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_엠티 Membership Training, glass, oil clay, ethanol washer fluid, dimension variable, 2018 (사진: 유영진)
박지훈_K씨의 케이스, brass, urethane resin, 13 x 74 x 6 (cm), 2018 (사진: 유영진)
치유의 시간: <뜨거운 공기 · 차가운 악기들>(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8.7.13~8.3) 리뷰
1. 현대적 삶과 우울
요즈음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어디서든 그것을 붙잡고 새로운 소식을 찾아 읽는다. 그래서 단연코 가장 난감한 순간은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없는 경우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미리 충전을 해두어서 완전히 방전되지 않도록 한다. 완전히 방전되어 스마트폰이 꺼지게 되면 다시 충전해서 작동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너선 크레리(Jonathan Crary)는 그의 저서 『24/7 잠의 종말(24/7 : 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하루 24시간, 주 7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에서 인간 주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핀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말하면, 인간은 이제 스마트폰 배터리와 같은 운명에 처해있을는지도 모른다. 밤낮 구분 없이 계속해서 깨어있음으로 노동과 소비를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스스로 유지하는 존재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을 피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경쟁의 굴레에 밀어 넣는다. 휴식은 낭비일 뿐이며, 우리는 모두 아군과 적군조차 분명치 않은 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계속 싸운다. 이 전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물 새도 없이 새롭게 나는 상처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편안한 옷을 입고, 따뜻한 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아프다.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져 있다. 한 개인은 시스템이 강제한 규율이나 법칙을 체득하고 내재화해 자신을 옥죄며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 질환을 겪는다. 어쩌면 치유가 필요한 환자는 특정 이름의 병을 앓는 소수가 아닌,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박지훈의 개인전 <뜨거운 공기 · 차가운 악기들(Hot Air, Cold Instruments)>은 어쩌면 작가가 관객에게 보내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편지 같다.
2. 전시장 천천히 둘러보기
전시장 입구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철로 만들어진 작품 <깊게>가 보인다. 이 작품은 모스(morse) 부호로 ‘breathe’라는 단어를 철판 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깊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쉬어보라는 작가의 제언 같다. 계단을 따라 전시장으로 올라오면, 전시장 벽면에 아래층에서 본 것과 비슷한 형태의 평면 작업을 몇 점 더 발견하게 된다. <악보>라는 작품에도 마찬가지로 역시 철판 20점 위에도 모스 부호가 새겨져 있는데, 작가에 의하면, ‘S.O.S.’와 ‘HELP’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모스 부호는 선박에서는 조난되었을 때 구조 요청을 위해 가끔 사용될 뿐, 일상에서 그것을 쓰는 사람은 이제 없다. 더 나아가, 소리로 전달하는 메시지인 모스 부호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간절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대신 ‘보인다’. 더 나아가, 모스 부호는 해독이 불가하며, 제작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 혹은 일종의 패턴처럼 읽힌다. 무슨 뜻인지는 모를지언정, 비슷한 간격으로 납땜 된 흔적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누군가가 시차를 두고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누군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상황에 놓여있길래 이토록 도움이 간절한 것일까?
흰 벽에 흰 조명으로 가득한 전시장에 작품은 조명의 극적인 효과 없이 건조할 정도로 담담하게 놓여있다.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가 화이트 큐브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지훈 작가의 이번 전시는 유난히 ‘병원’ 같은 인상을 준다. 많은 병원은 벽이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혀야 했기에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다른 색보다도 흰색은 오염이 발생할 시 금세 더러운 부분이 표시되기 때문에 무균 환경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번 전시가 특별히 더 ‘병원’ 같다는 인상을 주는지 개별 작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지훈_결벽증을 가진 미술품, brass, stainless steel, water pump, glass, sand, active carbon, 190 x 40 x 50 (cm), 2018 (사진: 유영진)
박지훈_졸린 눈을 한 치과의사를 향한 끊이지 않는 정욕, stainless steel, shark tooth with modeled jaw, coil heater, separation funnel, glass, 230 x 70 x 40 (cm), 2013, 2018 (사진: 유영진)
가장 먼저 <결벽증을 가진 미술품>을 보자. 변기 모양으로 된 세면대가 중앙에 놓여있고, 작가가 고안해서 만들어 둔 정화 장치를 통해 물이 반복적으로 순환하며 계속 흐른다. 누구든 그 물에 손을 깨끗이 씻는 것으로 정화의 의식을 치른다. 음식을 만들거나 상처 부위를 만질 때는 손에 묻은 병균과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손을 씻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식당도, 병원도 아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무엇을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할까? 어쩌면 박지훈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을 만나기 이전에 각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여러 상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돌아서면 <왈츠-조금 느리게>를 마주하게 된다. 30초 이상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길게 늘어뜨려 진 황동과 철로 만든 오브제가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인다. 하나로 이어진 긴 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어 마치 여러 개의 뼈와 관절로 연결된 신체와 같이 각 조각이 다른 방향을 향해 퉁겨져 움직임을 만든다. 그 뒤로는 황동과 우레탄 레진으로 만든 망치 작업 <K씨의 케이스>가 놓여있다. 실제 망치질을 하면 산산조각이 나거나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할, 형태만 그럴싸한 망치다. 실제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반복적으로 의미 없는 춤을 추는 연약한 존재, 혹은 아무 힘이 없이 겉모습만 그럴싸한 존재는 어떤 종류로든 치료가 필요한 ‘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른한 오후>는 뛰어난 만듦새로 마감된 관과 같은 형태의 박스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 안에는 윈드 터널이 만들어져 있고, 향을 피우는 장치가 놓여있어 자연스럽게 향의 연기는 해골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향은 본디 병풍 뒤에 놓여있는 시신의 악취를 가리기 위해 사용됐으나, 현대에는 상징적 의미로써 활용된다. 멀리에서 향 내음을 맡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장례식장과 죽음에 관한 개인적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모두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명제, 즉 인간의 유한성에 관한 본질적 두려움을 나타낸다. 작가는 작품의 우측에 원하는 관객이 직접 향을 설치해볼 수 있도록 영상으로 제작한 작동 매뉴얼를 함께 비치했다. 향을 직접 피우는 행위는 마치 문상을 갔을 때 으레 따라야 하는 절차를 상기시킨다. 해골도 마찬가지로 대표적은 바니타스(vanitas)의 모티프다. 해골은 당장이라도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도상 중 하나다.
<졸린 눈을 한 치과의사를 향한 끊이지 않는 정욕>은 턱 모형에 상어의 이빨을 결합한 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순간적으로 수증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향과 수증기와 같은 일시적으로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재료는 연극적 효과를 더욱 배가한다. 상어는 위험한 바다 동물의 대명사로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상어에게 물려 피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영상을 보면서 극한의 공포감을 느낀다. 아마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동물적 세계의 힘과 그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 대상이 상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상은 안전장치가 있는 철로 만든 네모반듯한 기계 안에 위치되어 우리에게 아무런 실질적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무채색의 원재료 색으로 가득한 전시장에서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두 작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와 <엠티>다. 전자는 붉은색 불빛을 내뿜는 LED 전구로 만들어졌고, 후자는 형광 초록색의 에탄올 워셔액을 포도주잔에 담은 것이다. 붉은 LED 램프는 의료용 기구로 병원에서 종종 사용되어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처럼 다가온다. 컵에 담긴 초록 액체는 에탄올 워셔액으로, 본래 수평자에 정 가운데에 들어있는 액체다. 테이블 위에 각기 다른 높이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놓여있는 유리잔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초록색 액체의 수평선은 모두 동일한 높이를 유지한다. 어쩌면 어느 위치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서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박지훈_악보 (빠르게, 반복적으로), steel, 10 x 36 (cm) each, 2018 (사진: 유영진)
박지훈_나른한 오후, model skull, wood, brass, glass, cardboard, honey comb panel, fan, led lamp, 156 x 170 x 44 (cm), 2017 (사진: 유영진)
3. 치유에 관하여
한 번이라도 몸이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쉬이 공감할 것이다. 몸과 마음/정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정신이 피폐해지면 몸도 상하고, 몸이 아프면 정신도 나약해지기 쉽다.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들은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정신적 고통이다. 이것은 심화된 경쟁 사회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우리가 모두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다.
이 전시는 관객과 작가, 모두에게 일종의 치유(healing)를 선사한다. 관객은 작가가 제시한 수수께끼를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씩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치유의 경험을 한다. 이는 실질적인 상처의 치유라기보다는, 나보다 더 절박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공감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위안에 더 가깝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연마, 조립, 용접과 같이 높은 강도의 육체적 노동이 수반되는 제작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응어리진 마음을 녹인다. 반복적 육체노동은 정신을 맑게 하며 성취감을 준다. 명확한 목적이나 기능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필요에 의한 기계 장치를 직접 고안하고 제작하면서, 조물주와 같은 마음의 풍요를 회복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비즈니스의 목적으로 만난 관계에서는 진지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는다. 진실하고 진정성 있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삶의 고충에 관해 말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에는 그런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온다면 마음을 열고 함께 울고 싶은 욕망이 공존한다. 그것이 바로 진심의 힘이고, 여전히 붙잡고 싶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은 새롭게 개발된 최첨단의 약이 아니라, 한 줄의 실없는 농담, 여전히 붙잡고 싶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 혹은 진실한 마음을 듣고 공감하고 또 관계 맺기를 희망하는 진심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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