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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인터뷰] WEEKEND_이희준 작가와의 대화

by ㅊㅈㅇ 2017. 4. 7.

 

위켄드 전시 설치 전경 (사진: 윤병주)

 

이희준은 기고자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Interior nor Exterior: Prototype(2016)에서 Interior nor Exterior(2015~6) 인터넷에서 수집하거나 직접 촬영한 건축물과 인테리어 이미지를 기반으로 추상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원본 이미지를 일부 크롭하거나 확대라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했다. 추상화된 이미지는 원본 이미지가 갖는 역사와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완전한 입체도 평면도 아닌 그저 얕은(flat) 입체감을 가진 면으로 기능한다.

이번 전시 <The Speakers>에서는 스피커로 대상을 한정하였으며, 12점의 캔버스 작업과 5점의 드로잉, 17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집한 이미지 위에 연필과 마커로 드로잉을 하고 캔버스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그 과정을 관객에게 모두 공개한다. 


W: 스피커를 주제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H: 예전부터 스피커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음악이 좋은 곳을 소개받아서 갔는데 스피커가 눈에 띄었다. 네모난 상자 안에 동그란 요소들이 왜 그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형적으로 무척 아름답다고 느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피커 시리즈를 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에 Weekend에서 전시 제안을 받았다. Weekend의 전시 공간 역시 박스 형태여서, 스피커의 형상을 시각화하여 이 공간에 전시하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W: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인Interior nor Exterior: Prototype(2016)은 온라인에서 찾은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하였다. 이번 전시도 그러한가? 

H: 그렇다. 평소에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멋있는 고층 빌딩이나 작은 주택의 아치, 계단 등 인상 깊게 본 건축물의 사진을 찍어 수집한다. 소소한 취미 생활처럼 생각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바(bar)에 예쁜 스피커가 있으면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서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연관된 사진을 계속 검색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 이미지에 노출되었다. 인터넷은 용이한 도구일 수밖에 없다. 작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온전히 나의 것으로만 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주제, 동기가 있고 평소에 봐왔던 것들이 있으면 상황에 맞게 수집하는 편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스피커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수집했다.

 

W: 스피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희준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여 새로운 세계로 번역되었다고 보았다. 화면이 직선, , 곡선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작업의 과정이나 내용을 모르면 하나의 기초-추상-구성-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H: 작가이자 밴드 활동을 하는 친구가 작업실에 놀러 와서 작업 과정을 보았는데 그 반응이 재미있었다. 대상을 몰랐을 때는 땡땡이, , 곡선처럼 보여 반감이 들었다고 했는데 스피커라고 알려줬더니 갑자기 너무 좋다고 했다. 이때 사람의 마음에 따라 시선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느꼈고 이 작품을 처음 접할 때 스피커로 연상하기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첫 전시 이후 받았던 피드백 중 하나가 작품의 조형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나도 이에 동의한다. 논리적인 구성 안에서 조형 놀이를 하고 싶다. 추상을 흉내 내고 형식만 좇아가는 방식 보다는 어떤 자료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선택을 내리고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고 과정이 중요하다.

 

W: 지난 전시에 비해 유독 검은색이 많은 것 같다. Speaker Practice(2017)시리즈의 검은색 선은 화면이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거나 분할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이는 기존의 재현 회화에서 그림자의 역할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혹은 실제로 스피커에 검은색이 많은 요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검정색을 사용하면서 의도했던 바가 있는가?

H: 검은색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명암법을 깬다든지 서로를 연결하거나 끊어주는 구조적인 역할을 하는 뼈대로 사용한다. 소스 이미지에서 명확하게 검정으로 보이는 부분을 직접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캔버스 작업을 하면서 생기는 것도 있다. 처음에는 원본에 충실하자는 원칙이 있었지만, 작업하다 보면 그런 공식이 깨지고 캔버스 자체로 작업이 계속된다. 큰 프레임은 원본 이미지에서 나오지만 작은 디테일과 끊어짐은 캔버스 작업을 하면서 진행된다.

 

W: 이전 작품에서는 색에 표현 방식에 있어 표면이 얇고 매트했다면, 이번에는 여러 레이어가 겹쳐진 것도 있고 흔들리는 선이나 옅게 칠해진 면, 그라데이션 등 여러 표현 요소들이 조형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달라진 지점이 보인다. 이런 선택에 있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가?

H: 회화 작업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회화적 필체를 찾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기본적으로 필력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찾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나 같은 경우는 드로잉을 많이 했고 특히 첫 전시 이후로 작업한 드로잉에서 회화적 가능성, 필체를 찾고 싶었다. 아크릴, 과슈, , 연필,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를 고루 사용했는데 그중 마커가 가장 흥미로웠다. 반복적으로 채우거나 그라데이션에 용이하며 투명한 성질도 있어 종이의 바탕색이 드러나는 점도 재밌다고 느꼈다. 이러한 효과를 바탕으로 나에게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W: Speaker Practice(2017)의 종이 콜라주 드로잉과 과슈 드로잉은 관객이 캔버스 작업과의 관계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종이 콜라주 작업은 출력한 이미지 위에 일부를 확대하거나 잘라내어 선이나 형태에 변화를 가한 것인데, 최종 작업물의 시초가 되는 드로잉인가?

H: 그렇다. 이전 개인전에서 캔버스 작업과 하나의 드로잉을 설치하였는데 관객이 이들의 숨겨진 관계를 찾아내는 것이 인상 깊었다. 종이에 인쇄하여 작업한 이유는 이미지를 적당히 수집해서 컴퓨터로 편집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직접 손으로 가지고 노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처음 20~30개의 이미지를 늘어놓고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을 더 강조, 생략하여 최종 9개의 조형을 선발한 후 캔버스로 옮겼다.

 

W: 어떻게 보면 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H: 형태는 비슷한데 시각적 효과는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첫 번째 이미지와 최종 결과물이 다르고 그나마 과슈 드로잉과 캔버스 작업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과슈 드로잉 작업 계기도 작업실에 캔버스를 한데 놓아보고 싶었는데 크기 때문에 물리적인 여건이 되지 않았다. 컴퓨터로 볼 수 있지만 두께감 얇아서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드로잉을 제작하게 되었다. 캔버스에는 아크릴을 주로 사용했고 드로잉에는 과슈를 사용했는데, 과슈는 물에 약하고 내구성이 떨어져 캔버스에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가 담고자 하는 느낌과 발색이 훨씬 더 잘 살아나는 것 같다.

 

W: 이 작업에서 색이 형태와 더불어 중요한 두 가지 요소로 작용하는데 아무래도 색의 조합이나 결정은 작가의 감각에 따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H: 색에 대한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 이 시리즈를 진행한 지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어떤 명확한 기준과 방식으로 색을 바른다고 말하기엔 나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분명히 내가 추구하는 색깔이 있는데 아직 나만의 색깔이라고 기정될 정도로 작업과 전시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는 중이다.

기성 잡지나 도시에서 트렌디하게 쓰이는 색은 디자이너가 선택하고 의도되어 나온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런 색을 아무런 벽 없이 흡수하여 결과적으로 개인의 감각으로 만들어버린다. 한편으로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기 때문에 학습된 감각이란 것도 분명히 있다. 따라서 색에 대한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질문을 하면 구체적으로는 선생님께 배운 것일 수도 있고 추상적으로는 내가 생활하는 공간으로부터, 즉 인테리어 소품, 도시 간판, 도록, 포스터 등의 디자인에서 많이 보이는 색깔에 본능적으로 동의하여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철저히 계산된 색이라기보다 순전히 주변에서 즐겨 보던, 본능적으로 끌려 했던 것들을 가져다 쓰는 것 같다.

 

W: 작품을 흰 벽이 아닌 나무 프레임에 설치한 것도 특이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

H: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림을 그리는 도중 캔버스의 크기가 전시 공간의 바닥에 있는 네모 패턴과 크기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나의 작업이 실내에 있는 패턴이나 구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무 프레임을 이용한 이유는 각각의 그림을 이어주는 캔버스 외부의 구조적 기능과 장식적 기능에 있다. 구조적으로 캔버스를 벽면이 아닌 공간에 띄우는 방식으로 그림이 보이는 공간과 반대쪽 공간을 구분하고 화면의 조형적 요소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럼과 동시에 나무 각목이 만들 수 있는 건축적 장식 효과에도 집중하여 캔버스 작업을 방해 하지 않고 이어줄 수 있는 선의 무언가를 생각했다.

 

W: 지금의 작업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면 변하지 않는 취향이 일정 부분 이어져 오는듯하다. 2011Yellow Scene, 2013년에는 Playground Structure시리즈를 선보였다.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 선정 되었던 졸업전시 작품에선 밝은 색깔이 이어지기도 했다.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H: 작업을 크게 주제나 색, 형식에 맞추어 나눌 수 있는데 서로 영향받은 적도 있지만 사실 무의미하게 주제가 바뀌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변화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노란색 풍경은 처음 대학교 3학년 때 그렸다. 단순히 주변에 마주하는 풍경을 그려보겠다는 심상으로 사진을 찍어 프로젝터에 연결했다. 그런데 고장이 났는지 이미지가 노란색으로 투사되었는데 그 순간이 나에게 감동으로 와 닿았다. 거리에서 느꼈던 감정이 증폭되어 표현되는 것 같아서 캔버스에 노란색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풍경이라고 하면 건축물이나 인공물이 들어간 것인데 그때부터 기하학적 형태물, 예를 들면 주택의 아치형이나 대문 위의 대들보 같은 것이 이끌림으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새로운 주제로 놀이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우리가 놀던 정글짐이라든지 물결치는 구조가 단순한 놀이기구가 아닌 조각, 인공미가 물씬 펼쳐져 있는 조형물로 보였다. 그래서 놀이터에 대한 리서치를 했는데 정부에서 놀이터를 만들어 부모들은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놀게 하려는 배경이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만들어진 시스템 안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심리선을 건드리는 디자인에 관심이 갔다. 그렇게 노란 풍경에서 놀이터로 넘어갔는데 사진이나 내가 찍은 것들을 흑백으로 그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답답함을 느꼈다. 유학 생활이 끝나갈 때 쯤 그러한 것들을 털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확실히 날 것, 센 색깔이 많이 있었고 평소 관심 있게 보던 주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W: 왜 회화여야 하는가?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H: 사실 손으로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조소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느 순간부터 회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한정된 캔버스 안에서 작업해봤자 더는 나올 것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내가 봤을 때는 여전히 재미있는 가능성이 있다. 붓질을 통해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고, 물감이 섞여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이라던가 이를 통해 복합적으로 나오는 느낌들이 절대로 끝이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캔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실험에 더 집중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개인 기록물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첫 번째 전시에서 지금까지 기술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고려해서 다음 작업을 어떤 시각으로 이어나갈지 차근차근 생각할 예정이다.


저녁 시간에 찍은 전시장 전경  (사진: 윤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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