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딜라이트 전시장 전경 사진
금빛 테라스에서 따뜻한 라떼를 마시는 11월 어느 날의 여유로운 오후
경리단길 초입에서 ‘아트 딜라이트’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PC방 간판 아래 Art Delight라는 문구를 가까스로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나지막한 오래된 건물의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다른 차원의 세상처럼 느껴지는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천장과 사방의 벽, 그리고 바닥까지 하얗게 멸균된 공간 안에는 형광등이 공간을 밝게 밝혀주고 있다. ‘화이트큐브’라는 일상의 정 반대쪽 끝에 위치한 인위적인 공간은 작가 이미정이 제작한 귀여움이 가득한 사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관객은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이미정이 제시한 오브제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활 가구의 형상(창문과 커튼, 접이식 테이블, 커피 테이블, 벤치, 코너형 선반, 수납장 등)인 것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합판을 잘라 조립한 이러한 가구들은 회색, 하늘색, 금빛 노랑 등 비슷한 듯 다른 색깔을 입었다. 이 사물들은 각기 독립적인 대상으로 존재함과 동시에,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으로 공간 안에 놓여 있다.
언뜻 이 공간은 IKEA와 같은 가구를 판매하는 곳에 가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쇼룸’의 모습을 닮았다. 관객은 마치 가구 쇼핑을 위해 나선 소비자와 같이 가구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오브제를 사방에서 관찰한다. 가구를 사러갔을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있다. 이 제품이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어울릴까? 가격은 적당한가? 재료는 좋은 것을 썼는가? 무게나 활용성이 나의 필요에 부합하는가? 등. 하지만 이 공간은 실제 쇼룸이 아니라, ‘전시’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을까? 이 작가가 실제 쓰임이 있지도 않은 ‘가짜-가구-오브제’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인식의 전환을 꾀해볼 수 있을까? 가구 곳곳에 뚫려있는 만화 캐릭터의 눈처럼 보이는 요소는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까? 이 전시에서 관객인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전시의 타이틀 ‘The Gold Terrace'를 상기해본다. ’금‘이라는 재료와 ’테라스‘는 어떤 의미인가? 금은 인테리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재료 중 하나이지만 가격과 내구성의 문제로 금을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금빛 스프레이로 다른 재료로 만든 대상을 마감하는 경우는 많다. 테라스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서구에서 제작된 영화에서 커다란 개인주택 바깥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여유롭게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징적인 공간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서울의 아파트에서 테라스는 집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 확장해서 사라져버린 공간, 혹은 빨래건조대를 놓거나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로도 활용된다. ‘The Gold Terrace’는 금이라는 반짝이고 그럴싸한 재료, 그리고 테라스라는 ‘원룸’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묘원한 소원과 같은 공간을 상징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가구-오브제’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을 만든 1988년 출생의 작가 이미정을 둘러싼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이후의 일본의 2-30대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토리 세대’가 있다. 사토리는 ‘깨닫다’는 뜻의 ‘사토루’에서 파생된 말로, 돈, 명예, 출세 등에 관심을 끊고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세대라는 의미를 가진다. 1980~2000년대 출생의 이들은 불경기와 경제 위기만을 보고 자라며,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을 원칙으로 했던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인생관을 가진 세대를 지칭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의 ‘5포 세대’를 떠올릴 수 있다. 계속되는 불황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5가지(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등)를 포기했다는 의미를 담는다. 2018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 세대는 ‘내 집 마련’과 같은, 영원히 성취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경제적 조건, 한계 내에서 최대의 만족,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식을 찾는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인터넷 사용의 일상화는 젊은 세대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값비싼 해외여행을 직접 가지 않는 대신,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수많은 여행 사진과 리뷰, 영상 자료로 간접 경험을 하고, ‘먹방’을 보는 것으로 허기를 대신한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특정 취향을 공유한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대세’로 여겨지는 트렌드를 쫓고 또한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업로드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은 요즘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단어라고 종종 언급된다. 그 일환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자그마한 공간을 DIY(Do it yourself)로, 셀프 인테리어와 홈퍼니싱 작업을 통해 주어진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은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이들은 ‘온라인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꾸민 실내의 인테리어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값비싸고 무거운 대리석을 구입하는 대신, 대리석 패턴의 시트 지를 기존의 가구에 붙이기도 하고, 빈티지 파벽돌을 만들기 위해 우드락에 흠집을 낸다. 예산의 한도 내에서 가장 그럴듯해 보이도록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고려해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들은 원자재의 진실성이나 가치보다는, 시각적으로만 닮아있는 그럴듯한 가짜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정의 ‘가구-오브제’는 이러한 상황 자체를 전유하고 있다. 원본의 고급스러운 가구나 인테리어의 이미지를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비록 그것이 표면만을 복제하는 일일지라도-흉내를 내고 있다면, 이미정은 그러한 제스처 자체를 다시 활용하여 합판으로 만들 가짜-가구 위에 물감을 이용해 재질감을 재구현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작가 자신도 역시 그러한 태도를 일부 학습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태도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의 문제를 당장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개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의 만족을 취하기 위해 제시하는 대안으로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인다.
이미정은 우울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음에도 위트 있게 상황을 마주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미정의 ‘가구-오브제’에서 통일감 있게 등장하는 것은 바로 만화 캐릭터의 눈처럼 보이는 형태다. 일반적으로 가구에는 브랜드의 이름이나 보증서 같은 라벨이 붙어 있다면, 이미정의 작품에서는 눈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눈을 바라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물에 눈을 그려 넣는 것은 일종의 의인화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작가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효율성과 ‘쓸모 있음’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쓸모’를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미술가와 미술 작품은 가장 쓸모없는 사람, 사물일지도 모른다. 이미정이 만드는 각각의 오브제는 접히거나 펼쳐질 수 있어 좁은 공간에서 특히 효과적으로 보관이 가능하고, 사용된다. 눈이 있는 가구-오브제들은 쓸모 있는 한명의 사람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쓸모’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전시 홍보 엽서에서도 활용되었다. 대부분의 관객이 전시 홍보 엽서를 무료로 받으면 손쉽게 버려버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반 사이즈의 엽서 대신 두꺼운 합지를 이용해 20cm 자의 역할을 겸해 ‘쓸모 있는’ 초대장을 제작했다.
관객은 가구-오브제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이미정은 자신의 가짜-가구-오브제를 더욱 실제처럼 보이게 하게 하기 위해서 소품들과 함께 전시했다. 바나나 송이, 접시 위의 케이크, 튤립 한 송이, 꽃병, 몬스테라, 석고상 등 전시장 곳곳에서 이러한 평면으로 재현된 소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관객은 귀여운 소품들을 보면서 조용히 웃음 짓게 되며 조금 더 오랫동안 전시장에 머문다. 전시장 안에서 유일하게 실재하는 관객은 가짜-가구로 만들어진 세트장의 연기자처럼 연극적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전시를 완성하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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