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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7. 번역, 요약

지그문트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 1919

by ㅊㅈㅇ 2018. 5. 7.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두려운 낯설음(Das Unheimliche, The Uncanny)1919

  

1.

프로이트는 두려운 낯설음(unheimlich)’이라는 독일어 단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두려운 낯설음(unheimlich)’집과 같은(heimlich)’, ‘고향 같은(heimisch)’, ‘친밀한(vertraut)’의 반의어다. 이것에서 우리는 한 사물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친숙하지 않아서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롭고 익숙하지 않다 해서 모두 두려움을 주지는 않는다. 새롭고 친숙하지 않은 것이 불안감을 주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heimlich’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말의 반의어인 ‘unheimlich’의 의미도 함께 가지며 이중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

불안한 낯설음이라는 감정을 선명하게 불러일으키는 사람, 사물, 인상, 사건에 관해 살펴보기 위해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그 예로, 그리즈바흐판 호프만의 모래인간 The sand-Man(1816)’이라는 소설을 대상으로 삼는다. 나타니엘이라는 주인공은 현재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밤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모래 인간이 온다는 말로 겁을 주곤 했다. 아이를 돌보는 하녀는 더욱 생생하게 그 모래인간을 묘사하곤 했는데,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으면 모래인간이 나타나 눈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었다. 1년 뒤 폭발 사고로 아버지가 죽게 되고, 나타니엘은 생전에 아버지를 만나러 오던 변호사 코펠리우스를 그 무서운 모래인간으로 생각하게 된다.

성장한 나타니엘은 어느 날 주제페 코폴라라는 떠돌이 안경 상인에게서 안경을 산다. 그는 그 안경을 쓰고 맞은 편 집을 훔쳐보게 되는데, 그곳에는 스팔란차니 교수의 딸인 올림피아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고 나타니엘은 약혼자 클라라를 잊을 정도로 맹렬히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소녀는 코폴라와 스팔란지니 교수가 함께 만든 자동인형이었다. 코폴라와 스팔란차니 교수가 다툼을 벌어지던 날, 코폴라는 인형의 눈을 빼서 나타니엘을 향해 던지고 그는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깊은 병에서 회복된 나타니엘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했고, 약혼녀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클라라와 나타니엘은 그녀의 오빠와 함께 시내를 배회하다 첨탑에 오른다. 순간 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경악을 하며 클라라를 허공으로 떠미는데 그녀는 마침 아래 서 있던 오빠에 의해 구출된다. 그는 코폴라 망원경을 통해 군중 속에 서 있는 변호사 코펠리우스를 보았던 것이다. 나타니엘은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죽고 코펠리우스는 유유히 자취를 감춘다.

모래인간은 불행한 대학생과 약혼녀 사이를 갈라놓고, 그의 절친한 친구인 그녀의 오빠와의 사이도 갈라놓는다. 또한 두 번째 사랑의 대상이었던 인형 올림피아도 파괴하고, 급기야는 다시 되찾게 된 클라라와의 결혼을 목전에 둔 그를 자살하게 했다. 눈을 빼앗긴다는 공포는, 많은 경우 거세 불안의 한 변형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유아기에 경험한 거세 콤플렉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억압되었다가 반복적으로 그에게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이 발원하는 기원은 어린 시절의 괴로운 경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욕망,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한 도시의 인적 없는 작은 골목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한 지역을 지나게 되었다. 안내자 없이 이리저리 배회하던 끝에 내가 호기심을 가졌던 곳으로 문득 되돌아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둘러 그곳을 떠났지만 다른 길을 통해 세 번째 그곳으로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때의 감정은 두려운 낯설음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의도적인 회귀에서는 괴로움,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 비의도적으로 반복되다보면 두려운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충동에서 기인하는 반복 강박을 구별해낼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 비의도적으로 반복됨으로써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자아내게 되고 또 빠져나올 수 없다는 숙명성을 믿게 된다. 수화물 보관소의 꼬리표 번호가 62번이었는데, 선실의 방 번호가 62일 때, 62라는 숫자를 하루에 여러 번 만나게 되어 서로 관련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 이러한 일치를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이때 우리는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같은 것이 반복해서 회귀함으로써 무언가 불안함이 생긴다는 사실이 어떻게 어린 시절과 관련을 맺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충동에서 기인하는 반복강박을 구별해낼 수 있다. 이 강박은 쾌락 원칙을 넘어설 만큼 강력한 것이다.

정신적 충격은 억압 기제에 의해 고통으로 변형되고, 그것이 맞다면, 억압된 그 무엇인가가 회귀할 때 고통을 주는 것이 되는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두려운 낯설음을 만들어낸다. 또한 이상하게 두려운 것의 성격이 여기에 있다면, 언어학적 관례에 의해 heimlichunheimlich의 의미까지 포함하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unheimlich는 정신적 움직임에 있어서는 언제나 친숙한 것이었고 또 낯선 것이 된다고 해도 억압 기제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두려운 것이란 어둠 속에 있어야만 했으나 드러나버린 어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죽음, 시체, 죽은 자의 생환, 귀신, 유령 등에 관한 것이다. 정령 사상, 마술, 주술, 죽음과 사람의 관계, 의도적이지 않은 반복, 거세 콤플렉스 등을 살펴보면 고통스러운 것이 이상하게 두려운 감정으로 변화하는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경증 환자들은 여성의 성기가 왠지 이상하게 두려운 것으로 느껴진다고 종종 호소한다. 이때의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여자의 성기가 인간이 태어난 옛 고향(heimat),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태초에 한 번은 머물렀던 장소를 상시시키기 때문에 생긴다.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이 경우에도 자신의 집(das heimische)인 것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친근한 것이고, 친근한 것이지만 아주 오래 전의 것이다. ‘unheimliche(두려운 낯설음)’의 접두사 un은 이 경우 일종의 억압의 표식일 것이다.

 

3.

두려운 낯설음이 감정이 억압을 당한 것이고, 회귀도 바로 억압을 당한 그곳에서부터 이루어지며,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사고방식을 상기시킨다고 하여 모든 것이 다 이상하게 두려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죽은 자가 가사 상태에 있다 다시 살아나는 광경은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가 다시 눈을 뜨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 장면을 보고 그 누구도 두려운 낯설음을 느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적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죽은 자의 부활은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이 발생하는 조건을 생각해보면, 생각의 전능성, 욕망의 순간적 실현, 숨어있는 해로운 힘, 죽은 자의 귀환 등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이 가능성을 믿어왔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을 믿지 않는다. 유사한 경험의 수수께끼처럼 반복되는 현상도,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광경, 욕망의 기묘한 실현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공포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상이든 문학 작품에 의한 것이든 허구에서 파생되는 두려운 낯설음은 별도로 다룰만한 가치가 있다. 현실에서라면 이상하게 두려운 것이었어도 문학에서는 그렇지 않고, 또한 삶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이 문학에서는 얼마든지 발생가능하다는 것이다. 단테의 지옥에 나오는 영혼들이나 셰익스피어의 <햄릿> <맥베스>에 나오는 유령형 인물은 음산하지만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정서적 충격이란 허구의 세계에 있어서는 내용 선택과는 무관한 것이다.

우리는 고독과 침묵과 어둠에 대해서는 단지 그런 것들이 대부분의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관련이 있는 상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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