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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박소현 개인전 <물풍경>(온수공간, 2021.9.25~10.13) 전시 리뷰

by ㅊㅈㅇ 2021. 11. 4.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기

:박소현 개인전 <물풍경>(온수공간, 2021.9.25~10.13) 전시 리뷰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참 좋아진다. 단풍놀이라도 가야할 것 같은 요즈음이다. 반짝이는 햇살에 새파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날씨란 그렇다. 날씨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매우 크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 좀 더 낙천적인 이유다. 박소현 작가 역시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온수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물풍경>은 비 오는 날, 비가 그치고 난 뒤, 물안개, 분수가 펼쳐진 풍경 등 ‘물’에 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온도 뿐 아니라 습도도 있다. 습도가 높으면 활동이 무뎌지게 되고 몸이 축축 늘어진다.

물은 무엇보다도 그리기 어려운 대상이다. 색도 투명한데다가 형태조차 유동적이니 말이다. 마치 우유 광고에서처럼 갓 튄 한 방울의 물방울은 사실상 현실에서는 육안으로 쉬이 보기 어려운 형태다. 물을 그린다면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임이 틀림없다. 온수공간 2층의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러한 물풍경을 담은 그림 들을 만나게 된다. 작품 제목에서부터 내용을 유추해보게 만드는 <부유하는 물덩이 #59-하얀 밤> <부유하는 물덩이 #60-따뜻하게 얼리기>는 분수의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직접 보고 관찰했던 분수도 있지만, 이미지 검색을 통해 보았던 분수들까지도 조합해서 그렸다는 이 작품은 분수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솟아올라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상승과 하강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려는 물줄기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물줄기는 서로 부딪히며 커다랗게 부푼 몸짓을 만들어낸다. 움직이는 찰나의 순간은 잡을 수 없는 것인데, 박소현은 그것을 화면 안에 잡아둔다. 배경의 짙은 색은 실제 풍경을 연상하게 하기 위한 배경이라기 보다는, 물덩이를 더욱 또렷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은분이나 운모와 같은 펄감이 느껴지는 반짝이는 가루들은 물방울의 반짝임을 더욱 생동감있게 표현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리는 대상이 하나로 고정된 대상이 아니었다면, 그리는 방식도 그와 비슷하게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장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바림한 풍경>이라는 작품이 그 예다. ‘바림하다’라는 동사는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번지기, 뿌리기, 흘리기 등의 기법은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색을 덧입히거나 칠하는 방식과는 달리, 그리는 사람의 의도가 반영되기는 하지만 우연적인 효과가 비교적 큰 편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물을 그리기 위해, 물이 가진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것을 그리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박소현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리트머스 종이에 흡수된 풍경같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작가의 목적이나 의도대로가 아닌, 물이 가진 습성을 받아들이고 일정 부분 수용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풍경에 담궜다 빼낸 종이는 이리저리 번지며 통제불가능한 즉흥연주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그리는 대상도 비고정적이고, 그리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우연적인 면이 있는데, 그에 더해 작품을 설치하고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박소현은 자신이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한다. 이전에 전시를 했던 장소인 중간지점, 공간형, 레인보우큐브갤러리 등은 이번 전시를 개최하게 된 온수공간과 마찬가지로 사무실이나 주택 등 일상적인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공간이다. 그 때문에 박소현은 명민하게 공간의 특수한 성격에 맞추어 작품을 제작하고, 또 설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얼룩이 있는 바닥, 색깔이 조금 다른 벽, 커다란 통창으로 바깥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벽, 자연광까지 오로지 작품만을 위해 존재하는 비일상적 공간인 화이트큐브와는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이 주변 환경과 호흡하며 예상하지 못한 풍광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바로 <매직아워>다. 순지에 채색한 작품 <매직아워>는 비단에 배접해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좁다란 계단이 보이는 공간에 설치됐다. 올여름 유난히 자주 볼 수 있던 무지개. 무지개는 원래 원형의 형태이지만 우리의 눈에는 반원으로 보인다. 박소현은 그 반원의 무지개를 이 공간에 구현해 냈다. 사전적으로 무지개는 ‘대기 중 수증기에 의해 태양광선이 굴절, 반사, 분산되면서 생기는 기하학적 현상’이다. 물풍경을 말하면서 무지개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가득 담기는 공간에 설치한 <매직아워>는 그야말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마법같은 풍경을 선사했다. 해가 지고 난 뒤에는 조명이 작품에 집중되면서 긴 그림자가 함께 보여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해가 가득 들어오는 낮 시간에는 작품의 뒷면에까지 배어나와 은은하게 보여지는 밝고 아름다운 색채를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온수공간 2층의 전시장 특성 상, 외부의 풍경과 함께 작품을 경험하게 되다보니,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설치 이후에 얻게 된 것이다.
그리는 대상, 그리는 방식, 그리고 설치해서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게 되기까지, 박소현은 일관되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해보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시도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느끼게 되는 것들과 닮아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도 갑작스러운 지출이 생겨 모으지 못하기도 하고, 여행을 가려고 준비를 해두어도 외부적인 상황으로 갈 수 없게 되기도 하고, 다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최대한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바뀐 조건들에 따라, 그때그때 즉흥연주를 해나가면서 우리 모두는 매일을 살아나간다. 어쩌면 박소현의 작품과 전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묘미라는 걸 깨달아나가는 과정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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