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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인터뷰] 추미림: 픽셀로 구현해 낸 삶의 풍경

by ㅊㅈㅇ 2016. 7. 12.

트렁크갤러리 전시 전경, 2016.


추미림: 픽셀로 구현해 낸 삶의 풍경

 

추미림은 디지털 화면을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픽셀(pixel)’을 사용하여 다차원의 세계를 평면 위에 구축해 왔다. 아파트와 고층빌딩으로 가득 차 있는 도시의 풍경과 각종 링크, 검색어, 이미지들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온라인 공간의 구조적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각화 해낸 것이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채색된 기하학적 도상은 유기체적 선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군집을 형성하며 끝없이 증식한다. 그 외에도 디지털로 작업한 도면 위에 종이 구조물을 덧붙이거나, 손으로 오려낸 템플릿을 이용해 스텐실 기법으로 드로잉을 찍어내는 등 다양한 수작업의 방식을 이용해 디지털 이미지의 차가운 분위기를 상쇄시킨다. 또한 개인적인 추억이나 사적인 감정의 덧입혀졌던 초기 작품과는 달리 최근 작품에서는 점, , 면의 극단적인 형식 실험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경향을 드러낸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인터넷에 접속해있는 시간이 긴 편에 속하는 지금 시대의 젊은 사람들이라면 자연의 풍경보다는 인공적으로 디자인된 이미지에 더 익숙할 지 모른다. 추미림 역시 2D 3D, 온라인과 오프라인, 도시와 웹, 디지털과 아날로그 등 각기 다른 세계 혹은 방식의 간극을 오가며 그만의 방식으로 삶의 풍경을 재해석해 제시한다


Q. [종이 위의 픽셀], [Point of Interest], [일렁이는 그리드에서 태어난 새로운 형태의 모듈]까지 작업의 주된 요소로 픽셀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저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고, 그래서 처음 맡았던 일이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아이콘을 제작하는 일이었어요. 그때 픽셀들로 형상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작은 점 하나의 색과 위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디지털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이용해 나를 둘러싼 풍경의 작은 부분부터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게 제 작업의 시작이었죠.

첫 시리즈 작업인 [픽셀 스페이스]에서는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픽셀을 이용해 구현해내려 했어요. 가상세계에서 우리는 모든 사건과 사물을 이미지로 접하게 되고, 해당 포스트에 제시되어 있는 링크에 링크를 타고 또 다른 이미지로 끝없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발견한 이미지들을 저만의 필터로 재해석해내고, 링크는 하나의 긴 선으로 표현해 각각의 이미지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그려 넣었어요

 

Q. 두 번째 개인전, [Poi(Point of Interest)]에 출품한 작품들은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특정 지역의 지도를 검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이라고 들었다.

 

서울, 분당, 파리, 베르사유 등은 그 동안 제가 거주했던 도시들이에요. 예전에 살았던 그 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는데, 경제적 시간적 이유로 직접 방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때마침 웹 지도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오랜만에 몇몇 도시들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걸 좋아하는데, 구글 어스를 통해 도시를 내려다 보는 시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시점이라 새롭게 다가왔어요. 도시 자체로만 보면 문제도 많고 더럽고 소음도 있지만 인공위성의 시각으로 도시를 보니 조형적으로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물 하나하나가 마치 개별 모듈이 되어 도시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듯했죠. 3D로 출력된 일그러진 영상은 온전하지 않은 나의 기억과 닮아있는 것 같았어요. 출력한 지도 위에 제가 다녔던 길, 카페, 조금이라도 추억이 깃들어있는 공간을 ‘Point of Interest’로 표기했어요. 제가 있었을 때 그대로인 곳을 보면 예전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어요.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Q. [POI(Pont of Interest)]의 구체적인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웹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를 가져와 그 위에 직접 그리거나, 수공예로 만든 오브제를 붙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공위성의 시점에서 내려다 본 지도를 캔버스에 옮겨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종이를 여러 겹으로 쌓아 부피감을 가진 오브제를 제작한 뒤, 빨강, 노랑, 초록 등으로 색을 덧입혔어요. 이것들은 마치 부조처럼 올록볼록 튀어나와 있어 컴퓨터 화면 위에서의 평평함이 아닌 물질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요. 저는 눈과 마우스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과 가위, 풀과 같은 실질적 재료를 손으로 직접 사용해서 제작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디지털적인 감성을 저만의 필터로 거른 다음, 가장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표현해보려 하고 있어요. 종이 같은 따뜻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디지털 매체가 가지고 있는 차가운 감성을 중화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저 역시도 인터넷에 접속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유용한 정보를 얻곤 해요. 특히 파리 유학시절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스카이프에 접속하곤 했죠. 우리는 숨 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온라인 세계에 늘 노출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삶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명백하게 존재합니다. 아시다시피 그럴듯하게 포장된 인터넷 속의 진실이 실제로는 거짓인 경우도 많잖아요


Q. 여러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기업과의 협업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마치 유행처럼 다수의 기업이 예술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최근 들어서는 경기 침체 때문인지 협업 프로젝트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로는 유니클로의 “UT KR ARTIST CHARITY”, 빌리프의 “Moisture trip/Aqua Bomb 패키지 디자인”, 유유제약의 하이큐 제품 및 패키지 작업”, 컨버스의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등이 기억에 남아요. 디자이너로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기존의 작품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주어진 컨셉이나 제품, 상황에 맞게 가장 최적화된 이미지를 새로 제작했고, 결과는 대부분 만족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해요. 언젠가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함께 작업하는 것 역시 유쾌한 자극이 되거든요.

 

Q. 현재 트렁크갤러리에서 개인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전과는 다르게 작품이 모두 블랙 앤 화이트 톤으로 색채감을 배제했고, 형태 자체도 더 단순해진 듯 보인다.

 

기존 작업이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식별가능한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에 소개한 신작은 단순한 선을 이용해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요. 컴퓨터의 픽셀로 작업한 도안을 종이에 출력해 칼로 오려내어 무늬판(stencil template)을 만들고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 찍어 냈어요. 붓과 스펀지에 물감을 묻혀 두드려 만들어진 픽셀은 회화적인 선과 면을 갖게 되었어요. 정해진 틀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흔들리면서 재미있는 것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화면 속에서 제가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전시에는 완성된 작품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에서 사용됐던 템플릿을 함께 제시했어요. 얇은 종이로 만들어져서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템플릿은 제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쏟은 시간과 물리적 행위를 연상케 하는 단서로 기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전 작업에서 개인적 내러티브의 전달, 혹은 주관적 경험을 시각화하는 데 몰두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기본 그리드를 활용해 제작한 기하학적 유닛들을 다양하게 접합시킨 형태의 변주를 시도함으로써 형식 실험 자체에 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이미지가 점차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해내는 것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공장, 다리 등 일상적인 도시풍경을 유추해낼 수 있는 단서들이 남아있다.

 

제 드로잉은 대부분은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들이에요. 저는 도시에서 살고 있고, 인터넷에 접속하죠. 도시와 웹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여러가지 구성요소들이 서로 뒤죽박죽 얽혀있는 덩어리같달까요.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고, 웹에서도 새로운 페이지들이 쉴새없이 생겨나고 있죠. 생성과 소멸, 그리고 이 같은 흐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양새도 닮았어요. 제가 삶 속에서 가깝게 경험하고 느끼는 이러한 웹과 도시 풍경이 제 드로잉에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여요.

[일렁이는 그리드에서 태어난 새로운 형태의 모듈]전에서는 2층에 설치한 작품들을 유심히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한 쪽 벽에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제작과정에서 사용한 템플릿을 전시했고, 반대편 벽에는 대형 시트지 작업을 한 뒤에 작품을 걸었어요. 디지털 세계에서의 삶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편집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잘려나간 부분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종이라는 사각형의 틀에 갇힌 이미지 이외에도 바깥으로 끝없이 확장되고 연결되는 이미지를 함께 드러낼 수 있도록 했어요. 일반적으로 작업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들, 작품 배경의 이야기를 모두 전시하지는 않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프레임 안과 밖을 동시에 상상할 수 있도록 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저를 둘러싼 도시나 웹의 모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요그에 맞추어 새로운 풍경을 표현하는 시도를 하고 싶어요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나 기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볼 예정입니다.

 

추미림은 자신이 경험하는 웹과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에서부터 출발해 구체적 형태의 반복과 재조합을 통한 형식 실험에 이르기까지 픽셀을 조합해 만든 기하학적 이미지 역시 계속 변화를 거듭했다.앞으로 그가 그려낼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최정윤

 

 


추미림 / 1982년에 태어난 작가 추미림은 단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베르사유 보자르에서 수학했다. 픽셀을 이용해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넘나드는 조형요소의 실험을 지속해 왔으며, 기업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예술과 삶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싱가포르의 갤러리 스테프(2013), 스페이스 윌링앤딜링(2014), 트렁크갤러리(2016)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GAP, K-SWISS, CONVERSE, BELIF, UNIQLO 등의 기업과 다수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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