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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맹성규 개인전 <선데이 일레븐> 리뷰

by ㅊㅈㅇ 2021. 5. 27.

 

 

일요일 11시에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스페이스윌링앤딜링에서 열린 맹성규의 개인전 <선데이 일레븐>(2021.4.7~30)은 여러모로 참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전시였다. 전시 제목, 포스터 디자인, 공간 디자인, 작품 구성, 텍스트, 기술적인 완성도, 영상까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스페이스윌링앤딜링의 공간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이 맹성규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가족을 비롯한 개인사적 내용이 드러남에도 그것이 개인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확장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모두 전공한 맹성규는 자신의 이러한 장점을 살려 작품 제작 과정에 그만의 능력을 보여준다. 먼저 전시장을 살펴보자. 2층에 위치한 전시장에 올라가는 복도에는 붉은 색 LED가 달려 있다. 이와 이어지는 듯 바닥에는 붉은 색 카페트가 가득 깔려 있고,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타원형 탁자 위에 어댑터처럼 보이는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흰 벽에는 일련의 텍스트와 사용설명서처럼 보이는 브로셔, 영상이 걸려 있다. 전시 포스터에서도 활용한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작가는 언급하며, 전시에 유일한 컬러로 활용했다. 

전시의 메인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세계로 트래블 어댑터(SEGERO TRAVEL ADAPTER)는 마치 실제로 유통, 판매되는 대량생산품인 것처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해외 여행 갈 때 하나씩은 꼭 챙겨야 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트래블 어댑터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양이 조금 독특하다. 디스플레이된 영상에 따르면, 이 어댑터의 모양은 작가의 부모님이 세운 청주의 교회 외관과 동일한 것이다. 세계로 뻗어나가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인 교회, 그리고 그 모양을 본 따 만든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세계로 어댑터라. 이러한 내용적 맥락을 덧입혀 의미를 확장해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걸까?

작가노트에서 맹성규는 한국의 교회들이 성장을 위해 자본주의 방법론이나 대중매체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종교적 상징을 무관한 대상에까지 적용하며 자의적으로 의미화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벽에 설치된 텍스트 작업 <Red Materials>이다. 텍스트 작업은 ‘교회 첨탑의 십자가에 사용되는 빨간 네온사인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와 ‘교회 강단에 사용되는 빨간 방염카페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두 개의 문장에서 시작하여, 점차 각 단어들 사이에 다른 형용사나 설명문구를 집어 넣어 맥락을 확장, 변형시킨다.

영상 작업 <세계로 트래블 어댑터-대만에서의 도슨트>는 세계로 어댑터를 대만에 계신 부모님께 보낸 뒤, 그것을 선교사에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여 받은 것이다. 15분 여 가량의 영상은 어떤 부분에서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작가의 의도와는 끊임없이 빗겨가는, 각기 다른 입장에 따른 인식차 때문일 것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그의 부모님은 자신의 교회 모양을 본따 만든 어댑터가 사용가능한 것이고,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의미 면에서 닮아있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워하고 또 뿌듯해한다. 나는 오히려 이 영상에서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가족주의적 문화,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용법 안내서>, <사용기록>, 실제 오브제를 디스플레이한 <테이블>과 <어댑터>까지. 실제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구성으로 꾸려진 맹성규의 이번 전시는, 그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접점을 통해 일상의 디자인에 은폐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비판적 사유의 도구로 디자인을 활용”한다. 맹성규는 일상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나 이미지 등을 편견 없이 살펴보고,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이중적 의미를 펼쳐 놓음으로써 우리 머릿속에 딱딱하게 굳어있는 관습적 태도를 깨부술 것을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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