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넌센스와 커먼센스 사이: 이세준 개인전 <무엇을 불태울 것인가?>(2015.11.26~12.16)

이세준 우리는 무엇을 불태웠는가 324.4x521.2cm 8pcs oil on canvas 2015

넌센스와 커먼센스 사이

<무엇을 불태울 것인가?: 이세준 개인전>(스페이스윌링앤딜링, 2015.11.26.~12.16) 리뷰

 

1. 넌센스: 이상한 나라의 A?

A는 커다란 시계를 들고 “늦었다”고 외치는 토끼를 따라갔다. 토끼는 어디에 언제까지 왜 가는 지는 말하지 않았고 그저 늦었다는 말만 반복해서 했다. A는 걸음이 빠른 토끼를 금세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목줄이 끊어진 강아지를 봤다. 흰 털이 회색빛이 되어 있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으로 보아 주인을 잃고 방황한지 꽤 시간이 지난 듯 했다. 분명 주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흰둥이를 연신 쓰다듬으며 조금은 께름칙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왠지 그 강아지를 가져다 어디다 팔 것만 같았다. A는 돕고 싶었지만 토끼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 눈을 질끈 감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길가에는 사람만큼이나 커다랗게 자라난 녹색 식물들이 흰 자루에 담겨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물을 준지 좀 되었는지 잎사귀의 끝부분은 바짝 말라 오그라들어 있었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오래된 책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그 위에는 두루마리 휴지, 플라스틱 의자까지 아슬아슬하게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탑이 놓여 있었다. 길 한가운데에는 털이 모두 제거된 닭이 누워서는 “춥다”고 외치고 있었다. A는 그 닭에게 뭔가 덮어줄 것이 없을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이 버리고 도망간 듯 보이는 검정 쓰레기봉투들과 깨진 조각상들뿐이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주변에서 주운 나뭇잎사귀를 살짝 덮어주었다. 좀 더 걷다보니 늪이 나왔다. 늪은 찐득한 기름으로 뒤덮여 있어 한 발짝 옮기는 것이 매우 힘겨웠다. 늪 중간쯤 걸어왔을 때였나, 갑자기 늪이 분홍색, 연보라색, 노란색 등 화사한 파스텔 톤으로 물들었다. 그리고는 딸기향과 망고향이 섞인 듯 향기로운 냄새가 온 몸을 감쌌다. 행복감에 젖은 것도 잠시, 늪 정중앙에 던져진 씨앗이 거대한 콩 나무로 순식간에 자라났다.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은 콩 나무 위로 두 소년이 재빠르게 올라갔다. 뒤이어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두 소년이 발이 꽁꽁 묶인 채 콩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렸다. A는 무서워서 눈을 가렸고, 늪에서 따라 온 문어를 내팽개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더 걷다보니 하늘이 파랗게 갰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거대한 삐라풍선이 내려왔다. 종이비행기, 양말, 맥주캔도 하늘에서 내려왔다. 정신없이 하늘을 쳐다보던 중 꽥꽥 하는 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사람보다도 더 큰 오리 떼가 몰려왔다. A는 그 중 한 마리 등에 올라탔고, 오리 떼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를 뛰어넘는 순간 A는 오리 등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그때 어디선가 매캐한 탄내가 났다. 누군가가 “불이야” 큰 소리로 목 놓아 외쳤다. 숲 속에서 누군가 캠핑을 왔다가 텐트에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벌거벗은 남녀는 텐트를 벗어나 정신없이 달렸다. 영문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 A도 뛰었다. 갑자기 생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검게 그을린 벽돌집 앞에는 고깃덩어리가 매달려 있었고, 계단 앞에 놓인 생선에는 구더기가 가득했다. 이 냄새 때문인지 악어, 뱀 등 동물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 마침 개구리 한 마리가 저쪽에서 손짓을 하여 A는 황급히 몸을 숨겨 달아났다. 개구리는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취해서인지 횡설수설했다. 컴퓨터는 고장이 났는지 계속 흰 화면만 나왔고, 책상은 더러웠고, 기름통에 꽂힌 붓들은 안 쓴지 오래되었는지 구득하게 말라 굳어 있었다. 방 뒤쪽에서 소리가 나 쫓아가보니 도라에몽이 커다란 보트 위에 마네킹 조각을 차곡차곡 싣고 있었다. 얼떨결에 A도 보트에 올라타고 보니, 눈앞에는 거대한 뇌 공장이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출입하는 모든 사람의 뇌를 어떻게 하기라도 하는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두려움에 떨던 A는 호수에 풍덩 몸을 던졌는데 수영을 할 줄 몰라 한참을 버둥거렸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

위 문단은 총 여덟 개의 캔버스가 합쳐진 <우리는 무엇을 불태웠는가?>(2015)의 이미지들을 쫓아 임의의 이야기로 구성해본 것이다. 관객은 같은 그림을 보고서도 각기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그림을 따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봤다. 이 이야기는 명확한 선후관계가 없으며, 옴니버스(omnibus)식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각 에피소드는 서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계속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뿜어내고 있는 셈이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그림은 일부는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됐고, 일부는 형체를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뭉뚱그려져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탄 냄새가 나는가하면 어딘가 에서는 알 수 없는 향기가 퍼진다. 화면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그것들의 연결고리를 쉽게 찾아내기 어려우리만치 제각각이지만, 또 화면 전체에 나 뒹구는 뱀 혹은 내장, 튜브처럼 보이는 흐느적거리는 물체는 파편화된 수많은 이미지들을 묶어주듯 이곳저곳에 놓여있다. 이처럼 이세준은 이질적인 것들을 한데 모아놓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관해서 조금은 수다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는 채도가 높은 노랑, 주황, 초록 등 강렬한 원색과 함께 검정과 흰색을 주로 쓴다. 이러한 색채 때문에 그의 화면은 매우 시끄럽게 느껴진다.

전시장은 이세준이 말한 것처럼 크게 두 파트로 나눠지는 듯 보인다. 첫 번째 파트는 분명 <우리는 무엇을 불태웠는가>가 주축이 되는 초현실적 그림들이다. <떠내려 오는 것들> <훼손된 이미지> <붙어 있는 나무의 가지 사이로도 바람은 분다> <토르>는 <우리는 무엇을 붙태웠는가>에서 파생된, 혹은 그것의 일부분을 잘라 확대한 것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비슷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두 번째 파트는 그와는 달리 일상 속에서 모두가 한 번은 보았을 법한 풍경을 담고 있다.

 

 

이세준 기울어진 집 116.8x90.9cm oil on canvas 2015 / 이세준 무제1 100x80.3cm oil on canvas 2015 

2. 커먼센스: 누가 내 화환을 옮겼는가

얼마 전 뉴스에서는 한 번 사용된 화환을 재활용해 정가에 판매하여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었다. 한 번 사용하고 난 화환은 폐기 처리해야하지만, 그것을 수거하여 재사용한 것이다. 재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화환 수거를 용인한 장례식장 운영자 역시 사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화환은 장례식장, 결혼식장, 개업하는 가게 등 축하와 위로의 의미를 표시하기 위해서 곳곳에서 사용된다. 우리 모두는 일 년에 최소 몇 번씩은 화한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매일 보는 어떤 대상과 같이 생각하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가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오랫동안 사랑스럽게 관찰할 것이다. 명백히 이세준은 후자였다. 그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화환이 가진 형태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화려한 앞면과는 달리 듬성듬성 일회적 사용을 위해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지탱되고 있는 나무 구조물의 대비되는 모습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관객 중 누군가는 화환에 관한 관심이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타버린 작업실과 그간의 작품들을 떠나보내며 치러주는 작은 장례식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리기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대상이었던 화환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전시장에 걸렸다.

<우리는 무엇을 불태웠는가>가 여러 개의 넌센스 퀴즈 같았다면, 두 번째 파트의 <무제1> <무제2> <도시의 구멍> 은 우리가 상식적(커먼센스)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상들을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명료하게 담고 있다.

이 넌센스와 커먼센스의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은 바로 1층 입구 앞에 놓여 있는 <기울어진 집>이다. 하나의 장면을 포착한 그림이지만, 몽환적인 색채로 상상의 공간을 재현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갇혀있었을 법한 원형 벽돌집은 얇은 기둥들이 지탱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로 앞에 벌거벗고 얹어 고개를 숙인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연기가 피어올라 집 주변을 감싸며 하늘도 마찬가지로 희고 또 검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하나의 장면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기도 하고, 또 꽁꽁 뭉쳐져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실타래를 이리저리 굴리며 넌센스 퀴즈를 연신 던져보기도 한다. 자신이 온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런저런 방식들을 집약한 듯, 불타버린 자신의 작업실을 회고하듯, <기울어진 집>에서 이세준은 고뇌한다. 삶은, 우주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완전히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완전함’ ‘완벽함’은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다는 이세준. 어느 때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또 어느 때는 유머러스하게 현재를 살아가면서 넘치는 활력으로 그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각자의 눈에 비치는 것만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부분만 보고 그것을 전체로 착각하는 순간 판단 실수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장님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내가 아는 그 부분이 전체가 아님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이세준은 이제 거대한 퍼즐 게임에서 몇 조각을 맞춰나가고 있다. 언젠가 그가 완성하게 될 퍼즐을 멀리에서 바라볼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