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잘린드 크라우스, “아방가르드의 독창성: 포스트모던적 반복”, October, Vol 18. Autumn 1981, pp.47-66.
1981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는 “사상 최대의 로댕전”을 개최했다. 전시에 맞춰 <지옥문>은 공개 직전에 새롭게 제작됐는데, 이것은 로댕이 죽은 지 60년이나 지나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많은 관객은 위작 제작현장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로댕은 죽으면서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을 청동으로 주조할 권리를 포함한 전 재산을 프랑스 정부에 헌납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지옥문>은 진짜 원작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로댕이 죽기 전에 <지옥문>은 만들어진 적 없고, 마르지 않는 석고 조형만 남아 있는 상태로 미완성이었다. 그러니 <지옥문>은 원작이 없는 상태에서 복제품만 여러 개 존재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처럼, 네가티브 필름이 발명된 이후, ‘진짜’ 사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졌으며, 하나의 개념으로서의 ‘진품성’ 역시 약화된다. 사진만 찍고 인화는 하지 않았던 카르티에-브레송처럼 만들어지는 결과물에 대해서는 로댕 역시 무관심했다.
<세 요정들>, <세 그림자>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동일한 모델로부터 주조된 것으로,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원작인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옥문>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형태가 반복되고, 재배치되고, 조합되어 이뤄진 것으로, 로댕이 자신의 상상력을 반복 단위로 활용한 예이다. 그러나 사실상 로댕의 신화에서 복수 제작과 배열의 실상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형상 창조자’, ‘조물주’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추구했던 로댕은 독창성을 과시하는 원형의 제작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원작을 미적인 순간에 가장 근접한 사진이라고 규정하는 공식은 시대양식이라는 미술사적 관념에서 유래됐고, 양식 개념에 더해진 진품성은 양식을 발생된 것,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인지하는 관점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생존 시에 큰 인기를 누리고 찬양받았던 로댕이 자신의 작품을 키치로 변형시키는 데 이토록 일찍이 한몫했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다.
과거에 대한 거부나 해체를 뛰어넘는 아방가르드의 독창성은 실제적인 기원과 배경이 전무한 상태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가 지향한 독창성은 “어제의 확신을 버린 사람”이자, 전통이 얹혀진 과거와 새롭게 경험하는 현재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었다.
아방가르드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독창성에 관한 담론의 기능으로 이해된다면, 이 독창성은 전위예술이 실제로 실행되는 방식을 통해 그 효력을 끊임없이 발휘한다. 일례로, 전위예술 작품에서 추출되는 하나의 형태인 그리드가 있다. 몬드리안, 레제, 슈비터스, 라인하르트, 솔르윗, 로버트 라이만 등 스스로를 전위적이라 일컫는 작가의 작품 도처에서 그리드가 보이며, 또한 그리드의 속성 중 하나는 언어에 대한 그리드의 불투명성이었다. 어떤 위계나 중심, 굴곡을 갖지 않는 그리드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서술적인 것에 적대성을 드러낸다. 그리드 구조는 언어가 시각의 영역으로 투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한다. 미술이 일종의 태초의 순수성 속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작가에게 그리는 순수한 무관심성과 절대적 무목적성의 표상이었고, 이것이야말로 미술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었다. 시작, 참신한 출발, 원점이라는 의미 덕분에 작가들은 그리드를 작업 바탕이 되는 매체로 선택했다. 그리드가 지닌 모순은 그것이 끊임없이 재발견되는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것과 미술가가 그 안에 갇혀있으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일종의 감옥이라는 점이다. 작가기 이 구조에 몰입한 순간부터 작품은 발전하기를 멈추는 대신 동일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전개하게 된다. 몬드리안, 알버스, 라인하르트, 애그니스 마틴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독창성이 아니라 반복적 상황에 빠진다고 해서 그것이 꼭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요지는 독창성과 반복이라는 대칭적 용어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편견 없이 바라보자는 것이다. 독창성은 가치가 부여된 용어이고, 복제는 불신되는 용어이지만, 이 두 용어는 미학적 질서 안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서로 지지하면서 함께 묶여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지시 대상이나 텍스트가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그것은 허구이다. 왜냐하면 그리드는 자기가 재현하려는 동일한 표면 위에 구획된, 바로 그 표면에 대한 재현이기 때문이다.
모더니스트적 미의 관념은 독창성과 반복이라는 쌍을 이룬다고 인정된 용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대신, 한짝의 절반(반복)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 유일성-복제성, 단수성-복수성, 진품-위작, 원작-모작 등. 이중 용어에서 부정된 한 쪽이 바로 모더니즘 비평에서 억제하려 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모더니즘을 제압하게 된 것이다.
<노스앵거 수도원>에서 제인 오스틴은 사랑스러운 시골 처녀 캐서린을 그녀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내보내는데, “그 둘은 곧 드로잉에 익숙한 눈으로, 이 경치가 형상화될 만 한 가능성이 있는지를 가늠했다”고 묘사한다. 고매하고 학식 있는 동행인들의 풍경에 관한 관념-전경, 원경, 이차원경, 보조 영상, 명암 등-에 관해 듣게 된 캐서린은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즈음 베스시 전체가 풍경화의 소재로서는 큰 가치가 없다고 판정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저명한 풍경화가 윌리엄 길핀 목사와 디스트릭트 호수에 놀러간 아들 사이의 대화를 보자. 이 젊은이는 산에 오른 첫날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아버지가 회화적 효과라고 지칭하던 것이 부재한-에 실망했으나, 이튿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구름이 갈라지듯 열려 안심했다고 쓰고 있다.
1801년도 판 <존슨즈 사전>은 ‘픽처레스크(picturesque)’를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1) 보아서 즐거운 2) 유일성이 두드러진 3) 그림 그리는 데 상상력이 뛰어난 4) 그림과 같은 5) 풍경화 주제로 알맞은 6) 풍경화를 그리기에 적절한. 이 중 2번 의미인 ‘유일성이 두드러진’은 다른 정의와 어의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데, 풍경화 주제로 알맞은 어떤 것은 복수적이며 관습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 담론은 독창성에 우위를 주는 반면, 복제/반복은 억압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복제 관념은 원작을 착상하는 데에도 근본적 역할을 한다. 복제와 모사를 통해 제인 오스틴이나 윌리엄 길핀이 취미라고 일컬은 공통적 인식이 형성됐다.
모네의 <루앙 성당>은 천재적 능력으로 짧은 시간 안에 그려진 독창적인 작품이라 평가받았지만, 실제로 모네는 한 번에 열 개의 캔버스를 나란히 놓고 캔버스 위에 덧칠하기를 계속함으로써 자발성을 창출해냈다. 자발성의 기호 구실을 하는 스케치 같은 흔적은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발성은 기만적 기의라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상주의에도 해당되는 독창성의 담론은 그 보완 담론인 복제를 억압하고 평가절하 한다.
복제 개념이 억압되지 않는다면, 작가의 목적을 전도시키는 기능을 하는 담론을 수행하는 작품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 예로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실크스크린 캔버스와 셰리 르빈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에드워드 웨스턴이 찍은 자신의 아들 닐의 사진을 르빈은 다시 찍기만 함으로써 만든 사진 연작이 있다. 나체 남성 토르소는 서구 문화 속에서 중요 모티브로, 여러 예술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복제되어 왔다. 그리스의 토르소에서 웨스턴의 사진으로, 또 르빈의 사진으로 옮겨오면서 그 복제의 행위를 폭로한다. 르빈의 작품이 ‘독창성’이라는 모더니스트적 관념을 해체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복제의 담론처럼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역사에서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과 공존하던 시대는 끝났으며, 모더니즘을 탈신화화하려는 비평과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모더니즘의 기본 명제를 무효화하고 허구성을 노출시킴으로써 그것을 청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모더니즘의 기원을 되돌아보고 그것이 끝없는 복제 속으로 분열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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