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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후기] 더 스크랩 2018(문화역서울284, 2018.6.9~13)

by ㅊㅈㅇ 2018. 6. 13.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더 스크랩. http://the-scrap.com/ 매년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직접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화역 서울 284에서 해서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공간도 여유롭고. 더스크랩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작가 직거래 장터 기금을 3500만원 받아서 운영하는 판매 행사로, 100명의 작가가 각각 10장의 이미지를 출품하면, 기획팀이 동일한 프린터로 동일한 크기 (A4크기)로 출력해서 전시한다. 그리고 캡션없이 동등하게 번호만 기입한다. 관객은 천장의 이미지를 천천히 둘러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미지를 5장 (3만원) 혹은 10장 (5만원) 을 구입할 수 있다. 구매권을 산 다음, 원하는 이미지의 번호를 적어 제출하면 10여 분 사이에 이미지를 출력해서 준다. 올해 행사에는 지난 2회에 참여한 작가 총 200명의 이미지 2천장 중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룸이 함께 구성되었다.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음악은 박다함이 한해동안 스크랩한 음악 리스트라고 했는데, 공간과 퍽 잘 어울렸다. 또한 이 행사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진청색과 특유의 글씨체로 잘 디자인된 전시 요소들이었다. 마치 IKEA를 연상시키듯 시스템이 잘 정립되어 있었고, 전시장에서 일하는 스탭은 모두 같은 군청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설명을 위한 표지판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공식 페이스북에 오늘 게재된 내용에 따르면 6.9~13 6일의 행사 기간동안 총 8198명의 관객이 찾았고, 총 9455장의 사진이 판매됐다고 한다. 익명으로 작품이 디피되었던 것처럼, 판매수익도 100명의 작가가 모두 동등하게 1/n로 나눠갖는다고 작년에 참여한 작가에게 들었다. 대략 한장당 5천원이라고 치면, 한 작가당 47만원 정도를 손에 쥐게 되는 셈. 

미술 시장에서 사진은 사실상 크게 인기가 없다고 (회화나 조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고 있다. 유일무이하지 않기 때문. 그래서 보통 사진 작가들은 에디션의 개수를 제한해둔다. 10장의 에디션만 만들겠다고 한다면 10장만 출력하며, 판매될때에도 1/10 이런식으로 에디션 넘버가 적히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인화방식과 크기, 액자 등이 작품 가격에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사진 판매 방식에 깊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근시안적이고 흥미 위주의 행사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이 행사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사진 판매 행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고, 각자가 가진 취향을 확인해보는 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젠 누구나 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멋진 사진들을 찍는다. 그래서 더 이상 사진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우리 모두에게 더 친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장 중에서 10장 혹은 5장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꽤 어렵고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비싸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일부 나의 돈을 들여서 구매하는 행위로 이어지다보니 어느 정도의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나는 이 사진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데 그만큼 좋은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달까. 게다가 몇몇 참여작가는 원래 사진을 주 매체로 작업하지 않는 작가도 있다. 디자이너, 회화 작가, 조각/오브제를 주로 제작하는 작가 등.. 이들에게 받은 사진 10장은 사진가들의 사진 작품과는 약간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종의 굿즈 같은 개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 작품 사진인 경우도 있고, 작업과 관련된 드로잉이나, 작업 관련 스크랩한 레퍼런스 이미지들, 혹은 작업과 관계없이 취향을 드러내는 스냅샷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진' 그 자체보다도 '취향'에 관한 질문처럼 느꼈다. 

스페이스윌링앤딜링에서 3년여간 해왔던 블라인드 데이트라는 판매행사가 있다. 이 행사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 등을 모두 가리고 작품을 출품한 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는 사실 작가명이 비공개이긴 하지만, 물어보는 경우는 알려주기도 하고, 또 작가를 원래 잘 알던 컬렉터나 지인이 미리 찜해놓는 경우도 있었다. 블라인드 데이트가 전통적인 미술 작품 구매와 더 가까운 행사라고 할 수 있다면, 더스크랩은 2014년에 있었던 굿즈 행사 쪽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고른 다섯장의 사진을 찍은 작가를 확인하는 쾌감은 꽤나 짜릿했다. 나는 황선희 작가의 꽃 사진 두점, http://sunheehwang.com 정멜멜 작가의 인물 토르소 사진 두점 http://meltingfra.me 그리고 하시시박의 아들 사진;; http://www.hasisipark.com 한점을 샀다. 황선희 정멜멜 두분은 상업 사진도 많이 찍으시는 분 같았다. 인물 토르소 사진은 강석호 작가의 그림이 생각나서 골랐고, 꽃은 언제봐도 아름답고 싫어하는 사람이 적으니 선물하기 좋을 것 같아 골랐다. 어린 단발머리 아이가 꽃병에 꽃을 꽂는 흑백 사진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상상하며 골랐는데 봉태규 와이프로 티비에도 나오고, 그 아들 시하 역시 예능에 출연하는 셀렙인터라, 내가 상상했던 사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얻었다. 잠시 실망하는 나를 보고 오히려 놀랐다. 나는 편견없이 작품과 사람을 대하려고 항상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여튼 기획팀의 노고와 수많읏 스탭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잘 정돈된 행사같았다. 기금이 없어도 계속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흥미로운 행사였다. 홈페이지에서 지난 2년동안 참여한 작가의 이미지와 작가 CV를 아카이브 섹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오래오래 봐도 재밌고 질리지 않았다. 왜 그런걸까.. 아는 사람이 많아서 더 재밌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재미가 어디에서 오는지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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