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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2. 주제론

[예술학2] 한국 동시대 ‘추상’ 미술의 가능성

by ㅊㅈㅇ 2016. 12. 5.

2016.12.2.

최정윤

 

 

한국 동시대 추상미술의 가능성

: 몇 편의 글과 몇 개의 전시를 중심으로


 

. 들어가는 글

넓은 의미의 추상미술이란 대상을 알아볼 수 있게 재현하지 않은 미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전통적 미술개념이 폐기된 20세기의 다양한 미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 추상미술에는 자연의 외관을 아주 단순한 형태로 환원하거나, 비재현적 형태를 구성하거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등의 다양한 경향이 포함된다.[각주:1]

열화당 현대미술운동총서 시리즈 중 추상미술에서 옮긴이 정무정은 책이 시작되기 전에 위와 같이 추상미술을 정의하고 있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재현에 충실하지 않은 미술을 뜻한다. 하지만 서구의 20세기 추상미술은 일반적으로 엘리트주의, 중심 지향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단어처럼 인식되어 왔다. 모더니스트들이 내세웠던 미술을 위한 미술이 내재하고 있던 모순, 곧 미술의 종말을 맞닥뜨린 작가들은 이후 점차 미술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서구에서는 네오 제오, 포스트 컨셉츄얼리즘을 비롯한 추상 형식을 갖춘 미술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것을 통해 추상미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각주:2]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던적 사고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추상미술이 더 이상 실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며, 오히려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 반대급부로 회화 내에서는 형상이 부활하거나, 여러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추상미술이라 불리던 경향은 자연스레 약세를 띠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의 특성 중 하나가 다원주의인 까닭에 형상과 추상미술은 공존할 수 있었고, 여전히 추상미술의 명맥을 잇는 작가들이 꾸준히 등장했다.[각주:3]  이처럼 추상미술은 시기와 맥락에 따라 의미와 형식을 바꿔가며 미술계 내에 꾸준히 존재해 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두 편의 글과 두 개의 전시를 통해 1980년대 이후 한국 동시대추상미술에 관해 살펴보고, 뒤 이어 필자가 올해 기획한 전시 <룰즈>전의 의의와 전시될 작가와 작품의 특성에 관해 논의해 보려고 한다.

 

. 두 편의 글: 1980년대 이후 한국 추상미술의 동향

1950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는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나왔고, 회고하는 전시 역시 수차례 열려, 한 챕터로 요약하기에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중에서도 두 권의 책일 주요하게 읽었는데, 1997년 출판된 미술평론가 오광수, 서성록, 유재길, 윤진섭, 이일 등 총 8명의 필자들의 글을 엮은 한국 추상미술 40, 그리고 가장 최근 자료로는 2016년에는 발행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전시 카탈로그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현재의 시점에 가까운 글, 미술평론가 윤난지의 포스트 모던 시대의 한국 추상미술(1997)과 미술평론가 김성호의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두 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김성호는 자신의 글에서 윤난지의 글을 인용하며, 글의 장점과 한계를 살피고, 자신의 연구가 그 뒤를 이어 범주를 확장하고, 현 시점에서 업데이트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한국 추상미술의 계보를 정리하는 데 있어, 2차 세계대전 이전과 6.25 한국전쟁 이후 크게 두 개의 시기로 분류한다. 전자는 1930년대 후반 일본 체류 한국인 미술가에 의해서 추진됐으며, 일본 전위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김환기, 조우식, 정규 등이 주요하게 활동했다. 광복 이후,1950년대 후반의 추상미술은 집단적인 양상을 띠는데, 미술계 내부 이권 다툼에 환멸을 느낀 작가들의 순수한 창작의지의 발로였다. 주를 이루고 있는 비형상회화는 주로 박서보, 김청관, 김창열, 나병재를 중심으로 했으며, 앵포르멜이 화단을 장악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AG, ST, 회화68 등을 중심으로 한 예술의 본질적 물음이 활발히 전개됐다면, 1975년부터는 단색화, 모노크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기하학적 추상과 옵아트의 경향이 잠시 등장했다가 점차 사그라졌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화는 제스처 중심의 추상적 경향과, 형상의 회복을 통한 내용성 우위의 경향이 나타났다.[각주:4] 198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른 바 포스트모던 시대가 열렸으며, 다양한 문화가 수평적으로 펼쳐졌다. 미술의 경우도 예외 없이, 제도권 미술이라 불렸던 모더니즘 미술과 재야의 민중미술의 대립이 의미를 잃게 되거나, 함께 공존하는 양상을 띤다. 1980년대 이후 추상미술세대의 작가들은 서구 추상미술의 계보와 한계를 익히 알고, 추상을 강박적으로 추앙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우리나라의 추상미술은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각주:5]

1997년에 쓴 글 포스트 모던 시대의 한국 추상미술에서 윤난지는 추상미술의 경향이 20세기 미술의 지층 속에 박제된 화석처럼 남아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작품의 경향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분석했다. 1. 신체와 재료의 즉물성에 근거한 추상(박영남, 김춘수, 이종목, 최인선, 윤동구, 박영하)은 붓이나 나이프 같은 도구를 버리고 몸 자체의 감각을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재료 자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를 탐색하는 것이 역시 작업의 중요 요소이다. 2. 모더니즘에의 비판적 성찰을 위한 개념작업(이인현, 문범)은 형태의 반복적 배열이나 단일색조 등 밖으로 나타난 모습은 1960년대 미니멀리스트의 작업과 유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서구에서와 같은 단선적 역사적 발전과정이 없으며, 성취에 대한 강박도 없어, 그것에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비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호 형상의 추상회화(박관욱, 이기봉, 엄정순, 이지은)는 사물을 암시하는 형태가 혼용된 경우로, 은유적인 내용을 형태 속에 담은 일종의 기호처럼 기능한다. 레디메이드 이미지로서의 추상(홍승혜, 설원기, 이상남, 장화진)은 그리드와 같은 격자 형태로 대표되는 추상형상이 미술사 속에서 레디메이드 이미지처럼 계속 사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2016, 김성호는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이전 시대와 확연히 차별화된 조형언어가 많지는 않지만, 이전의 네 가지 분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동시대 추상미술의 경향을 다원주의 추상미술이라 명명하고, 김성호는 총 15가지로 재분류를 시도한다. 이 글에서는 조각, 입체, 설치, 미디어아트 등에서 나타나는 추상미술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개념적 추상(최선, 고산금, 박형렬, 지니유), 형상적 추상(김일권, 채성필, 정규옥, 도윤희, 이제영, 김용관), 전통 실험 추상(우종택, 정광희), 표현주의 추상(정직성, 제여란, 권현진), 포스트 단색화(천광엽, 장승택, 김택상), 기하학적 추상(이계원, 진효석, 황은화), 멀티플 추상 조각(이재효, 이용덕, 우무길, 이기칠), 여성주의 비조각 추상(이연숙, 최은정, 이소정), 여성주의 패턴 추상(하태임, 조현선, 정재호), 리좀 패턴 추상(김주현, 홍승혜), 질료 패턴 추상(편대식, 김수철), 디지털 패턴 추상(경현수, 이중근, 김채원), 광학 추상(임정은, 전가영, 박현주), 뉴미디어 추상(채미현, 석성석, 윤애영), 공간화 추상(손몽주, 천대광)으로 분류했다. 윤난지의 글이 평면회화 작품을 중점적으로 글에서 다뤘던 것에 반해, 김성호는 뉴미디어와 조각, 설치미술에서 나타난 추상 경향까지 모두 포함하였다는 점에서 연구 범주가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

두 글을 비교 분석해보자면, 먼저 1997년 작성된 윤난지 글의 키워드는 추상미술, 작품을 회화에만 국한시켰다. 글에서 언급된 16명의 작가의 연령대는 당시 나이로 40-60대가 주를 이뤘다. 2016년 김성호의 글은 다원주의 추상을 키워드로 삼고 있으며, 46명의 작가를 언급하는데, 그들의 연령대는 주로 30-50대다. 그 가운데 총 62명의 작가 중 두 명의 평론가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전시한 작가는 홍승혜 1명이다. 그만큼 각자가 정의하고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큰 틀에서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들이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으로 각기 다른 작가를 선택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두 개의 전시: <영원한 현재>, <평면탐구>

이번 장에서는 미술관에서 열린 두 개의 전시를 놓고 각각의 분류 방식과, 참여 작가를 중점적으로 살피며, 기획자가 관심을 가졌던 회화 실험의 방향성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두 전시는 일정 부분 공유하는 세계관이 있는 듯 보이며, 전시 일정도 1년 사이에 일어나 비교해서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에서 열린 <영원한 현재: 무시간적 세상의 당대 회화(The Forever Now: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 이하 영원한 현재)>(2014.12.13.-2015.4.5.)전은 꽤 큰 큐모의 회화 전시였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로라 홉트만(Laura Hoptman)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소설에서 사용한 단어 무시간성(atemporality)’을 인터넷 시대에 과거 모든 시대의 스타일들이 공존하는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무시간성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대중음악, 패션 등 여타 문화예술분야에서도 사용되는 개념으로, 유의어로는 레트로마니아(retromania), 유령론(hauntology) 등이 있다. 음악에서도 복고가 유행하고, 패션에서의 트렌드도 돌고 도는 것처럼,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보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면, 다양한 스타일이 혼종적으로 나타나는 오늘날의 트렌드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각주:6] 사이먼 레이놀즈 역시 그의 저서 레트로마니아에서 동시대 대중음악이 지적인 여정에 있어서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전유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며,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재해 온 여러 자산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사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는 것은 독창적인 스타일의 개념 이라는 꿈에서 깨는 것과 같다.

전시에는 뉴밀레니엄 이후 회화에 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해 온 작가 17명이 참여했다. 홉트만은 전시 카탈로그에 수록한 긴 에세이에서 이 전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분류하여 소개했는데, 섹션별 키워드는 환생(Reanimation)’, ‘재연(Reenactment)’, ‘표본 추출(Sampling)’, ‘원형(The Archetype)’이다.[각주:7] 미카엘라 아이히발트(Michaela Eichwald),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 메리 웨더포드(Mary Weatherford), 샤를리네 폰 하일(Charline von Heyl), 에이미 실먼(Amy Sillman)은 선배 추상미술 작품과 닮았지만, 종종 의미는 상이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환생섹션에 놓였다. ‘재연의 필수적 요소는 수행적인 데 있다. 원본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반복해내는 행위 말이다. 래시드 존슨(Rashid Johnson), 다이애나 몰잔(Diana Molzan), 맷 코너스(Matt Connors), 케르슈틴 브래치(Kerstin Brasch)가 이 섹션에 포함된다. ‘표본 추출섹션은 대중음악에서 먼저 쓰인 단어인 리믹스, 매쉬업, 샘플링 기법을 활용한 작가들로 구성됐다. 리차드 알드리치(Richrd Aldrich), 로라 오웬스(Laura Owens), 조쉬 스미스(Josh Smith), 마이클 윌리엄스(Michael Williams), 오스카 무리요(Oscar Murillo)가 포함된다. ‘원형섹션에는 상징적이고 원형적 형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없는 작업이 출품됐다. 참여작가는 조 브래들리(Joe Bradley), 니콜 아이젠만(Nicole Eisenman), 마크 그로잔(Mark Grotjahn)이다.

이 전시는 회화라는 매체가 동시대미술계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는 지표가 되었다. 회화는 종말이 선언되고 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며 지속되고 있음을 논쟁적으로 보여줬다.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진보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과거의 것들을 끊임없이 재조합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보자는 큐레이터의 발언은 꽤 설득력이 있다. ‘무시간성에 동의하는 작가들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기나 긴 컨베이어 벨트에서 탈출해 나와 침체된 상황 속에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평면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일민미술관, 2015.11.27-2016.1.31)<영원한 현재>전이 개최 된지 1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서울에서 열린 회화 전시였다. 전시는 평면으로 수렵하려는 충동을 시각적 상황으로 전치하는 한국의 미술가 총 10명을 모았다. 참여 작가들은 빈 평면을 채우기 위한 시각적 단위를 고안하거나, 프레임을 잘게 쪼개거나, 2차원의 평면을 중첩하여 두께와 시간을 부여하거나, 평면 회화 자체를 제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조하기도 한다.”[각주:8] 각 층의 전시실에는 부제가 붙어 구분되어 있었는데, 1전시실은 유닛의 섹션으로 물리적 조건을 탐구하기 위해 단위(unit)을 이용하는 작가, 성낙희, 강서경, 박정혜를 소개한다. 2전시실 레이어에서는 평면을 두께가 없는 기하학적 개념에서 확장시켜 하나의 겹에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평면을 중첩시켜 시간성을 부여하는 작가, 곽이브, 박아람, 박미나, 백경호의 작품이 전시됐다. 3전시실 노스탤지어에서는 미술 혹은 작가가 걸어온 길을 향수하는, 홍승혜, 차승언, 윤향로 작가 작품이 걸렸다. 큐레이터 함영준은 이 섹션이 끝없이 자신을 변주해야하는 한 명의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평면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의 언어가 걸어온 길일 수도 있다[각주:9]고 설명한다. 큐레이터 김인선은 월간미술에 기고한 <평면탐구> 전시리뷰에서 이 세 가지 카테고리를 평면성에 대한 연구 하위개념으로 두기에는 포괄적인 단어이고, 작품 각각이 입체적이고 흥미로운데 비해, 제시된 키워드가 해석을 단순화하는 지점이 있다고 평했다. 또한 이 전시에 관해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아래와 같이 평했다.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라는 키워드가 제시된 것을 보면 이 전시는 특정한 프로토콜을 설정해 개념적 패턴을 자가-생성시키는 일군의 추상회화(줄리 머레투, 매튜 리치), 화면의 중첩이나 레이어를 통한 이미지의 층적을 통해 새로운 의미 발생의 방도를 개척해낸 일련의 인용-이미지-회화(프란시스 피카비아, 지그마 폴카, 데이비드 샐리, 제프 쿤스), 20세기의 모더니즘을 비평적으로 재소환-재창안하는 좀비-형식주의 회화(다이내나 몰잔, 웨이드 가이튼)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는, ‘스마트기기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춰 재조절되는 인지적 기준점에 비평적으로 대응하는 메타 차원의 평면이 새로이 대두하고 있으며, 그것이 재차 회화를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국내의 구체적 작업 사례들을 통해 간접-입증해보겠다는 말이 되는 셈이기도 했다.”[각주:10]

인터넷과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국경의 제약 없이 대중은 자유롭게 다른 나라의 전시 및 미술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으며, 그런 것들이 빠르게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됐다. 뉴욕, 런던, 베를린 등 현대미술 시장 규모도 크고 담론의 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요 도시와 서울은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벌어져 있던 시간 차이를 줄여나가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좀비 형식주의는 예술가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는 월터 로빈슨(Walter Robinson)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의하고 있다. ‘형식주의인 것은 일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원적이며 본질주의적인 회화 제작방식 때문이며, ‘좀비인 것은 지금은 폐기됐다고 여겨지는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주장했던 모더니즘 형식주의 미학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각주:11] 좀비 형식주의는 뉴욕 미술시장에서 이러한 미술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러한 트렌드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부정적 뉘앙스를 견지한다면, 비평에 있어서도 이 같은 경향을 지칭할 수 있는 다른 용어를 고안해야 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2015<영원한 현재>전의 키워드는 무시간성이며, 작가 17명의 회화 작품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30~50대 작가가 주를 이룬다. 반면, <평면탐구>전의 키워드는 평면이며, 매체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면서 30-40대 작가 10명의 작업을 전시했다. 두 전시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중 하나는 미술관에서 열리는 서베이 형식의 전시가 아닌 주제기획전에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동시대 추상미술의 경향에 관한 글과, 두 개의 전시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큰 맥락에서 보면 일부 느슨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기존 추상미술의 맥락에서 익히 알려져 있는 외형을 재호출해서 사용하는 태도라든지, 재료 자체의 물성을 실험하고 특정 행위를 반복해서 만드는 행위는 계속적으로 이어져나가고 있다.

 

. <Rules>전에 출품된 작품의 특성

201612월에 개최될 <룰즈>전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20-30대 젊은 작가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특성을 읽어보고자 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추상회화의 실험, 연속성 상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양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수많은 신생공간이 생겼다가 사라졌으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신생공간들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 <서울 바벨>(2016.1.19.~4,5)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 전시는 작품의 내용으로라기보다는 공간과 세대에 관한 이야기들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표명해 온 신생공간들을 한 데 모은 전시였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아쉬움으로 남았던, 공간 운영과 유지, 생존의 차원이 아닌, 작품에서 나타나는 경향성으로 동 세대의 작가들의 경향을 살펴보고자 했다.

또한 주변 젊은 작가들 중에 형태나 색채의 구성을 통해 만드는 추상적 화면처럼 쉽게 인지되는 작품을 제작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현상을 먼저 직시하고, 기획을 고안하게 됐으며, 이전 세대의 추상 미술과 유사점이 있다면 무엇이며, 또 어떤 점에서 새로운지 비교해서 분석해보고 싶었다. 더 나아가 위에서 말한 현상의 원인을 찾아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등의 변화된 환경 속에서 제작 방식에서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었다. 또 다른 가설은 다른 나이대의 권위자가 규정해 온 세대론 프레임 “88만원 세대20대를 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작가들과 대면하고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시간동안 그들은 완고하게 인터넷이나 컴퓨터 툴을 활용한 제작방식과 거리가 있음을 주장했고, 개인이 처한 현실이나 삶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을 원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색의 사용이나, 형태의 배치 방식 등에서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 툴을 쓰는 방식과 일견 비슷해 보이는 지점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작가들은 오히려 전통적 회화의 방식대로 자신의 작품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했으며, 새로움에 관한 갈망이 컸다.

1980~90년대 출생의 젊은 회화 작가들 중 추상적 경향을 나타내는 작가로 7명을 초청했고, 전체 전시의 키워드는 규칙(Rules)’으로 정했다. 특정 사회정치적 이슈나 이야기에서는 어느 정도의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며, 작품 바깥의 삶과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보다는 작품을 구성하는 물리적 재료와 작가 사이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파열음 그 자체에 집중한다. 전시에는 명료한 선과 색으로 차가운 화면을 만들어 내는 작품부터 작가의 주관에 따른 감정 표출을 극대화한 작품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전시 제목 룰즈(rules)’는 참여 작가 모두가 자신이 온전히 통치(rules)’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규칙(rules)’을 고수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붙였다. 보통 규칙은 여러 사람이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이자 질서를 의미하지만, 전시에서 지시하는 각 작가들의 규칙은 지극히 각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그 규칙을 명확하게 남에게 설명하거나 공표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규칙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과는 차이가 있다. 작가들이 제시하는 자못 객관적이고 명확해 보이는 규칙마저 실상은 그 목적이 지극히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다.

참여작가 7인의 작업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1. 감정이나 경험을 시각화하는 경우(김미영, 최수인, 에이메이 카네야마), 2. 자의적으로 정한 규칙을 실행하는 경우(이환희, 고근호, 성시경) 3. 그리고 회화 혹은 회화적 재료에 관한 회화(이상훈)를 제작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김미영은 캔버스 표면을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이행의 통로로 상정하며, 청각, 미각, 총각 등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분위기나 기억의 파편을 캔버스 위에 그려내 공감각적 심상을 전달한다. 최수인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과 같은 심리적 양상을 다룬다. 특정 감각과 연관된 모티프를 구체화하여 특정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극적 무대를 창조해 낸다. 에이메이 카네야마는 꿈, 기억, 무의식에 축적된 이미지를 화면 위에 담는다. 물감과 붓, 캔버스를 마주한 작가 개인이 조우하는 그 순간의 수행의 행위에 의의를 둔다.

이환희는 재료, , , 형태 등을 결정하는 순간에 작품이 제작되는 시점의 개인적 관심사를 기반으로 만든 스스로의 규칙을 따른다. 이번 전시 출품작에서는 이렇게까지 해도 회화가 될 수 있는가를 제약 요소 중 하나로 상정하고, 매체적 한계에서의 임계점을 줄타기한다고 말하는데, 기준 자체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고근호는 참조의 대상을 오직 회화 내부 요소에서만 가져와 작품을 제작하고, 그것들을 최종적으로 배열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배열의 과정은 스스로가 정한 제한의 규칙-캔버스의 규격, 캔버스의 개수, 천의 종류, 그려질 사각형의 규격과 개수, 물감의 종류와 색-을 따르는데, 제한 요소들은 작품에서 하나의 도구처럼 기능하게 되며, 하나의 화면은 다른 화면을 구성할 때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성시경은 화면의 면적, 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캔버스 안에서 여러 조각의 독립된 화면을 만들고, 확장 혹은 연 결의 방법을 통해 얻은 넓어진 틀 안에서 또다시 개별적인 단위를 중첩해 하나의 화면을 완성한다.

이상훈은 회화에 관한 회화 작품을 제작한다. 전작 <조영법(造影法) 1: 000 ~ 111>(2014)에서 그림을 그리기 직전까지 화가가 놓여있는 일반적인 상태를 나타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어떤 장소, 공간에 관해 말한다. 작가는 그 공간을 채석장이라고 부르면서, 그 곳에서의 가상의 일과를 총괄하는 감독관이 매일 기록하는 작업의 진행 상황을 캔버스 위에 펼쳐 보인다. 색상, 윤곽 등 회화를 구성하는 요소가 각 작품의 주제가 되는데, 먼저 색상을 다루는 작품에서는 물감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기반을 둔 색의 혼합에 관해 논의한다. A, B, C 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D 물감을채석장의 하강식 채굴법(Digging)을 이용해역으로 분해해 나간다. <DIGGING: MAKING BLACK>에서는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이 섞이면서 검정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 나가는 글

지금까지 추상미술에 느슨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총 두 편의 글과, 세 개의 전시에 관해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한 두 편의 글에서는 추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반해, 두 개의 전시에서는 추상이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추상이라는 단어에 부여된 수많은 미술사적 의미와 과거의 잔재들을 생각한다면, 구상적 이미지가 의도에 따라 활용되는 작품까지 생각한다면, 그리고 추상이라는 단어가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까지를 생각한다면, 비재현적 회화의 흐름 안에서의 위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지칭할만한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두 편의 글과 세 개의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평론가와 기획자는 모두 끊임없이 작가의 작품을 한데 끌어 모아 그것으로 하나의 통일된 이론이나 키워드를 제시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카테고리를 나누고 명명하는 것은 불가피한데, 그것을 허점 없이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필자들은 글에서 방법과 매체, 주제상의 한계가 없어 그것을 어떤 범주로 묶어 설명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으며, 같은 범주에 속한 작가들도 상당히 다른 경향을 나타낼 수밖에 없으며, 한 작가가 여러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평론가나 기획자는 끊임없이 정리하고 요약하는 일에 정진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작가는 그 범주에서 계속 탈주하는 것을 꿈꾼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는 누군가의 작품 특성을 한가지로 규정하는 것에도 모순이 있다. 더 나아가 1950년대 추상미술 작가들이 집단적 성향을 띠고 그룹 활동을 주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금의 젊은 작가들은 지극히 개별적인 행보를 띤다. 특정 이슈에 관해서도 모두 다른 입장을 표명하며, 집단으로 모이는 자체를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렇듯 한계가 명확히 보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벌인 이유를 찾는다면, 난해하고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는 동시대미술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서일테다.

1980-1990년대 출생의 젊은 작가 중에 기존의 추상미술의 형태를 닮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다. 이희준과 박아람이 그 예이다. 이희준은 팬톤 컬러에서 지정한 이달의 색을 활용하여, 건축물을 찍은 사진의 아웃라인만 따서 추상적 표면을 만들어내고, 박아람은 3D프린터에서 각기 다른 입력 값을 넣으면 입체물이 출력되듯이, 특정 입력 값을, 가로 세로 높이 등의 수치에 적용시켜 만든 회화작업을 선보였다. <룰즈>에서 흥미로운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그것의 어떤 경향성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시간적, 물리적, 경제적 제약 등으로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작가들도 많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나이를 막론하고 이와 연관된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이 같은 주제로 또 다른 전시나 글이 파생되면 좋을 듯하다. 전시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시가 또 다른 전시의 레퍼런스가 되고, 그것에 반하든, 혹은 더 세부화 되든 어떤 연결된 흐름을 만들 수 있다면 좀 더 흥미로워지리라고 본다. 더 나아가 미술의 역사와 이론이 현장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자크 데리라가 말한 환대의 개념을 기억한다. 타자에게 자리를 주고, 그것을 인정하며, 그에 딸린 권리를 주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향한 적대를 거두어들이고 접근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는 1980년대 이전의 상황처럼 사회 참여적 미술 혹은 정치적 미술과 순수형식의 미술이 대립각을 세우고 어느 한쪽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도 아니다. 회화는 지금까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회화의 영역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또 흥미로운 논쟁이 발생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Benjamin H. D. Buchloh, Formalism and Historicity: Models and Methods in Twentieth-Century Art, The MIT Press, 2015.

김달진,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서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16.

김성호,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 2016.

서성록, 한국 추상회화의 원류: 1세대 추상 화가들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 2016.

윤진섭, 1970년대 한국 단색화의 등장과 전개, 2016.

멜 구딩, 추상미술, 열화당, 2003.

빌헬름 보링거, 권원순 역, 추상과 감정 이입, 대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2. p. 27.

오상길,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초기 추상미술의 비평적 재조명, ICAS, 2004.

오광수 외 9, 한국 추상미술 40, 도서출판 재원, 1997.


전시도록

평면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 서울: 일민미술관, 2016.

The Forever Now: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4.


정기간행물 및 온라인 매체

김인선, <평면탐구>전 리뷰, 월간미술, 2016. 1. goo.gl/eyJeLy

윤난지,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추상미술, 월간미술, 1997. 4.

임근준, 좀비-형식주의회화: <평면탐구>_표면적 기획 의도보다 큰 문제 제기가 된 전시, 아트인컬처, 2016. 3.

조연정, 반재현의 불가능성과 무의시론의 전략, 한국시학연구41, 2014. 11.

전혜숙, 회화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1980년대 한국의 추상회화, 한국기초조형학회, 2012.2.

 

 

 

 

 

  1. 멜 구딩, 『추상미술』, 열화당, 2003 [본문으로]
  2. 윤난지,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추상미술」, 『월간미술』, 1997년 4월. [본문으로]
  3. 김성호,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 p. 37; 김달진,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서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16. [본문으로]
  4. 오광수 외 지음, 『한국 추상미술 40년』, 도서출판 재원, 1997. pp. 11-32. [본문으로]
  5. 윤난지, 위의 글, 1997. [본문으로]
  6. 무시간적 작품은 시간적 흐름에 따란 분류를 거부한다. 역사적 진보의 흐름을 구축하는 것에 반기를 드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반동적인, 전위, 후위(arriere-garde) 등 시간성을 내표한 단어들은 무시간성의 예술작품을 설명하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Laura Hoptman, 《The Forever Now: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4. [본문으로]
  7. Laura Hoptman, Ibid. pp.13-61. [본문으로]
  8. 《평면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 서울: 일민미술관, 2016. p. 8. [본문으로]
  9. 위의 책, pp. 9-10. [본문으로]
  10. 임근준, 「‘좀비-형식주의’ 회화: <평면탐구>전_표면적 기획 의도보다 큰 문제 제기가 된 전시」, 『아트인컬처』, 2016. 3. [본문으로]
  11. Walter Robinson, “Flipping and the Rise of Zombie Formalism”, Artspace, 2014.4.3. http://www.artspace.com/magazine/contributors/see_here/the_rise_of_zombie_formalism-52184 ; 최정윤, 「좀비 형식주의 논쟁: 새로운 추상미술은 가능한가?」, 2016.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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