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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전시리뷰] 정아람 개인전 <나를 위한 말하기> 2018.10.5-25

by ㅊㅈㅇ 2018. 11. 17.

정아람_공공 신체 프로토콜 Public Body Protocol, HD video and sound, 2015, 2018

정아람_우연히 살아남은 내가 당연히 살아남았어야 할 너에게 Accidental Survivor, HD video and sound, prompter, 2016, 2018

정아람_Peer to Peer, Woman to Woman, Digital video, toilet paper, wood structure, 2017-18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최근 2년여의 기간 동안 여성 혐오와 관련한 범죄, 혹은 성추행, 성폭력 관련한 사건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또 대중매체를 통해 연일 보도되면서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2016년 이전에도 이 같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2016년 이후 이 같은 흐름이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이제는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고 또 해결해나갈 수 있는 단계에 와있다고 여성들이 믿기 시작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옳지 않음에 대한 사회적 동조가 형성되어 있기에 더 많은 여성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연 것 같다. 

이 글은 정아람의 개인전 <나를 위한 말하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되는 일종의 사건 일지이다. 그간의 모든 일을 기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또 기록의 객관성 여부도 완전히 담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 듬성듬성 구멍이 난 채로 몇 가지 사건들을 묶어서 나열하고자 한다. 이 글은 전시나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1. 사건 일지 2016~2018 

정아람의 작업에도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드러나는 2016년 5월 17일에 있었던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시작해보자. 이 사건은 여성 혐오가 기반이 된 ‘묻지마 살인사건’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흐름의 도화선이 되었다. 서초동의 한 노래방에서 김모(34세)씨가 불특정한 여성을 칼로 4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하였으며, 이후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대규모 추모의 행렬이 일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7년 4월 13일 상고심에서 살인범인 김모씨(34)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6년 10월부터 몇 개월 동안은 문화계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많은 ‘폭로’들이 봇물이 터지듯 이어졌다. 문학계, 연극계, 영화계에 미술계까지도 그 물결이 일었고, 그간 숨겨왔던 비밀을 온라인을 통해 익명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이러한 폭로들을 소개하였으며,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로 연일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나날이 이어졌다. 기획자, 교수, 평론가를 비롯하여 작가들의 이름도 다수 거론되었다. 이후 여성예술인연대가 만들어지고, 성명서가 발표되었으며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시사교양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한 저자 조남주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성 차별의 내용을 조합하여 가상 인물의 일생을 이 소설을 통해 서술하였다. 김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 지영은 1980년대 여자아이 이름으로 가장 많이 쓰인 평범한 이름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서 살면서 겪게 되는 차별을 담담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혹자는 이 소설을 문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르포르타주에 더 가깝다고 평하기도 했다. 노회찬이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82년생 김지영을 안아달라’는 당부를 하면서 대중적으로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현재 영화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18년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 중 하나는 아마도 서지현 검사의 검찰청 내부 성추문 사건일 것이다. 2018년 1월 29일, 현직 검사인 서지현이 안태근(전 법무부 검찰 국장)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검찰 내에서 공식화하자, 감사 지적을 이유로 경고를 받고, 보복성 인사발령을 받았다. 8년 전의 일이지만 뒤늦게라도 밝히는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많은 피해자가 역고소를 당하고 꽃뱀, 창녀라는 2차 가해와 음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할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서지현은 현재까지도 강제추행, 직권남용과 보복인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8년 5월에는 남성 혐오 사이트인 워마드의 회원이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진행한 누드 크로키 수업 도중 남성 누드모델의 얼굴과 성기를 도촬하여 인터넷에 게시한 사건이 있었다. 여타 도촬 사건과는 달리 가해자를 특정하기 쉬워 빠르게 검거하였다. 게시글에서는 남자 모델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조롱하였고, 일종의 리벤지 포르노로 기능하였다. 워마드에서는 피해자가 남성일 때에는 언론이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가해자를 비난하고 죄를 엄벌하지만,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 가해자를 보호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는 식의 성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이 사건은 이후 5차례에 걸쳐 진행된 혜화역 시위의 시작이 되었다. 

5월 19일에는 혜화역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이 시위는 다음 카페 ‘불편한 용기’를 통해서 진행된 자발적 시위로,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경찰의 성차별 편파 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만의 시위였다. 모두 붉은색 옷을 입고 참여했으며, “여성유죄 남성무죄” “촛불시위 혁명이고 혜화시위 원한이냐” “성차별 수사 중단하라”와 같은 팻말을 들었다. 이후 6월 9일, 7월 7일, 8월 4일, 10월 6일 총 5차례의 시위가 이어졌다. 주최 측 추산 집회 참가 인원은 1차 1만2천명, 2차 4만5천명, 3차 6만명, 4차 7만명, 5차 1만5천명으로 추산되었다. 

조금은 잠잠해지는가 했던 여성 혐오 이슈는 지난 11월 13일 새벽 아직도 진행 중인 일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으로 다시 불거졌다. 이수역에서 폭행 사건이 있었던 것. 이 사건은 아직 조사 중이라 명확한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쌍방 폭행 사건이 있고 난 뒤 한쪽이 거짓으로 여혐 여론몰이를 유도하였다고 의심받고 있다. 

분명히 개별 사건을 이해할 때에는 명확한 팩트 체크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성 대 여성의 이분법적 구조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들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와 갈등의 대립은 더욱 심화 되어가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인터넷 때문이자, 덕분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혐오성 발언들이 터져 나오고 퍼진 것도 SNS때문 이지만, SNS 덕분에 사람들은 익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공감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자발적인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집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신조어로 살펴보는 온라인에서의 혐오의 움직임 

여전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확연히 다른 온도 차를 느낄 수 있다. 온라인에서 특정 이슈에 관심을 두고 계속 검색하고 따라가다 보면 여러 정보와 분위기를 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여성 혐오 논란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신조어들이 등장했다. 그것들을 쫓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논리가 발전되고 전개되어 온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대부분의 뜻은 페미위키(femiwiki.com)이나 나무위키(namu.wiki) 등 온라인에서 누구나가 접근해서 내용을 첨부할 수 있는 열린 백과사전 개념의 사이트에서 가지고 왔다. 

2006년부터 유행한 단어로 ‘된장녀’가 있다. 예쁘지만 도도하고, 비싼 커피를 마시며 외제차를 타는 남성을 선호하는,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이미지다. 이런 여성에게 비하하는 용어를 붙인 것은 전적 여성 혐오에 기반한 사상이며 부당하다. 이는 이후에 ‘김치녀’라는 비하어로 이어졌다. ‘김치녀’ 역시 이기적이며 사치스러운 여성을 지칭하는 멸시의 의미로 쓰였다. 이후 일반적 한국 여성을 비난하는 용어로 확장되어 사용되며, 여성에 씌우는 비하의 프레임이 되었다. 이러한 성 프레임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검열을 하도록 하며, 남성의 이상적 이성관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외에도 여성을 싸잡아서 비하하는 인터넷 용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김여사’는 운전에 서툰 (중년)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용어이며, ‘맘충’은 변질된 모성애로 인해 자녀의 잘못을 제지하거나 훈계하지 않고 방치, 협조하거나, 제 3자에게 무한한 희생과 이해를 강요하는 개념 없는 어머니들을 일컫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한 엄마들을 조롱 멸시하는 혐오 발언으로 변질됐다. ‘보슬아치’는 ‘보지 달린 것이 벼슬인 줄 아는 여자’라는 뜻으로 일베에서 시작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일베나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여성 혐오, 불법촬영 파일 공유 등에 맞대응하듯이,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같은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미러링’의 전략을 이용해 맞받아치고 있다. 미러링이란 ‘복제 또는 비추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복수심에 의해 의도적으로 상대의 행동을 동일하게 갚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의 여성 혐오를 그대로 바꾸어 남성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태도를 반영하여 등장한 단어들도 많다. ‘한남’이란 한국 남성의 줄임말로, 여성에 대한 비하어의 미러링으로, 여성 혐오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을 지칭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남성 전체를 싸잡아 표현하는 단어로 확장되었다. ‘냄져’는 남자를 뜻하는데, 워마드에서 ㅏ, ㅗ는 양성 모음이라서 긍정적인 의미고 ㅓ, ㅜ는 음성 모음이라서 부정적이라고 주장한 뒤, ㅏ만 2개 들어있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에는 ㅓ가 2개나 들어간다면서(ㅓ+ㅓ=ㅕ) 남자를 냄져라고 바꿔 부르자고 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 외에도 ‘재기해라’는 말은 전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의 남성연대 대표 한강 투신사건을 메갈리아 회원들이 한남충들 한남대교에서 재기하라와 같은 식의 용례로 '성재기가 자살한 것처럼 자살해라'라는 뜻으로 조롱식으로 쓴다. 이러한 단어를 쓰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에 속한다. 

남성을 향한 조롱의 언어들뿐만 아니라, 아직 덜 깨어있다고 여기는 여성을 향한 혐오의 말들도 만들어졌다. ‘흉자’는 한마디로 '흉내 자지'의 줄임말이다. 사실상 명예 남성과 비슷한 뜻이다. '남성주의적 사고방식에 동조하는 여성' 또는 '극단적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여성들'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다. 더 나아가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코르셋을 입는 것과 같이, 메이크업이나 다이어트와 같은 외모 및 몸매를 가꾸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강제되어 노동이라고 생각한 것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쉽게 말해서 예뻐 보이기 위해 꾸미려는 모든 행위가 잘못된 것이고 남성에게 주입 받은 것이고 세뇌된 결과이니 하지 말자는 것이다. 


3. 기울어진 운동장,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나 질서가 있을 때, 다른 한쪽이 이기기 힘든 상황을 뜻한다. 더 많은 여성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고, 사회가 작동하는 여러 요소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관여할 수 있게 된다면 어쩌면 조금씩 바뀌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력은 계속 올라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임금보다 적고, 임신, 출산, 육아, 집안일 등의 의무를 남성보다 훨씬 더 큰 비중으로 떠맡게 된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비난, 조롱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며 유대관계를 맺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이 간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데에는 남성들의 책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미러링’의 방패를 들고 똑같은 방식의 비난을 일삼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도 우려가 되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로 이분화되어 지금의 논란이 과열되는 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듯, 정아람은 남과 여의 구분에 집중하지 않는 대신, 여성 사이의 연대와 말하기의 방식 자체에 주목한다. 그리고 영감을 준 개별 사건의 팩트를 전달하는 것보다 운이 좋게 ‘살아남은’ 여성들의 목소리,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불법촬영 카메라 구멍을 막는 행위, 시위 진압 장면에서의 신체의 움직임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까지 여러 이슈들을 전유하여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한다.

2018년 한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성 일반을 향한 혐오와 수많은 범죄 사건들은 모든 여성에게 매우 급박하고 일상과 밀접한 이슈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미술의 영역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를 찾기 쉽지 않다. 정아람은 대면하기 힘들 수 있는 커다란 주제를 자신의 기존의 관심사의 연장선상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다. 이 전시는 비단 미술을 전공한 학생이나, 큐레이터, 작가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커다란 질문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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