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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한계비용 제로 사회

by ㅊㅈㅇ 2016. 7. 12.
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671373.html
‘협력적 소비’ 플랫폼 급성장
‘공유지의 비극’ 넘어설까
“당신의 자산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의사가 있나요?”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 닐슨이 지난해 세계 60개국 성인 3만명에게 던진 질문이다. 결과는? 응답자의 6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거꾸로 ‘남의 것을 빌려 쓸 의사가 있다’는 대답도 66%로 비슷했다. 흥미로운 점도 발견됐다. 조사 결과, 북미와 유럽은 ‘공유할 의사’가 50%대에 그친 반면 아시아는 80%에 이르렀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70%를 웃돌았다. 역설적이게도 공유 플랫폼이 가장 활성화된 지역은 북미와 유럽이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는 2000년대 초부터 주목받은 개념이다. 2008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이름을 붙였지만, 훨씬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에 기반한 플랫폼이다. 사전적 개념은 ‘활용되지 않는 재화와 서비스, 공간과 지식 등을 공유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 정도로 볼 수 있다. 독점과 경쟁의 아니라 공유와 협동의 알고리즘이다.

공유 플랫폼이 기업으로 급성장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명사는 미국의 우버(차량 공유)와 에어비앤비(숙박 공유)다. 월가의 계산법을 따르면, 이 두 기업은 이미 동종 업계 오프라인 1위 업체의 시장 가치를 넘어섰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시즌2’라 할 만하다. 에어비앤비는 2009년 첫해 2만건의 숙박을 중개했으나 5년 남짓 흐른 지금 한달에 100만건을 중개한다. 2010년 3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우버는 지금은 50개국 230개 도시로 확대됐다.

공유경제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기대는 남다르다. 가장 체계적인 이론가는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제러미 리프킨이다. 요지는 이렇다. 자본주의의 생산성 추구(기술적 혁신)가 극에 달하면 협력적 소비를 통해 모든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게 된다(한계비용 제로 사회). 사물인터넷(IoT)과 3D 프린터 등을 통해 자본에 의한 대량생산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대중생산, 즉 ‘협력적 공유사회’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이윤 추구가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해체하는 것”이다.

공유경제의 현실은 어떤가? 최근 <뉴욕 타임스>가 실은 어느 ‘공유 노동자’의 이야기를 보자. 미국 보스턴 외곽에 사는 제니퍼 기드리(35)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스마트폰 택시 앱 서비스 업체 3곳을 통해 일감을 받는다. 새벽 운전이 끝나면 두 아이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태스크래빗(심부름 서비스)을 통해 얻은 시간제 일을 나간다. 밤이 되면 클럽에 가는 젊은이들을 다시 실어나르고, 귀갓길에는 다음날 요리 서비스를 위해 장을 본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으로 일주일 내내 일을 찾아요.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지만 얼마를 벌지 예측할 순 없어요.”

우선 노동의 문제다. 미국에서 공유 서비스는 ‘피어(사람) 경제’(peer economy), 임시직 경제(gig economy)로도 불린다. 공유 플랫폼을 통해 돈을 버는 이들을 부르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불안정하다’(precario)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친 것이다. 공유 서비스에 종사하는 이들은 원칙적으로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은 자영업자다. 대부분 가장 낮은 가격을 부르거나 가장 빠른 시간에 응답하는 이가 일을 따는 구조다. 공유 서비스 업체는 연금·세금·보험 등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최대한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최소한의 사람을 고용한다. 비판론자들이 공유경제를 협력으로 포장된 ‘디지털 신자유주의’라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공유경제는 고도의 자본주의적 개념이다. 소유 없이는 공유도 없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공유에서도 소외된다”고 말한다.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방종을 더 심화시키는 “스테로이드”이자,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만드는 “현대판 노예노동”이라고 비판한다.

다음은 독점의 문제다. 공유 서비스 업체들은 기존 시장이나 기업과 경쟁하지 않는다. 틈새시장을 선점해 키운 뒤 독점하는 패턴이다. 페이스북이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네트워크에서 시작했고, 대기업들이 외면했던 검색 시장을 구글이 장악한 것과 마찬가지다. 시장이 커지면 월가의 대규모 벤처캐피털을 통해 흘러드는 자금으로 독점력을 더욱 높인다. 모로조프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혁신은 좌파적 이상주의를 내걸곤 하지만, 실제로는 수익성을 앞세운 월가의 계산법에 따라 가장 자본주의적인 길을 걸어왔다. 공유경제에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착한 경제’라는 딱지를 붙여선 안 된다”고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롬은 사유화와 국유화도 아닌 지역사회의 힘으로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공유경제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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