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와정 <sunday is monday, monday is Sunday>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 전경
‘혼합재료’와 ‘가변크기’
: 로와정 개인전 <sunday is monday, monday is sunday> 리뷰
현대미술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에 어렵게 방문한 일반 관객은 대개 불편함을 토로한다. 아마도 작품 너머에 하나의 명확한 의미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상황은 곧 ‘난해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명쾌한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종종 ‘어렵다’고 결론짓고는 전시장을 떠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모든 종류의 교육을 통해 암기하고, 추론해서,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에 익숙하다. 직관적으로 감각적 쾌를 느끼기 어려운 개념적인 현대미술의 경우, 관객이 작품을 하나의 ‘문제’로 인지하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제자(작가)’ 역시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로 귀결된다. 어쩌면 로와정의 이번 전시 <sunday is monday, monday is sunday>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친절’하지 않을 수 있다.
작가 로와정이 전시를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로는 ‘기록’ ‘번역’ ‘시간’ ‘선택’ ‘과정’ ‘역동성’ 등이다. 이 모든 개념-단어들은 특정 이미지로 시각화되기 어려운 종류의 것들이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지시하는 단어가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을 언어화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각예술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험난한 구체화 과정이 그려진다. 간단하게 이 전시를 설명한다면, 계획 없이 떠나는 즉흥 여행이 떠오른다. 숙소, 비행기, 방문할 여행지, 식당까지 꼼꼼하게 계획된 대로 움직이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상황에 따라 흘러가는 ‘즉흥 여행’ 말이다. 여행자는 이 여행을 통해 예상한 것을 ‘확인’하고 오지 않는 대신, 예기치 못한 순간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끊임없이 작품과 전시계획을 프레젠테이션할 것을, 또한 계획의 충실한 실행과 증빙을 요구받는 오늘날 예술가가 처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로와정의 ‘즉흥 여행’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는 8~9가지의 작품/행사로 구성됐다. <구부리기> <붙이고 떼어내기> <드로잉> <그리고 찍어내기> <만담> <움직임>, 테이블, 옥션, 그리고 스펀지, 달력/포스터, 목공 자재들 등이다. 제목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로와정은 해당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직접 수행할 행동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이러한 작명법에서 이들이 작품에 인위적이고 철학적 의미를 억지로 가져다 붙이지 않는 대신, 매우 솔직한 민낯을 공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어떤 것인 척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나가는 솔직하고 저돌적인 모습 말이다. 언뜻 전시장을 둘러보았을 때 관객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썰렁하기 그지없는 전시장, 불친절한 설명, 도상학적 접근의 원천적 불가능성, 재료를 다루는 예술가의 현란한(!) 테크닉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펴기/구부리기> 합판, 가변크기, 2018 / <붙이고 떼어내기> 색종이, 물풀, 55.5x39.5cm, 2018
“일요일은 월요일이고, 월요일은 일요일”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로와정은 20여 일간의 전시 기간에 전시장에 매일 출근하여 각 작품에 붙은 제목과 같은 행위를 더해나갔다. 전시 기간은 하나의 외부 제약조건으로 작동하였으며, 전시 종료일에 맞추어 그들의 작업 역시 종료되었다.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을 마치 작업실처럼 사용하는 것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오픈 스튜디오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장에서 로와정은 색종이와 물풀을 이용해 종이를 계속 붙여나가고 또 떼어내며, 판화 기법을 이용해 동일한 텍스트/이미지를 찍어내고, 만담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습관을 편집해 영상 클립을 만들기도 했다. 퍼포먼스 이후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하는 등 그들은 콜라주, 드로잉, 판화, 영상, 퍼포먼스, 사진, 오브제 등 재료나 표현방식의 제약 없이 자신들의 시간과 기억을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을 판매하는 옥션 행사를 통해 작품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전시가 마무리됐다. 매일매일 변화하는 작품 때문에 전시장의 작품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캡션 지 역시 매일 업데이트하여 새로 벽에 부착했다.
개별적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분석보다도, 이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전시 전체가 현대미술의 작동방식과 그 시스템에 관해 메타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와정이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언급했던 여러 개념 쌍을 떠올려보자. “주체/객체, 시간/공간, 선형/비선형, 내면/외면, 물질/정신, 유물/관념”…. 동시대미술 작품을 분석할 때 주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에 더해 작업실을 개방하는 듯한 컨셉트, 퍼포먼스, 영상, 사진, 콜라주, 드로잉, 판화 등 상상가능한 모든 재료의 활용, 판매를 통해 가격을 입은 하나의 상품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는 상황까지 전시가 모두 포함하고 있어, 미술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제도 그 자체를 비평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로와정의 이번 전시는 ‘혼합재료(mixed media)’와 ‘가변크기(dimensions variable)’로 가득한 불분명한 캡션지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활자에 몰두하는 일반 관객과,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현대미술의 간극을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경우처럼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간단한 오브제나 평면 작업의 경우에도 많은 시간과 고민과 노력과 계획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손쉽게 “나도 만들겠다”와 같은 1차원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손쉬워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거치게 되는 사고와 고민의 과정은 지난하고 또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인정받는 작가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못지않게, ‘누가’ 그것을 만드는 지가 중요한 이유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작가의 작품에는 하나의 정답과 같은 의미가 내재되어 있지 않다. 로와정은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는 관객을 초대한다. 자유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채로 말이다. 관객은 자신의 오감과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을, 또 작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파편적으로 접하게 되는 전시의 면면을 통해서, 전시장에 상주하는 작가의 빠른 손놀림을 보면서 난해한 것으로만 여겼던 현대미술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전시가 종료된 지금도 여전히 이 전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쉽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현대미술도 마찬가지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드로잉> 합판과 벽위에 오일파스텔, 나무액자, 유리, 가변크기, 2018
<만담> 3채널 비디오, 00:30, 00:32, 00:4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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