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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인터뷰] 세상, 우리, 그리고 나 : 작가 김동찬 인터뷰

by ㅊㅈㅇ 2017. 1. 10.

경기도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 김상태 


세상, 우리, 그리고 나

작가 김동찬 인터뷰


김동찬은 솔직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성향이 작업에도 잘 드러난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독특한 그이지만,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주제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작업에서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사회 속의 한 개인인 에 관해 말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새롭게 읽어보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스트 슬로건처럼, 그가 가장 편하게, 잘 말할 수 있는 주제로부터 모든 작업이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해 온 작업들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윈도우갤러리에 설치된 드로잉 작업양이 꽤 많아 보인다. 주로 어떤 주제로 드로잉을 했는가?

<행동을 위한 드로잉>2011년 독일에서 했던 작업이다. 베를린에서 1년 정도 거주하면서 다른 도시에 있는 학교를 가기 위해 한 달여의 시간동안 그린 작품이다. 연필, 색연필, 종이테이프 등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했다. 주로 다룬 주제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는 있다. ‘의 형상이다. 공은 어디론가 자유롭게 굴러갈 수 있는 특성을 갖는다. 딱딱하게 굳어서 고착화되어있는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공에 관심을 가졌다. ‘압정역시 자주 그렸다. 교육, 제도, 혹은 사회적 규범 같은 것들이 우리를, 나를 경직시킨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가마도 여러 번 나타난다. 사람의 연골은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이 매우 탁월하다. 그래서 자전거나 마차를 타는 것보다도, 가마를 탔을 때의 승차감이 뛰어나다. 가마는 여러 사람이 탈 것을 들어 한 사람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교통수단이다.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독특한 매력을 갖는다. 한 명을 위해 여러 명이 희생하는 형태의 구조, 그 중에서도 그 한 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 놓인 <radar series-I believe I can’t fly>(2016)라는 작품도 언뜻 가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상이자 가마 같은 형상인데, 실제로는 분리도 안 되고 사용할 수 없는 형태이다. 창문에는 방음제를 달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창문을 닫으면 스스로를 주변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차단시킬 수 있다. 조형물 위에는 공기정화식물을 올려놓아, 좋은 기운을 퍼뜨릴 수 있도록 했다. 화분에는 구글에서 굴뚝을 검색해서 찾은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형태를 그려 넣었다. 마치 프로펠러처럼 위에 매달려 있는 윈드 스크린은 느린 속도로 반복해서 돌고 있어 절대로 하늘을 날 수 없는 구조물이다.

미술계 내에서 활동을 이어가려면 좋은 사람들을 더 만나고, 관계를 맺어야할 것 같다. 마치 품앗이를 하듯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성장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가마의 아래에서 받쳐 들고 있는 역할을, 또 언젠가는 나 역시도 가마 안에 탈 수 있게 되는 상황을 상상했다.

<백지>(2016)<나는 더 이상 비보이가 아니다>(2012), <nuclear umbrella>(2013)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게 빼곡히 적었다.

그렇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문장들로 캔버스를, 칠판을, 종이를 가득 채워나가는 작업이다. 문장을 빽빽하게 적어 넣음으로써 빈 면을 가득 채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속에 있던 내용을 바깥에다 꺼내두는 기분이라 비워가는 느낌도 크다. 보통 부정적인 생각이나 내용을 주로 썼는데, 칠판에 쓰다 보니 그 글이 나에게 다시 반사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안 좋은 말들을 쓰다보면 분노가 점점 커지고, 쓰는 속도도 더 빨라진다.

<나는 더 이상 비보이가 아니다>에서는 이 같은 괴로움을 행복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상쇄시켜보려고 한 작업이다. 어렸을 때 춤을 열심히 췄었고, 그 시간이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판 위에 글을 가득 쓴 뒤 그 위에서 춤을 추면서 글자들을 지워나가는 퍼포먼스 작업이다. <nuclear umbrella>에서는 우산 안에 글씨를 써내려갔는데, 디스플레이 중인 전시장 한 가운데서 진행했다. 비가 올 때 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았던 당시의 나는 투명 우산위에 아무도 읽을 수 없는 나만의 글씨를 가득 채워 누군가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오프닝 날 전시장에 축구공이 놓여 있었다. 출품된 사진 작업의 축구공과도 이어지는 맥락이 있는가?

나에게는 특정 시간을 들여서 어떤 행위를 해내는 것이 작업 과정에서 중요한 경우가 많다. 축구공을 그냥 들고 전시장에 가져다두는 것이 아니라, 드리블을 하면서 미술관에 오고 싶었다. 대부도의 경기창작센터에서부터 경기도미술관까지는 총 37km, 출발한지 9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축구를 취미로 즐겨하면서 미술을 하는 것과 닮은 지점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축구 선수들은 시합에 나가기 전 평소에 훈련을 많이 한다. 그리고 각 선수는 자신의 포지션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담담하게 해낸다. 자기 자리에서 후회 없이 뛰었다면, 시합을 졌다 해도 그 경기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경기로 기억에 남는다.

기존 영상 작업들을 비디오 조각처럼 제시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다채널로 동시에 틀었다. 예전에 영화에서 음향 일을 하던 시절 알던 가게에서 오래된 텔레비전을 싸게 구입했다. 작품 구상하면서 가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영하고 있는 영상은 모두 이전의 퍼포먼스 영상이다. 주로 나는 혼자 긴 시간동안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전체 시간동안 영상으로 기록한 뒤 후편집의 과정을 거쳐 완성시킨다.

가장 최근 퍼포먼스는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빨래>. 항상 잘 안 보이는 구석을 좋아했다. 그 곳을 좀 희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빨래를 하면 때가 모두 빠지고 하얗게 변한다는 시각적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억지스럽고, 역설적이도록 빨랫줄에 걸어둔 옷가지에 흰 페인트를 칠했다. 공간 드로잉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경기도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 김상태 

<니 탓이오>(2016)내 탓이오라는 문구를 크게 적은 문자 작업이다. 이전에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글자를 썼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보인다.

외국에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1년 동안 느낀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내 탓이오라는 기본적 태도를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 자신은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서 정치인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그들이 크든 작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각자의 자리가 다를 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지 좀 오래됐다. 그래서 점점 더 소심해지는 것 같다. 언어를 맨날 숨기는 작업을 하다가 이번에는 굉장히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말은 누구에게라도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radar series-아는 사람>(2016)은 독일 유학 시절 같은 반에 있었던 동료들과 교수의 얼굴을 석고상으로 떴던 과거의 작업을 이어서 하나의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렇다. 나만의 독특한 면모를 찾아내서 보여주고 싶은데, 그것을 역으로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 사람들의 조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나를 잘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놓여있는 장소의 위와 아래, 앞과 뒤의 맥락을 모두 알아야한다. 하나의 석고상이 다른 석고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화면이 매우 흐리게 처리된다.

<서있는 바톤>(2016)은 기존의 기둥 위에 바톤이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인 작품이다. 퀀텀점프라는 릴레이 전시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가?

경기도미술관 윈도우갤러리에서 네 명의 작가가 시간 차이를 두고 개인전을 개최한다. 릴레이라는 형식에서 한 작가의 전시가 끝나면 그 바톤이 다음 작가에게 전해진다고 볼 수 있다. 큰 틀에서 형식은 그렇지만, 사실상 목표 지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참여하는 네 명의 작가들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함께 달려가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각자의 전시 기회를 통해 각 작가들은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며, 시작과 끝이 모호한 지점을 개별적으로 떠도는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달리기 시합에서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가장 작가 자신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다루는 주제를 좀 더 넓히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거대 담론, 혹은 큰 이야기라고 하는 것들을 다루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남들이 나보다 그 주제에 관해 더 잘 알 것 같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게 풀어낸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로이스 바인버거(Lois Weinberger)는 환경 문제를 작업에서 다룬다. 콘크리트를 쇠망치로 부순 뒤, 그곳에 물을 줘서 잡초가 자라나게 하는 그런 작업이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분명히 큰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육적이고, 흥미롭다. 그럼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작가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다시 내가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면 작은 이야기들로 돌아오게 된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을 들려 달라.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말고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는 곳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직접 소리 내어 읽고, 그것을 녹음해서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해보려고 한다.

또 다른 계획으로는, 실제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 선수들이 하고 있는 행동, 생각을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촬영 및 편집해 종합적으로 모아서 한 장소에서 보여주고 싶다. 내 주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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