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를 준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를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구성원이 되고, 권리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환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hospitality 는 우호로도 번역되는데, 이러한 번역을 통해 이 단어가 우정이나 적대와 맺는 관계를 좀 더 분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 사회가 잠재적인 친교의 공간을 가리킨다고 할 때,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를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 그를 향한 적대를 거두어들이고 그에게 접근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아직 나의 벗이 아니지만, 언젠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노예의 조건에 대한 고찰은 환대의 이 두 차원- 자리를 주는 것과 적대를 중지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떤 사람이 노예가 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사회에서 처음부터 성원권을 얻지 못했거나 어떤 계기로 성원권을 상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웃사이더로서 다른 사회에 억류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노예의 신분은 자리없음과 그에 따른 무권리 상태의 결과로 나타난다. 환대는 여기서 자리 없는 자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무권리인자에게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 환대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은 환대를 사회의 외부에서 온 이방인들이 직면하는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이미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자리가 조건부로 주어지는 한, 환대의 문제를 겪는다. 절대적 환대라는 말로써 나는 데리다가 그랬던 것처럼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적대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환대를 가리키려고 한다. 데리다는 이러한 환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적 환대에 기초한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아니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한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2015. pp. 24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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