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7. 번역, 요약

Robert Smithson <Entropy and the New Monuments> 1966

by ㅊㅈㅇ 2018. 10. 2.


곽영빈 선생님 수업에서 읽은 텍스트.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고 어려워서 사실 전체적인 이해가 잘 안됐었는데... 수업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정리가 된 것도 같고. 동시대의 특성을 엔트로피랑 연결해서 이해하고, 주로 미니멀리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대상으로 그들이 제작하는 작품이 '새로운 기념비'라고 주장하는 글. 자신이 새롭게 주장하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미술사 맥락 안에서 이전 작업을 계속 호출해서 다름을 규명한다. 좋아하는 영화, 건축, 심지어 웃음 등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개념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서 다양한 예시들을 가져다가 설명한다. 이런 글을 쓰다니 참 멋지다. 

----

공상 과학에서 발견되는 많은 건축적 컨셉트는 과학이나, 소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오늘날의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공유된 목적, 새로운 종류의 기념비성과 맞닿아 있다. 도날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 솔 르윗, 댄 플라빈 등이 특별히 그러하다. 이 작가들의 작품에서 상찬하는 것은 플라빈이 말하는 "활동하지 않는(inactive) 역사" 혹은 "엔트로피" "에너지-하수구(energy drain)"이다. 미래는 곧 쓸모없는 것들로, 황폐한 것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미래에 온 우주는 온 에너지를 소진하게 될 것(burn out)이며, 모두가 모두를 아우르는 동질성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원래의 기념비는 과거의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시간의 풍화작용을 거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새로운 기념비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잊게 한다. 새로운 기념비는 오랜 시간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반하여 만들어졌다. 과거와 미래 모두 객관적인 현재로 위치지어졌다. 이러한 종류의 시간은 공간과는 연관관계가 거의 없다. 이것은 움직임은 없지만 정주하고 있고,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지만 뉴턴의 법칙을 거스른다.  

플라빈이 만드는 것은 "일시적인 기념비(instant monument)"로,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임이 명확한 산업적 산물로 만들어져 있어, 사라져 버릴 시간에 대한 기념비이다. 시간은 움직임이 빠진 장소로서 기능한다. 타틀린의 기념비는 진보적 개념을 추상적 이미지로 표상하며 혁명성을 드러내는 기념비이지만, 플래빈은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파괴하고, 물질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시간의 축소는 예술에 있어서의 움직임의 가치를 전멸시킨다.

기계나 전기 기술이 궁극적으로는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작가들로 하여금 엔트로피에 대한 혹은 그것에 저항하는 기념비를 만들도록 했다. 

도시의 외곽 지역에는 수많은 아파트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눈에 보이는 많은 대상들이 생겨났지만 그것들은 모두 특징없고 텅 비어있다(bland and empty).  생기없고, 천편일률적이며, 침울하고, 쉽게 잊혀질 법한 형태를 가진다. 모리스는 비어있음을 받아들이면서 불멸의 개념을 회복시켰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사막(desert) - 미래의 도시 - 에서 텅 빈 구조와 표면(structure and surface) 을 만든다. 이같은 미래의 도시는 자연스러운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대신 정신과 물질 사이에 단순히 존재한다. 양쪽에서부터 멀어져있고, 그 어떤 것도 표상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통적인 공간과 과정에 관한 이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지각(perception)은 행위의 부족이며, 정신에는 활량함만 남겨져 있다. 명백한 사실은 움직임의 모든 표상은 전부 잊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작가는 감정적인 것을 향하는 경향이 있고,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이는 지각적인 것에 끌이는 경향이 있다. 작가들은 엑스레이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서 영화를 비롯한 각종 대상들을 보면서 김고 심오한 오늘날의 특성을 캐치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