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3. 리뷰

이동근 개인전 <돌연변이>(스페이스윌링앤딜링, 2022.8.3-21)리뷰

by ㅊㅈㅇ 2022. 8. 26.

 

불완전한 현재를 즐기는 일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신이 있다면 그가 사람을 만들어냈고, 예술가는 작품을 빚어 만든다.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은 많은 책임감을 요하는 막중한 일이다.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세상에서 어떤 쓰임을 가지게 할 것인가. 실용적인 가치나 즉각적인 효용성을 논한다면, 예술 작품만큼 즉각적인 가치가 나타나지 않는 대상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며, 또한 모든 사람이 이해하거나 활용할 수도 없다. 예술 작품은 아름답다? 자연이 만들어낸 하늘의 빛깔, 꽃들의 색, 언덕을 따라 흐르는 계곡, 셀 수 없이 다양한 초록으로 가득한 숲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자연과 비견해서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이미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각자의 삶의 조건과 상황에 붙들려 그것을 온전하게 감상할 여유가 없을 뿐이다. 아름다움은 어쩌면 시간을 오래 들여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만나게 되는 부수적인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 이동근은 스튜디오 방문에서 RNA의 전사 과정과 단백질의 합성 과정 등을 담은 영상 클립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모든 창작의 과정에는 리서치 과정이 수반되지만, 그가 말한 과학의 영역은 꽤 생소하게 느껴졌다. 유튜브에 Protein Synthesis를 검색하니 셀 수 없이 많은 영상이 나왔다. 우리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는 DNA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세포들은 끊임없이 분열, 복제, 결합하며 생동한다. 우리의 육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볼 수 없다고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미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연구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그것을 활용해 인간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아마도 그것이 과학자들의 일일 것이다. 그것을 본 예술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것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을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우리는 정말 많은 예술작품 속에서 살고 있다. 기술적으로 잘 구현한 것부터, 개념적으로 단단한 토대를 갖춘 작업까지 다양하다. 이동근은 시각적으로 명료한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고, 공간을 활용한 개념적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 <돌연변이(Mutant, Another Surface)>는 이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시도다.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구두로 설명하자니 매우 단순하다. 물감과 각종 재료들을 얹어 하나의 커다란 면을 만들고, 그것을 접거나 세워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에코폭시, 레진, 라카, 아크릴물감, 빵끈, 전선, 석고붕대, 석고, 휴지, 종이 실리콘, 철망, 부직포, 철망, 장식용 띠, 본드, 사진, 스텐레스 스틸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이런저런 계획을 가지고 여러 재료로 조형 언어를 만들어내는데, 실제로 결과물은 계획대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흘러내리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하며, 떨어지기도 한다. 그는 계획된 하나의 결과물을 향해 해야 할 일들을 수행해나가는 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 재료가 이끄는 대로, 제작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부산물들을 마주하며 즉흥적이고 유동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태도는 마치 정해놓은 결과를 얻기 위해 경쟁하며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을 즐기고자 하는 것처럼 읽힌다.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이끄는 대로, 시간에 몸을 맡기고, 불완전하고 불안한 현재를 즐기는 것 말이다. 작가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 말하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상태, 안주하거나 머무르지 않는 상태, 결정되지 않는 미지의 상태를 추구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작업이 회화냐 조각이냐를 말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회화라고 부르기에는 조각적인 면이 있고, 조각이라고 명명하기에는 회화적이다. 기존에 회화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가 아닌 것들을 사용하고 있기에 부피감도 생기고, 화면 표현도 매우 거칠다. 캔버스 위에 만화, , 종이, 나무, 고무, 금속, 천 등 소비사회의 폐기물들을 붙여 제작했던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과 같이, 그의 작품은 입체적이다. 물감과 함께 어우러진 각종 재료들은 여러 높낮이를 만들어내며 두께감을 선사한다. 물감을 표면에 안착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미디엄보다 더 적극적인 접착제를 사용해 여러 재료들을 붙였다. 그런 점에서 회화의 영역에서 충분히 다 담기 어렵다. 또한 몇몇 작업은 벽에 걸리지 않는 대신, 나무로 만든 좌대 위에 놓아 관객으로 하여금 네 면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조각으로 부르기엔 어폐가 있어 보인다. 애초에 네 면을 상상하며 계획하고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물을 만들 때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닥을 단단하게 하고, 골조를 만든 뒤 살을 붙이는 일 말이다. 이동근의 작품은 조각을 만들기 위해 구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제작과정을 보아도 순서가 조각의 그것과는 다르다. 작가 스스로도 표면, 자국, 흔적, 입체, 덩어리라는 말을 쓰지만 조각이라는 단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평면을 만들고, 그것을 접어 입체로 만든 다음, 그것을 다시 펴거나 세우는 과정을 통해 이동근은 표면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사람들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쫓으며 산다. 물론 덕업일치라고, 좋아하는 것을 잘하여서 직업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한다는 것은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아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안정되고, 편안하며, 익숙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잘 모르는 일을 할 때 우리는 불편하고, 걱정하고,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동근의 이번 전시 <돌연변이>의 제목을 다시 곱씹어본다. 돌연변이란, “유전자나 염색체의 구조에 변화가 생겨 계통에 없던 새로운 형질을 뜻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그에게 새로움을 향한 분명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의 모험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렇지만 일련의 진행, 제작 과정에서 그가 마주했을 불확정적인 시간들이 이동근에게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2022.8.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