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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사물사물>전시(kcdf갤러리, 2021.11.26-12.12)리뷰

by ㅊㅈㅇ 2022. 1. 4.

 

 

문유진 선생님이 기획하신 전시.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에서 주는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단체전 부문에서 선정된 전시다. (천만원 가량의) 비교적 적은 예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작품 신작으로 흥미로운 전시가 만들어졌다. 전시장소가 인사동의 kcdf갤러리라 공간 자체가 성격이 짙고, 현대미술 관객이 많이 가는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 좀 아쉬웠다.

이 리뷰를 쓰면서 2014년에 <청춘과 잉여>전을 기획했을 때가 생각났다. 전시 예산이 2100만원이었다. 4층으로 이루어진 커먼센터 빌딩 전체를 꽉 채워서 10명의 작가가 전부 신작으로 작품을 제작해 만든 전시였다. 이미 활동을 많이 한 선배 작가들이 전시 참여를 수락해준 것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진짜 할 수 없는 일을 어찌저찌 해서 만들어냈던, 젊음과 열정을 갈아 만든 전시였다. 그로 인해 건강을 잃었고, 많은 관계가 종료되었다. 열심히 한다고 꼭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열심을 알아봐주는 사람만 있어도 엄청 힘이 된다는 걸 알기에 이런 리뷰를 쓰게 됐다. 기획자와 같이, 전시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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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사물> 전시 리뷰

 

'전시'라는 작품

 

공예 새롭게 보기 : 시각예술과의 접점에서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주제와 잘 부합하는 작품을 찾아 초청·대여하거나, 혹은 해당 주제에 관심을 둔 작가를 섭외해 신작을 의뢰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둘 다 매우 어렵다. 전시 예산이라도 충분하다면 그나마 조금 낫겠지만, 독립기획자의 경우는 그마저도 요원하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과 기획자가 전시를 만드는 것은 모두 개인 창작의 영역이라, 다른 누군가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과 전시는 유기적으로 함께 작동하여야만 좋은 전시가 될 수 있기에 기획자와 작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신작 커미션을 통해 전시가 만들어지는 경우, 기획자는 작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작가는 기획자와 수시로 의견을 나누며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일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작가가 매번 새로운 기획전시를 위해 신작을 만들기는 어렵다. 또한 기획전시 중에서도 구작들로만 구성된 의미 있는 전시도 많다.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신작 커미션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사물사물의 장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사물사물은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이 갖는 힘을 잘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사물사물에는 세 명의 도예가 김상만, 이영호, 이은범과 세 명의 시각예술가 국동완, 김경태, 조상현이 참여했다.도예가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활동해 온 기획자 문유진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공예라는 안경을 벗고새로운 시선으로 분청, 백자, 청자를 다루는 세 도예가의 작업을 살핀다. 필자는 시각예술 분야 중에서도 서양의 현대, 동시대미술에 국한하여 연구를 이어온 터라 도예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분청은 회색의 바탕흙 위에 백토로 표면을 마무리한 도자기이고, 백자는 백토로 만든 형태위에 투명한 유약을 입혀 구워낸 도자기이며, 청자는 회흑색의 바탕흙 위에 유리질의 유약을 발라 청색을 내는 도자기다. 각기 다른 종류의 작업을 진행해 온 세 명의 도예가는 자신의 재료, 기법, 형식을 잘 드러내면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담은 작품을 제작했다. 필자는 이 세 작가의 작품이 공예사적 측면에서 얼마나 어떻게 뛰어난지 설명할 재간이 없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본 세 시각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이들의 작업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창작자가 누군가의 작업을 대상 삼아 자신의 방법론을 활용해 새로운 작업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작업이란 본디 내용적인 부분과 형식적인 부분이 하나의 몸을 이루며 만들어진 것이라 주제와 내용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지정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방법론이 단단한 창작자의 경우,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멋진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아무리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른다고 하여도 자신만의 색으로 새롭게 부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원본의 토대 위에 세운 신작이라 하더라도, 그 창작물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되며, 오히려 더 자신다움을 확인케 하는 계기가 된다. 기획자가 제시한 하나의 제약을 온전히 받아들인 상태에서 만든 새로운 작품은, 아무런 제한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기존의 작품 제작과는 또 다른 스릴을 주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주었을는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신작 커미션의 묘미다

 

전시장 둘러보기 : 작품과 작품이 만나 만들어내는 이야기

김경태의 사진은 김상만의 분청 표면을 더욱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크기를 무한정 키우는 것이 어려운 도자기와는 달리, 사진의 경우는 기술의 힘을 빌린 크기 조절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김경태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합쳐 사진 전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지게 하는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기법을 이용해 맨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사물의 물성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짙은 회색 전시대 위에 차분하게 놓인 김상만의 분청 뒤로 언뜻언뜻 보이는 김경태의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보는 분청과 기계의 힘을 빌려 관찰하는 분청을 비교해볼 수 있다. 관객은 마치 현미경을 이용해 대상을 관찰하듯, 관습화된 우리의 시각을 의심해보는 기회를 얻는다. 김상만의 도자기는 김경태의 사진과 함께 놓임으로써, 특정 쓰임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가지는 재료와 형식의 미를 극대화해서 경험하게 한다. 또한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내 눈앞에 실제 도자기를 놓고도 사진에 담긴 부분이 어딘지 찾기 어려운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기획자는 이 두 작가의 작품이 한데 겹쳐지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곡선의 전시대 위를 메운 것은 이영호의 백자와 조상현의 오브제-사운드 작품이다.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일반 관객들은 유추하기 힘든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재료를 실험하기도 할 것이고, 완성된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폐기하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제작방식을 고안해내기 위해 리서치도 할 것이고, 잘 만들어진 다른 작품을 많이 보고 배울 부분이 있는지 판단하기도 할 것이다. 창작의 그 지난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또 다른 창작자인 조상현은 기획자와 함께 이영호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수차례 대화를 하면서 그러한 과정 가운데 자신이 보고 느낀 지점에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는 작품 제작에 있어서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하나의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은 결정의 순간들을 거치고 나서야 관객 앞에 선보여지게 된다. 백자 파편, 혹은 작품의 일부는 조상현의 방식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소리와 함께 새로운 숨을 쉬게 된다. 조상현과 이영호의 작업이 하나씩 교차하여 놓임으로써 각기 다른 시간이 한데 엮인다.

이은범의 청자는 커다란 크기뿐만 아니라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굴곡을 통해서 재료적 실험을 극대화한다. 다수의 드로잉 작업을 선보여 온 국동완은 청색이라는 색채를 탐구한다. 몇 방울의 잉크를 떨어뜨릴 것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종이를 담글 것인지 과학자와 같은 냉철한 면모로 색채 실험을 펼친다. 성형 과정에서 청자에 남은 선들은 국동완의 드로잉에 새겨진 선들과 함께 이어지며 각기 다른 음역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듯한 환상의 하모니를 선사한다. 어쩌면 칙칙한 녹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청자의 색은 옥, 비취의 색과 닮았다. 그 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국동완의 드로잉을 통해 체험해볼 수 있다. 청자에서 색을 결정하는 것은 청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흙, 유약에 포함된 산화철이 가마 속 불꽃과 만나 화학반응을 한 결과물이다. 물감을 섞어 만드는 청색이 조금은 더 예측가능하고 빠르게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창작자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탄생한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획 전시는 여러 작품을 한 자리에 그러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에 출품된 개별 작품을 만드는 작가만큼이나, 전체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의 창작에 대한 열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단단하게 직조되기 위해서는 개별 요소들의 조화나 균형뿐만 아니라, 그사이의 논리적, 시각적 연관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작동한다. 모두 신작이라고 하더라도, 기획자, 작가 사이의 대화 없이 각자 진행된 경우와는 달리, 사물사물전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자와 함께 긴밀한 대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 그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나의 작품은 어떤 작품과 함께 놓이느냐에 따라 발화하게 되는 내용의 스펙트럼이 변화한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 많은 사람 옆에 서면 조용한 사람이 되고, 과묵한 사람 옆에서면 수다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함께 놓임으로써 상대적인 입지에서 발생하는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다. 김상만과 김경태의 작품에서는 보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영호와 조상현은 작품의 제작과정에 관해 생각해보게 하며, 이은범과 국동완은 재료의 성질과 그 실험에 관해 반추해 보게 한다.

 

창작의 본질에 관한 고민

전시 제목을 한 번 더 상기해본다. 앞에 사물(思物)에는 생각 사자를 썼고, 뒤에 사물(寫物)에는 베낄 사자를 썼다. 기획자는 전시서문에서 전자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개별적 경험이라면, 후자는 개인이 대상을 사적세계로 옮겨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예술 창작과 감상의 태도라고 썼다.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면서 가졌던 의도나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용자에게 닿지 않거나 혹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그런 불통의 과정이 예술을 더 흥미롭게 하는지도 모른다.

인접해있기는 하지만 재료나 태도에서 접점이 적은 것처럼 보이는 도예와 시각예술, 두 분야의 작가가 함께 신작으로 꾸린 이번 전시는 두 분야를 아우르는 창작의 본질적 고민에 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더 나아가 도예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자 작품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감상의 방식, 꼼꼼하게 눈으로 형태를 살피고, 작업 과정에 관해 듣고, 색을 감상하는 등 초심을 잃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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