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원래 이름 대신 호칭으로 누군가를 지칭함으로써 고유한 특성을 가진 개인 대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특정 역할을 가진 누구인지가 더 강조된다. <이름 던지기> 영상 안에서 엄마, 아빠, 아들, , 네 명의 참가자는 이름과 호칭을 번갈아 부르는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자녀가 부모를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현실에서 흔치 않기 때문이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적힌 <이름 던치기 규칙>1번부터 7번까지 일목요연하게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말장난, 허무 개그처럼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게임이 응당 가져야 할 목표가 없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느슨하게 반복되는,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참여자와 관객 모두로 하여금 왜 집단으로 명명할 때에는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개인으로 대할 때에는 낯선 상황이 만들어지는 지 숙고해보게 한다.

<창의적 체험>(2016)은 실제 입시미술 교육 제도 내에서 소묘 드로잉 지침서로 여겨지는 스크립트에 따라 색다른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 영상 작업이다. 작가가 귀국하고 예술고등학교에 가보니, 15년 전 입시미술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여전히 입시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동시대미술이 더 이상 입시미술에서 습득 가능한 소묘력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시제도도 계속 바뀌고 있는 추세이며, 교육제도나 가르치는 사람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 대신, 오히려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전복시켜 뻔한 가르침이지만 학생이 그것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15년 동안 거의 바뀐 것이 없는 지침서를 토대로 종이 위에 연필로 소묘를 하지 않는 대신, 무용을 하거나, 공간에 설치미술을 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지침서는 실제 선생님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는데, “한번 뒤로 나와서 자신이 한 걸 관찰해 보라” “가장 밝은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줘봐” “반복 연습을 필수와 같은 문구들은 실제로 선생님들이 많이 쓰는 문장들이라 미술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밥 로스의 교육방송을 패러디 한 김범 작가의 <노란 비명>(2012)이 해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면, <창의적 체험>은 뻔하지만 진지한 지침서 나레이션과 함께 예기치 못한 멋진 결과물이 함께 제시되어 오히려 일종의 희망을 가지게 한다.

<Q&A>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한국인과 제3세계 이주민, 여자 대 또 다른 여자, 엄마와 딸과 같은 다양한 층위의 관계들을 한데 뒤섞어 당연시 여겼던 위계 혹은 보이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범을 헤집어놓는다. <이름 던지기>에서는 역할로 구분되는 호칭 대신, 개인의 개별적 특성이 강조된 이름을 부르는 방식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관계망을 흔든다. <창의적 체험>에서는 가르침을 일방향적인 것으로 생각지 않고,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발화자의 내용을 폭넓게 이해하는 열린 사고를 보여준다. 작가 임윤경은 누구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개별적 특성에 관심을 가지는데,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역할이나 기준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대신, 한국 사회에서 답답하게 느끼는 지점들을 주제로 유의미한 말장난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가족, 교육, 미술, 경제 활동,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은 20-30대 여성 누구나 매일매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주위 사람들과 인위적인 상황을 연출해 영상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통해 당연하게 바라보았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읽어낸다. 작가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공적이고, 더 나아가 정치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싶다. 작가 목수정의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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