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드물게 찾아온 시간> 아트선재센터 전시 전경


가족과의 소통: 큐레이터 이성휘 인터뷰

<쭈뼛쭈뼛한 대화>(아트선재센터, 2013. 7. 11~8. 18)전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의 소통'을 다룬 전시를 소개한다. 제2회 아트선재센터 전시기획 공모 오픈콜에 당선된 <쭈뼛쭈뼛한 대화>전이다. 당시 갓 대학원을 졸업한 새내기 큐레이터 이성휘가 기획했으며, 구민자-구재유, 양희중, 박형지-유창희, 이소영-이길춘, 한명숙, 이성휘-이정길이 참여했다. 세 명의 작가와 기획자,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이 함께했다. 구민자는 부모님을 예술가를 후원하는 미술재단으로 상정하고 "구&양 미술재단"을 소개했으며, 박형지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의 그림과 자신의 '현대미술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이소영은 손글씨로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영상을 제작했고, 이성휘는 아마추어 서예가인 아버지의 서예 작품을 선보였다. '착한 전시', '따뜻한 전시'로 비춰져 일간지와 대중매체에도 상당히 소개된 바 있다. 이 전시를 통해 기획자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전시가 개최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기획자 이성휘가 못다한 이야기를 전한다.

  

가족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30대 후반, 꽤 늦은 나이에 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한 것은 1993년인데, 미술이론과는 2000년도에 입학해 2012년에 졸업했다. 거의 20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애매모호한 백수로 지낸 기간이 꽤 길었던 것. 졸업 소식을 알리기 위해 지방에 살고계신 부모님 댁에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어디 산업체라도 알아봐라”고 하셨다. 공부한 시간과 그 공부의 전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발언이었다. 졸업은 했지만 막연했고. 일자리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쭈뼛쭈뼛한 대화> 참여 작가인 구민자, 박형지, 이소영과는 2012연 6월, 서대문구 재활용센터에서 <세탁기 장식장>전을 함께 개최한 바 있다. 세 작가가 모여서 기획안 초안을 잡고, 기획자를 모색을 하다가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나는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 당시 작가들은 홍은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해 있던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하는 오픈 콜에 지원해보게 됐다. 세 작가들에게 전시 컨셉트를 말하자 모두 취지에 공감하며 참여 의사를 내비쳤다. 하룻밤을 꼴딱 새워 기획안을 작성했다. 나의 아버지는 가족들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매일 서예를 한다. 이 전시 기획의 발단은 아버지의 말 한마디였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이 전시에 대해서 말을 꺼낸 것은 오픈콜 선정 발표가 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아버지에게 전시 참여를 부탁드리고 그의 반응은 어땠는가? 

공모에 당선됐다는 얘기는 미리 했지만, 그게 아버지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전시 시작 3달 전인 2013년 4월께야 밝혔다. 아버지 기존 작품을 출품하면 된다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절반은 못하겠다, 또 절반은 신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듯했다. 아버지를 작가로 모시고, 나는 큐레이터로서 함께 대화하면서 전시를 만드는 거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자기 머릿속에서 다 정리가 될 때까지 얘기를 전혀 해주지 않았다. 몇 점을 낼 것인지,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매주 주말마다 집에 내려가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서 캠코더로 촬영을 하곤 했는데, 특히나 그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동물원 원숭이로 만들지 말라”고 말했다. 결국 전시 참여를 취소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후 거의 한 달을 집에 내려가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전화해서 중재를 해주셨고, 다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참여 작가들에게 이 상황을 말했더니, 오히려 아버지가 더 작가적인 태도로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고, 훨씬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야말로 큐레이터가 아닌 딸로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뜨끔했다.

나는 누군가를 참여시키는 예술이 그 대상이 관객이든 협업자든 자기 입맛에 맞거나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근사한 말로도 포장해서 설득할 수 없는 대상인 가족과 함께 전시를 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매력적인 미학 용어를 가져다 붙여본들 가족은 이미 집에서 실체를 모두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먹히지 않는다. 고상한 언어로 미술을 포장할 수 없는 대상이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족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오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반대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식의 전시에 참여한 “충성스러운 부모”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강수미 평론가는 <월간미술> 2013년 9월호에 실린 비평글에서 이 전시에 참여한 부모를 “충성스런 협업자”로 기술한 바 있다. 1

우리는 협업이 아니라 ‘소통’에 중점을 뒀다. 일정 시간동안 미술에 대해 부모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 우리의 포커스는 협업이 아니다. 부모와 어느 정도 소통을 이뤄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전시였다. 나는 부모님이 소통에 있어서 내 맘대로 조종이 안 되는 사람, 예의를 지키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충성스런 협업자”로 평가받은 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미술계에서 계속 일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와는 협업을 할 것이고 공동으로 무언가를 진행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평생에 한 번쯤은 가장 어려운 상대인 가족과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얼마나 소통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함께 이러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착한 전시였다”는 평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으로 내가 전시를 얼마나 만들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첫 전시는 태도에 관한 전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겉멋을 부리는, 어떤 이론을 가져다 붙인, 이지적이고 현학적인 전시가 아니길 바랐다. 전시가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태도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을 속이고, 임기응변으로 넘어가고, 눈속임으로 만들어진 것은 구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의미가 깊다.  참여한 세 명의 작가들은 작가로서 보다는 친구로서 먼저 알았던 사이다. 이 셋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가족과 자기 작업에 대해 공유하는 편이다.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딸의 전시를 한 번쯤은 와서 보고 가는 부모들이다. 그런 정도에서는 원만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갈등 요소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없는 데 그것을 극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찰을 억지로 극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심사 받을 때 오인환, 정현 선생님이 너무 밋밋하니까 색깔이 다른 작가를 추가해서 넣으라고 했다. 오인환 선생님은 작가로는 빠지라고 말했다. 하나도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했다. 실제로 전시 준비 중에 다른 작가 한명을 섭외했었다. 갈등이 심한 모녀지간으로, 파국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은 모험을 택하지 않았다. 다른 작가와는 1년 넘게 얘기했던 사이라서 새로운 작가 투입으로 생겨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 팀에게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화해, 화합의 분위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현상으로 읽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구민자 작가의 부모님 역시 그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갚아야 한다는 냉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들 역시 예술에 대해서 동경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고, 자식들이 예술계에서 근사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2  

나의 아버지 역시 대한민국서예대전에 계속 출품했는데, 딱 한번 입선하고 계속 떨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예 입상자들 작품을 전시를 했었다. 걸려있는 것을 보고 온 적도 있다. 서예계 역시 선생님, 파벌, 라인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오직 골방에서 글씨 쓰는 사람이다. 떨어지고 나면 사람들을 원망하고, 비리에 분노하면서도 매년 5월이면 가서 대학로 예총회관에 가서 지원했다. 전시장 중간에 롤을 따로 걸어놨었는데, 아버지의 낙선작들을 모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예대전에 출품하는 사람들은 글씨쓰기 좋은 유명한 구절을 주로 쓴다. 모양새를 예쁘게 하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퇴계 이황의 마니아다. 오직 당신이 원하는 시구만 쓴다. 천 몇백 수를 따로 번역해 번역본도 만들고 있다. 본인이 쓰고 싶은 구절을, 직접 해석해서 써서 제출한다.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비주류의 예술 세계를 드나드는 사람들이다. 유심히 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도 전시에 담겨 있다.

 

주류 미술계와 비주류, 프로와 아마추어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녹아있는 듯 보인다.

내가 어느 정도나 주류미술계에 있는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중심부’를 돌아다니면 좋을 것 같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전부인가 생각한다. 나 스스로를 주류의 숲을 돌아다니는 곤충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넓고 다양한 미술계에서 나는 참으로 무지몽매하고, 내가 하는 게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주류를 떠나면 안된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할까봐 계속 경계하고 반성한다. 이 전시에서 다루는 것은 우리가 가치가 있는 예술로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계 말고도 다른 세계가 많은데,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걸 들여다보게 됐다.


“가족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소영씨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매일 아침 메모로 써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했다. 그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전문배우들을 구해 영상으로 만들었다. 전시장 한 구석에도 비슷한 형식으로 질문을 써놓고 그 질문지에 관객이 참여해서 답변할 수 있도록 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에 관한 원망이 많았다. 우리는 이 전시가 이토록 감정적으로 읽힐 줄 몰랐다. 많은 관객이 자기 현실에 비춰서 전시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소통을 강요하기 위해,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만든 전시는 아니다. 그저 참여자 각각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억지로 화해시키기 위해 자리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기획안이 뽑히지 않았다면 나 역시도 이런 시간을 영원히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교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이성휘 /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학부 및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세탁기 장식장>(서대문구재활용센터, 2012), 공동기획 및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2>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했고, 현재 하이트문화재단에서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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