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민 <장막> 캔버스에 유화 230x230cm 2016 / 장종완 <말하자 모두 침묵하였다> 사슴가죽에 유화 110x155cm 2016 (사진: 나씽스튜디오, 인터랙션 제공)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장 16절, 성경에 수록된 말씀이다. 인용문은 예수가 파송 설교를 마치고 그 이후 예측 가능한 박해와 고난에 제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뱀은 신중하고 분별력이 뛰어나며, 비둘기는 순수하다. 지혜만 있으면 타락하기 쉽고, 순수하기만 하면 무능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 “보라, 내가 너희를”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했던 말의 문구 일부를 활용하고 있어, 신/절대자가 제자들 혹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전시장에 진입하면 가벽을 따라 좁은 통로를 지나가게 된다. 통로를 지나면 탁 트인 넓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총 세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게 설치된 조명, 짙은 회색 톤의 벽은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두 회화 작품이 공간에 서로 마주보는 벽에 설치되어 있다. 정희민의 <장막>은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산의 사진 여러 장을 수집해서 재조합해 만든 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산은 기존의 다른 화가들도 많이 다루었던 소재다. 일례로, 폴 세잔은 남부 프랑스에 위치한 엑상 프로방스의 생 빅투아르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수없이 제작하였는데, 산은 대상의 본질을 화폭에 담기 원했던 작가에게 상징적인 주제였다. 정희민이 산을 대하는 태도도 일견 유사한 지점이 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산의 모습을 한 화면에 조합해 대상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 시도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작품 뒤편에 형광등 조명이 길게 설치됐는데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같기도 하고, 신령한 밝은 빛을 형상화한 광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종완의 <말하자 모두 침묵하였다>는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네모반듯하게 인위적으로 구획된 캔버스가 아니라, 동물의 형체에 따라 들쭉날쭉한 형태의 공간을 활용한 작품이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날 것의 느낌을 부각시킨다. 작가는 세밀한 붓질을 통해 동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이상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두 남성은 목마른 사슴에게 물을 먹이고, 텃밭에서 꽃을 가꾸고 있으며, 그 뒤로는 잘 가꿔진 소나무와 정원이 펼쳐져 있다. 인간과 동물이 평화로이 공존하고 있으며, 녹음이 우거진 숲길이 뒤이어 펼쳐질 것만 같다. 새파란 하늘에는 멋진 뿔을 자랑하듯 수사슴이 수놓아져있다. 수사슴의 뿔은 주기적으로 떨어져나가고 다시 솟아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신화와 문학에서는 종종 수사슴이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로 다뤄졌다. 장종완은 이처럼 클리셰적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과장된 듯 보이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유토피아의 비현실적 특성이 극대화되는데, 작가는 반어법을 사용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와 본질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정형화된 이미지들로 구성해 그것이 허구임을 재인식시켜주는 시도는 극명하게 부딪치며 대화의 장을 생성해낸다. 두 점의 회화 작품을 연결하기라도 하듯, 또 다른 벽에는 장진택의 짧은 에세이/소설 <저기 저 언덕 너머에는>이 전시돼 있다. 한 사람의 유년시절에 겪었던 종교적 체험, 평생 외로움과 함께 했을 니체의 삶, 타인의 신을 이해하는 일 등 여러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아마도 작가와 기획자 모두가 자기 자신은 누구인지, 어떤 대상을 작품에서 다룰 것인지, 그것의 본질에 어떻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등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졌으리라.
전시에는 총 6점의 작품이 유기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서, 세 명의 참여자가 말하는 방식이 모두 다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관람을 마친 관객은 하나의 목소리를 기억하게 된다. 전시 관람 이후에는 전시 제목 ‘보라, 내가 너희를’이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절대자의 목소리가 아닌, 지극히 작은 개인인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 ⟪미술세계⟫ 2017년 2월호 수록
http://www.mise1984.com/magazine?issue=387&article=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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