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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민백 개인전 <라바 램프> 리뷰

by ㅊㅈㅇ 2021. 5. 20.

 

민백 개인전 <라바램프> 전시 전경 2021

 

인터넷 시대의 추상 회화는 어떤 모습일까? 미술의 긴 역사, 그 중에서도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한 추상 회화가 있다. 그것의 연장선 상에서 지금의 작품들을 읽게 된다. 2021년에 제작된 작품은 과거의 위대한 유산과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작가들이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2015년 런던에서는 <해시태그 앱스트랙트(Hashtag Abstract)>같은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최근 5-10년 사이 비재현적 회화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작가들이 늘어났고, 컬렉터와 큐레이터들의 관심도 급증했다. 다양한 종류의 SNS를 활용하며 인터넷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대는 살아가는 사람의 추상 회화는 이전 세대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선, 색, 형태, 재료, 표현방식, 보여주는 방식 등에서 자신만의 문법을 가지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경리단길에 위치한 스펙트럼 갤러리에서 열린 민백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라바 램프(Lava Lamp)>(2021.3.16-4.24)는 오늘날 추상 회화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 ‘라바 램프’는 유리병에 물과 반투명 왁스가 들어있는 등을 의미한다. 이것을 가열하면 마치 용암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왁스가 상승했다 가라앉기를 반복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라바 램프는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며, 색 역시도 붉은색이나 녹색, 보라색등의 원색을 활용해 초현실적 느낌이 강조된다. 전시에 붙여진 제목을 단서 삼아 민 백의 작품을 조금 더 살펴보았다. 

전시장은 두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1층에는 6점, 2층에는 5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자연광은 작품 본연의 색을 잘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두 점의 대형 작업 <B37Q>과 <Lava Lamp 07>가 눈에 들어온다. 두 작품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을 가진 화면에 각각 옅은 오렌지색과 레몬색 톤의 색채가 채워져 있다. 민백의 캔버스는 자유분방한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이카 파우더나 메탈 파우더, 종이죽 등 새로운 자료를 활용해 독특한 질감을 생성해 냈다. 형광빛이 나는 색을 가장 아래에 배치하고, 그 위로는 다른 물감을 흘려 또 다른 얼룩을 만들었다. 화면의 일부는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과 같이 흘러내리는 모양이며, 이리저리 튄 잉크나 아크릴 물감 파편은 즉흥 연주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만들어 낸 행위의 집적물로, 작가의 움직임이 물화되어 화면에 기록된다.  

전시장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작품 <Lava Lamp 08>과 <Soft Lava>를 감상한다. 이 두 작품은 앞서 언급한 두 작업과 함께 이어지며 울림을 만들어낸다. 작품들은 개별 화면 안에서 제각각 발화하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작업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를 지속해 나간다. 하나의 작품이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면, 형식 그 자체가 내용이 되는 방식 말이다. 그의 작품은 Lava Lamp 뒤에 숫자만 붙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되며 맥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관객은 전체적인 색의 톤에서 알 수 있는 유사성을 인지하고 난 후에는 자유롭고 유기적인 형태의 확장을 주목하게 된다. 

2층에 올라가면 <Lava Lamp 06>과 <Mars Lamp>를 마주하게 된다. 물감을 뿌리고, 한 방향으로 흘러내리도록 하거나, 누르면서 닦는 등의 기법을 활용해 작가가 선택한 재료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우연한 충돌을 만들어낸다. 화면 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중첩된 시간의 층들은 납작한 하나의 장면이 된다. <Lava Lamp 05>는 어떤 물체의 표면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은빛 물감으로 뒤덮힌 작품의 좌측은 달의 표면을 연상시킨다. 작품의 우측에 듬성듬성 빛이 비추어 바랜 것처럼 보이는 얼룩은 눈 앞의 화면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을 통해서 재료와 표현방식에 관한 실험을 자유롭게 진행한 듯 보인다. 여러 층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여 큰 울림을 낳는다. 매 순간의 결정이 모여 과정 그 자체가 결과가 된다. 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는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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