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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인터뷰] WEEKEND_이사라 작가와의 대화

by ㅊㅈㅇ 2017. 5. 23.

Felt Like a Privilege, 2017, single-channel HD video, color, sound (still image) 


이사라는 주로 비디오와 디지털 사진 매체를 활용하여 인종적 문제, 글로벌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맺음, 그 안에서 모두가 조금씩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의 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다뤄왔다. 작가는 작품에서 인터뷰의 방식을 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인터뷰 참여자, 작가, 관객 세 축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American Dream Exchange⟩(2011), ⟨Double Reflection: Seoul⟩(2013) 등이 있다. 

이번 전시 ⟨어쩌다가 특권처럼⟩에서는 비디오 작업 두 편을 선보인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어쩌다가 특권처럼⟩(2017)은 한국의 1980~90년대에 약 10년간 한보 건설에서 근무하신 아버지가 한보의 부도 직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사건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추적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한보 그룹이 건설한 아파트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 아버지와 함께 한보에서 근무한 고모부, 어머니를 인터뷰하며 스스로를 ‘듣는 이’로 위치시킨다. 역사적 진실을 찾는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개인의 삶과 국가의 경제, 사회사적 맥락이 맞닿아있는 지점을 더듬어가듯 엮어나가는 작품이다. 


W: 2011년 이후로 6년 만에 개최하는 국내 첫 개인전이다. 감회가 남다를 거라 생각한다.

S: 그렇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개인전이라고 하면 퍼블릭 아트부터 회고전의 성격을 띠는 전시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RISD 학부생이었을 때 로저 윌리엄스 국립공원의 후원을 받아 열었던 첫 개인전인 《American Dream Exchange》(2011)가 공공미술 프로젝트라 한다면, 이번 전시는 솔로 스크리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 같은 경우는 그룹전에 참여해도 개인전에 임한다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아예 그 프로젝트를 위한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며 모든 전시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편이다. 보통 기획전은 이미 정해져 있는 프레임에 작가가 들어가는데, 이번 전시는 작은 조각부터 기획자와 함께 맞춰나갔기 때문에 나에게 색다르고 흥미로운 경험이 된 것 같다. 기획자와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에서 전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었다. 협력자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W: 〈어쩌다가 특권처럼〉(2017)은 이번 전시를 위해 꽤 오랜 기간 준비한 신작이라고 알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S: 그렇다. 오랜만에 발표하는 작품으로 한보사태를 한국의 정치, 경제적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한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작업의 계기가 중요해 보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작가가 어떤 작업을 하는데 있어 그 계기나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에 대해 하나의 명료한 대답을 내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이기 때문에 항상 작품의 소재를 찾아 떠도는 편이다. 사진가가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나도 구체적인 결과물을 염두에 두지 않고, 홀로 조사를 하며 촬영하러 다니던 것이 점차 작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배경을 조금 설명하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캐나다로 혼자 유학을 갔는데, 그때의 유동적 삶과 비교하여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정체된 삶을 살면서 내면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으로서, 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기기 이전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에까지 다다랐다.

W: 작품 제목에 관해서 좀 더 설명해달라.

S: 해석이 자유로운 만큼 오해도 많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개념적으로 작업해서 작품을 하나의 증거로 남겼다. 영상에서 나레이션 같은 부가적인 설명을 추가하는 것보다 관중이 제목에서 힌트를 얻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동안은 제목들은 꽤 구체적이고 특정적이었다. 반면, 이번 제목 ⟨어쩌다가 특권처럼⟩에서 ‘특권’이라는 단어는 여러 층의 의미가 있다. 먼저, ‘특권처럼’은 내가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쓴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대게 특권이라고 하면 사회적이거나 법률적으로 주어진 권리 같은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이 제목에서는 그 단어를 오역하여 썼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초등학생이던 나의 심정을 되짚어 보는 단계가 필요했는데, 당시 내가 평범할 수 있는 자격을 잃어버린 대신 연민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것 같다고 가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저런 말을 내뱉은 것은 아니고, 어린 심정을 어른의 언어로 설명해 본 것이다. 또한, ‘나’라는 한 사람이 이제는 공공의 역사로 남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내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의 소재로 꺼내는 행위가 특권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표면적으로는, 작품 속 역사적 사건 안의 비리가 실제로 특권처럼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제목을 지었다. ‘특권처럼’ 앞에 붙은 ‘어쩌다가’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시기적 우연성이라는 걸 내포하는 것이다. 


Felt Like a Privilege, 2017, single-channel HD video, color, sound (still image)


W: 시간이 많이 지난 상황에서 IMF사건을 다시 바라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다.

S: 1997~1998년의 한보사태와 IMF 외환위기는 내 인생에서 아주 큰 전환점 같은 시기였고, 국가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해외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하여 생활하면서 그 시기에 대해 직접 알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분명히 기억은 하지만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그 사건에 대해 온전히 이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런 사건들이 아버지의 죽음과 매우 희미하지만 어떤 연결점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거나 직접 아버지가 지으신 건물을 찾아가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부터 시작해서 연결점을 구체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희미한 연결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망상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W: 한보 사태에 관해서 많은 리서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객관적인 레퍼런스를 증거로 삼기보다는 인터뷰 형식을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S: 20년이 지난 그 시기를 돌아보려고 했을 때 내가 찾을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증빙 형식의 증거밖에 없었다. 인터넷, 뉴스, 경제 서적 등에서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는데 그런 사회적 의미를 넘어 개인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고 싶었다. 작품에서 작가인 내가 인터뷰 진행자로 등장하는 것이 그런 태도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이전 작품에서 내 카메라 렌즈와 그 뒤의 내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카메라 렌즈와 영상에 삽입된 내 목소리가 내 개인의 시각이라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 다큐멘터리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작품을 통해 사회적 사건에 의한 피해를 고발하거나 호소하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가설을 시작점으로 그것을 기억하는 서로 다른 파편을 나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레이션이나 자막을 통한 객관적 정보의 전달을 배제하고, 인물 인터뷰를 택했다. 인터뷰, 즉 대화는 형식상 정리되지 않은 서사의 조각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야기꾼(storyteller)’이 아닌 ‘듣는이(lister)’의 역할을 하였다.

W: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개인적인 내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S: 보통 자전적인 이야기는 본인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많은 경험을 한 뒤 회고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내가 겪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어른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던 몇몇 기억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이야기처럼 접근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영상에서는 아버지를 제외한 그 주변의 사람, 사건, 장소 등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목소리, 사진과 같은 직접적인 증거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단지 의료 기록이나 MRI 영상 같은 문서로만 간접적으로 나온다. 거의 허구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대상을 객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멀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나가고,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W: 이 작품을 지금의 시점에서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

S: 작품에 아버지가 건설하신 건물 명단이 나온다. 내년이면 아버지가 처음 건설에 참여한 건물이 건설된 지 30년이 되어 재건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촬영을 통해 나름의 아카이브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재건축을 앞둔 그 건물들이나 언제 병원 아카이브 시스템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아버지의 의료기록처럼, 내 인생 또한 아직은 그 사건의 영향 아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것이 별거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 그 사건의 흔적이 잔재해 있을 때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다.

W: 중간에 어머니께서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인터뷰어와의 대화가 공개적으로 활용되는 데에 불편함을 표한 경우는 없었는가?

S: 이전 작품에서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눈물을 보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American Dream Exchange⟩(2011)의 경우가 그랬다. 이번 작품에서 어머니와의 인터뷰는 중요한 부분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가 자라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절대적 증언자 같은 역할을 하셨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그 증언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지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작품은 행인의 인터뷰로 보이는 공공의 기억으로부터 점차 어머니의 사적인 기억으로 이동한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인터뷰가 공개적으로 활용되는 데에 불편함을 표한 경우는 없다. 왜냐면 사적인 대화를 몰래 찍어 작품에 이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작품에서 다뤄지는 특정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참여자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참여자가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설득이 필요한 경우는 있었고, 그것도 작업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W: 이전 작품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2011년 제작한 ⟨American Dream Exchange⟩는 프로비던스 지역 주민 85명을 대상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모은 영상 작품이다. 참여자 몇몇은 자신들이 생각한 답을 적어 읽기도 하였고, 몇몇은 다른 참여자가 작성한 답변을 읽었다. 각기 다른 계층 혹은 인종에 상관없이 그들이 생각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자신의 입을 통해 말하게 되며, 진실과 상상이 한데 뒤섞인다. 누군가와의 인터뷰, 대화를 기반으로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특정 개념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S: 이 작품은 설문 조사를 하듯 길거리 인터뷰를 진행하며 하루에 3~5명씩 (적을 때는 1명씩), 1년에 걸쳐서 만난 사람들을 담은 영상이다. 작업할 때는 참여자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대화하는 것처럼 참여자와 이야기를 할 때 이것은 작품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굉장히 명확하게 깔려 있다. 하나의 장을 만들고 ‘교환’하는 것에 집중하여 만든 작업이다. 한보 사태라는 거대한 사건의 이면에 집중했던 것처럼 아메리칸 드림 역시 이상적인 사회라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지향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적 계층이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장애물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비춘 작품이다. 이는 오로지 관람객들의 추측을 통해서만 보여지는데 사회의 일원인 관람객들로 하여금 선입견적 추측을 적극적으로 유발시키는 방식으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이 현실의 지배 계급/피지배 계급과 각기 다른 문화적/사회적 계층에서 충돌하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이를 화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Double Reflection: Seoul, 2013, multi-channel viddo installation (six HD videos, silent, one HD video, sound)


W: ⟨Double Reflection: Seoul⟩(2013)에서는 북미로 간 외국인 이사라가 역으로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정체성, 혹은 관계 맺는 방식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S: 이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특정한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접근했는데 작품에 나타나는 대상과의 관계는 ⟨American Dream Exchange⟩(2011)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와는 이메일로 접근했고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몇 차례에 걸쳐 매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기도 하는데 그때 나왔던 커플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기도 했다고 들었다. 다른 작품과 연결해보면 ⟨American Dream Exchange⟩(2011)는 매우 의도적으로 그 환경 안에 있는 사람을 프레임에 담은 것으로 우리의 인식을 다루는 굉장히 표면적인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You Complete Me⟩(2011)에서는 시각적으로 일터의 환경과 융합된 인물의 피부색을 가림으로써 인물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관람객의 추측을 내비칠 수 있도록 하였다. ⟨Double Reflection: Seoul⟩에서는 인물에 대한 타인의 인식,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까지 그 인물에 담아 이중 반사적으로 유합했다. 개인의 시각이 모여서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관람객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서 개인을 개입시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겠고 인터뷰어로써 나의 역할을 퍼포먼스적인 면모로도 볼 수 있겠다.

W: 인식의 변환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라는데 동의한다.

S: 2000년도에 유목민적인 삶과 정체성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이 화자가 되었었는데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관심사는 세계화의 낭만적인 부분보다는 그 아래에 굉장히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이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도 그런 쪽으로 흘러갈 것 같다. 즉각적인 행동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 같은 것들이 사실 가장 실현 가능한 지점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범주화시켜 나머지를 소외시키는 일이 되어버리고, 결과적으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식은 분명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W: 그러한 점에서 이전에 작가가 스스로를 ‘듣는 이’로 설정한 것이 작품 제작 방식에서의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전반적인 작품에 공통으로 보이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S: 그렇다. 나는 ‘이사라’라는 인터뷰어로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선택하는 권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대화를 이용하자는 입장보다는 ‘듣는 이’의 태도로 작품을 위해 모인다는 것이다. 아까 특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언급한 것처럼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역사의 소유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작가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것에 대한 책임과 자격에 대한 질문이 많이 생기는데,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 사건[각주:1]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역사적, 사회적 사건이 우리 소유의 이야기이며 어느 예술가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묘사 혹은 대상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그동안 고민해왔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미술계에서 그 고민이 아직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사소하게라도 그것과 관련된 질문이나 시비가 없었는데, 그건 아마 암묵적으로 내가 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다른 작품들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W: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S: 대학 졸업 후 작업과 사회생활을 계속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길게는 3개월, 짧게는 한 달 이상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작업을 발전시키려면 절대적인 시간과 집중력 그리고 공동체가 필요하므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작업에 열중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내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위에 언급한 대로 공공의 역사와 개인의 이야기의 소유권, 장소성, 관계성 등을 탐구하고 싶다. 2-3년 뒤의 작품을 기대해주길 바란다. 


  1. 올해 새로 이사한 뉴욕 미트패킹 지역에서 처음 맞이하는 휘트니 비엔날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로 그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특히 백인 여성 작가인 다나 슈츠(Dana Schutz)가 그린 에멋 틸(Emmett Till)의 초상화 ⟨Open Casket⟩(2016)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에멋 틸(Emmett Till)은 1955년 미시시피 주에서 두 명의 백인 남성에 의해 잔인하게 린치를 당해 죽음을 맞은 흑인 소년으로 미국 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그의 어머니는 고작 14살이었던 어린 소년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 관의 뚜껑을 열어 처참한 아들의 시신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이 작품에 대해 작가 파커 브라이트(Parker Bright)는 “Black Death Spectacle”이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그림 앞에 서 있기도 했으며 다른 소규모 그룹의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가리고 있기도 했다. 영국 출신의 작가 한나 블랙(Hannah Black)은 “……백인이 흑인의 고통을 이익과 재미로 바꾸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흑인이 아닌 타 인종은 이러한 제스처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 공개편지를 썼다. 또한 그는 그 작품을 전시에서 제외할 것뿐만 아니라 파기할 것을 요구하여 큰 논란이 빚었다. 이에 대해 다나 슈츠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고통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 밝혔고,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류(Christopher Lew)는 이 작품이 트라우마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역사적인 아픔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여 더 이상의 분열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https://news.artnet.com/art-world/dana-schutz-painting-emmett-till-whitney-biennial-protest-897929 https://news.artnet.com/art-world/whitney-biennial-christopher-lew-dana-schutz-90655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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