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8.4.7.~7.8) 리뷰
1. 보이지 않는 것들, 교차적 공간, 그리고 관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018-2020년에 ‘아시아 집중(Asia Focus)’이라는 주제를 프로그램 기획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였고, 그 일환으로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가 기획됐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큐레이터는 도록에 수록한 전시 서문에서 “하나의 아시아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임의적”인지 지적하며, “아시아라는 개념 안에서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각기 다른 지역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기술한다. 전시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박주원 씨가 꼽은 세 가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About the Unseen)', '교차적 공간(intersentional space)', 그리고 ’관계(relations)‘다. ’보이지 않는 것‘이란 국가, 국경, 민족, 정체성과 같은 전통적 개념에 관한 것을 의미하고, ’교차적 공간‘이란 보이지 않는 것들로 고립된 개개인을 연결하는 장을, ’관계‘는 상호소통을 기반으로 작가와 작가, 작가와 관객을 잇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인위적 구분을 위한 분류 방식을 벗어나 떨어져있는 개별 주체들을 연결하고 다시금 소통하도록 하는 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글’을 참고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전시에서 서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분위기,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품들의 아우라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하기 어려우며, 글로 전부 담아내기 힘들다. 전시 서문을 모니터 화면에서 읽는 것이 실제 전시를 보는 것보다 더 멋진 쾌감을 주는 전시가 있다면, 글보다 실제 전시가 훨씬 더 강렬하고 매력적인 경우가 있다. 이 전시는 분명 후자였다.
전시 소개 글에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 전시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참여 작가의 연령대가 비교적 젊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주제로 한 크고 작은 미술관의 수많은 기획전에서 우리가 자주 보던 작가 군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에 참여한 작가 15명(팀) 중에는 비교적 생소한 작가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 작가의 대부분이 1980년대 출생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의 젊은 작가이다. 박주원 큐레이터는 직접 아시아 지역의 8개 국가 15개 도시를 리서치 하여 참여 작가를 최종 선정하였다. 작가 선정에 있어서는, 기획자가 고안한 주제의식에 부합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신작 커미션이 다수 이루어지는 만큼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작가인지를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고 언급했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동안 한국에서 체류하였기에 시간적 여유도 필요했다.
기획전을 준비할 때, 작가가 기획자가 제안하는 주제의식을 반영한 신작을 제작하고 전시하면 기획전의 주제적 방향성이 분명히 더욱 공고해지지만, 동시에 결과물을 사전에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획자에게는 모험이다. 또한 예산과 일정을 계획하고 진행하는데 있어 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에서는 어떤 작품이 신작이고, 어떤 작품이 구작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모두 뛰어난 완성도와 주제적 방향성을 긴밀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원활하고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주원 큐레이터는 전시 진행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작가와 기획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참여 작가들 사이의 관계 역시 수평적이고 친밀했으며, 어려운 상황이나 한계를 솔직하게 공유하여 성실하게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갔다고 말했다. 작품과 관객의 관계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모든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요게쉬 바브 <설명은 땨로 상상을 제한한다 Ⅱ> / 후지이 히카루 <일본인 연기하기>
2. 전시장 돌아보기
서론이 길었다. 이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자. 모두가 다 알다시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장은 어마무시하게 크다. 천정도 6미터의 높이로, 일반적인 미술관, 갤러리와 비교하여 두 배 이상 높은 편에 속한다. 크고 멋진 공간인 만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제약이 되기도 한다. 이 전시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는 1, 2, 3, 4 전시실과 공용공간까지 모두 사용하며 꽤 넓은 공간을 점유했다. 보통 한 전시에 한두 전시실을 써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넓은 공간은 촘촘하고 꼼꼼하게 구성되어, 출품작으로 풍성하게 채워졌다.
첫 번째 전시실에는 동선 순서대로 마크 살바투스의 <대문>(2015), 요게쉬 바브의 <색/가치>(2018*), <설명은 때로 상상을 제한한다 Ⅱ>(2018*별표는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을 의미한다), 티모테우스 쿠스노의 <호랑이의 죽음과 다른 빈자리>(2018*), 염지혜 <미래열병>(2018*), 후지이 히카루 <일본인 연기하기>(2017)가 설치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마크 살바투스의 <대문>이다. 실제 대문의 사이즈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로 큰 화면에 가득 프로젝션 되는 이 영상작업은, 필리핀의 마닐라에 있는 각기 다른 집의 대문을 보여준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견고한 철로 만든 대문부터, 뾰족한 철조망이 위에 달린 문, 그라피티로 가득한 낡은 대문, 얇은 쇠창살로만 만든 대문까지,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여러 형태의 대문들은 단순히 열렸다 닫히기만을 반복한다. 대문의 모양으로 우리는 어렴풋이 그 집의 경제적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대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장치이자,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문’이 없었던 시기에는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게 부족사회를 이루면서 서로 돕고 살았을는지도 모른다. 전시장에 진입하여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것은, 전시장의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동일하게 어떤 종류의 ‘대문’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어서 바로 등장하는 요게쉬 바브의 <설명은 때로 상상을 제한한다 Ⅱ> 역시 매우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가 전달되는 작품 중 하나다. 언뜻 보았을 때에는 거대한 카페트 같기도 하고, 동물의 털 뭉치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실제로 작가가 가능한 모든 국가의 국기를 모아 그것을 씨실과 날실로 해체한 작업이다. 국기는 한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다양한 국가가 모이는 자리에는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국기들이 모두 해체되고 난 뒤 살펴보면, 그저 한 무더기의 실뭉치일 뿐임을, 혹은 어느 국기인지 전혀 가늠 조차할 수 없는 형태가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체된 국기는 흐릿해진 경계선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이나 중국, 터키, 캐나다 등 붉은색이 국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에는 해체된 실, 본질적 재료에 있어서는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서 쉽게 섞을 수 있어 디스플레이 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다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로, 지역으로, 구분되고 레이블링 되어서 존재하지 않는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후지이 히카루의 <일본인 연기하기>(2017)도 읽어볼 수 있다. 20세기 초, 일본 정부는 제 1회 국립산업전시회를 열어 수입 상품 전시를 허용하였는데, 이때 일본인들은 전 세계에서 온 물건들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 ‘학술 인류관’에서는 전 세계 각기 다른 인종의 전통 거주시설을 본 떠 만든 구조물과 함께 토착민이 전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현 대상이 될 사람들의 항의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이 영상 작품은 국립산업전시회의 학술 인류관을 재구성해보기 위한 시도로 제작됐다. 빠른 속도로 문명과 기술을 발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는 그리 빨리 이뤄지고 있지 않음에 주목하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2017년 1월에 ‘일본인 연기하기’라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참여자들을 기록하였다. 20여 명의 참여자는 그들 중에서 가장 일본인 같은 사람은 누구인지 순위를 매길 것을 요구받는다.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눈의 크기, 키 등 ‘일본인 스러운’ 외모적 요소에 관해 가감 없이 자신들의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는 관객은, 지금도 여전히 그와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된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안유리의 <불온한 별들>(2018), 장쉬 잔의 <시소미>(2017), 타오 후이의 <몸에 대해 말하기>(2013), <더블 토크>(2018*)를 선보였다. 장쉬 잔의 <시소미>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설치로 구성된 작품이다. 영상에서 사용된 음악은 본디 독일의 민요에서 유래하지만, 대만에서는 이 곡을 세 가지 음 ‘시 소 미’로 부른다. 1930년대 선교 활동을 위해 대만을 찾았던 독일의 신부가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했고, 천주교의 엄숙한 분위기가 장례식과 잘 어울려 자연스레 장례식 음악으로 사용되게 됐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종이로 만든 쥐들은 작가와 그의 가족이 수십 년간 이어오던 가업인, 장례용 종이공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가는 길에 죽어 널브러져있는 수많은 쥐들을 보고, 그들이 사후세계에서 살 집을 종이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3대째 이어져 오는 가업, 작가가 거주하는 대만의 한 도시의 풍광, 그리고 대만의 전통음악이라 믿어왔던 ‘시소미’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전통과 현재를 넘나드는 이 작업은 관객에게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시실을 잇는 중간 공간에는 맵 오피스가 제작한 연구 플랫폼이 설치됐다. 박주원 큐레이터는 전시에서 두 가지 종류의 플랫폼을 구성하였는데, 하나는 바로 이 연구 플랫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놀이 플랫폼이다. ‘연구 플랫폼’에는 말 그대로 이 전시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에 관해 좀 더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단행본이나 기타 연구 자료들을 비치해두었다. 또한 로랑 구띠에레와 발레리 포르트페 두 명으로 구성된 팀, 맵 오피스는, 비디오 작업 <가능한 아시아를 향하여>와 <아틀라스 오브 아시아>를 이곳에서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아틀라스 오브 아시아>는 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예술 활동과 이론을 결합한 작업으로, 100여 명의 작가가 특정 지역이나 개념에 관해 설명해 놓은 문구를 디스플레이하였다. 이들의 설명 문구는 전통적 방식으로 지역을 정의하지 않는 대신, 각자의 관심사와 경험 등을 반영한다. 일례로, 이주요는 한강, 김수자는 2727km, 양혜규는 사동 30번지, 왈리드 라드는 베이루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나부아 등에 관해 기술하였다.
장쉬 잔 <시소미> / 카마타 유스케 <더 하우스>
두 번째와 세 번째 전시실을 잇는 공용 공간에는 놀이 플랫폼이 마련되었다. 푸하하하프렌즈라는 건축가 그룹이 직접 설계, 디자인하여 플랫폼을 만들었다. 4팀의 작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해와 조합이 가능하고, 용도에 따라 위치를 쉽게 변경할 수 있는 형태의 의자, 테이블 등을 제작했다. 전시실이 아닌 공용공간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없을 때에는 한쪽으로 정리해두고, 있을 시에는 꺼내서 활용하는 형태였다. 플레이 플랫폼에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작가는 98B 콜라보레이터리, 루앙루파+세룸, 엘리아 누비스타, 황 포치로, 관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일일장터, 레몬 와인 바, 요리교실, 교습소, 강연이 이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작가와 관객이 직접 관계 맺을 수 있는 교차적 장소로 작동했다.
세 번째 전시실에는 마르타 아티엔자의 <우리의 섬, 북위 11 16 58.4>(2017)와 황 포치의 <생산라인>(2018*), 네 번째 전시실에는 엘리아 누비스타의 <비정통 요리연구>(2018), 카마타 유스케의 <더 하우스>(2018*)가 설치됐다. 엘리아 누비스타는 그의 영상 작업 <비정통 요리연구>에서 정통성(authenticity)이란 무엇인지 탐색하는 작업을 한다. 세계의 다양한 음식의 근원을 찾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많은 조리법이 전쟁, 노예제도, 식민지 이주자 등을 통해 구전되거나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에는 영국, 인도, 미국 등 다양한 국가를 대표하는 발언자들이 라운드테이블에 모여앉아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담겼다. ‘커리 버거’가 과연 어느 나라 음식인 것인지 가리기 위해 각 국가의 대표 발언자들은 구체적인 날짜와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며 열띤 논쟁을 펼친다. ‘커리’와 ‘버거’가 결합된 ‘커리 버거’를 주제로 삼은 것부터 작가는 이 음식의 기원지가 어디인지 명확히 밝히기는 것 보다는,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임을 상기시키려 했던 듯하다.
마지막으로 카마타 유스케의 <더 하우스>는 3가지의 집이 겹쳐져서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전통 일본가옥에 대한 조사와 연구로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는데,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그 집이 받아들여지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이 상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10년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지어진 일본 전통가옥은 적의 재산이라는 뜻으로, 적산가옥(enemy’s house)이라 불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히 국민이 소유하게 된 적국의 건물은 뼈아픈 역사를 상기시킨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당시 일본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탄약 폭발 실험을 위해 일본가옥을 모방해 짓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에는 일본의 전통 가옥 양식이 미니멀리즘(minimalism) 양식의 정수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작가는 같은 건축적 양식을 공유하고 있는 외관상 비슷한 집이라고 하더라도, 그 집이 만들어진 지리적 위치와 사회적 배경이 그 집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한국, 일본, 미국에 있는 전통가옥을 모두 겹쳐 하나의 집을 만들게 된 것이다.
3.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정체성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은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나는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과 비교해서 그 성향이나 특성이 구분지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혹은 인간이 만든 어떤 것은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는다. ‘아시아’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유동하는 경계와 정체성에 관한 내용에 집중한 것은 안전하면서도 필연적인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관객도 차별받지 않고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라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방침에 따라, 매 전시마다 전시장 벽에는 큼직한 글씨로 작품의 캡션과 소개글이 붙는다. 매 전시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의 소개글이 더 명료하게 뇌리에 남는 이유는 아마도 명쾌하게 정리된 작품 설명 문구와 잘 짜여진 동선, 각 작품이 보여주는 메시지 전달력이나 주제의식이 비교적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네 개의 전시실이라는 방대한 공간을 빈틈없이 활용하고, 내용뿐만 아니라 시각적 스펙터클도 충분하게 반영되어 있어, 전시의 시작점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솔직함과 성실함으로 작품 사이의 조화를 매끄럽게 이끌어낸 기획자의 능력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 박주원 / 1987년 출생으로,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에든버러대학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팀 코디네이터(2013-2015)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학예사(2015-현재)로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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