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기획하려고 한다면 전시를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처음(2012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궁금한 전시를 찾으면 캡쳐해서 모아두고 1주일에 한번 정도는 리스트 중에 괜찮은 동선을 짜서 관람을 한다. 내 공간을 운영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1년에 많은 전시를 해야하다보니까 사실 남이 만든 전시 보러 다닐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에 공감한다. 혼자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전시를 이어가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소속 없이 지내는 것 중에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러다 보니 보고싶은 전시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단점은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점.
이제 네오룩이나 서울아트가이드, 각종 미술월간지에서 다뤄지지 않는 작은 규모의 전시들이 정말 정말 많다. 아마도 하반기가 되면 더더더더더욱 많아질 예정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각종 기금을 받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12월 전에 올해 받은 돈을 모두 써야하기 때문이리라. 3-4월에 기금 결과가 발표되고 나면 부랴부랴 대관할 전시장을 찾게 되고, 대부분 공간이 1년치, 2년치 계획이 미리 잡혀있다보니, 공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사리 대관할 곳을 찾으면 대관료로 3-500만원을 날리게 되고, 서문을 청탁하고 도록을 만들 디자이너와 인쇄비를 잡으면 기금이 대부분 소진되고 만다.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6:1 이상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기금이다. 그런데 재단에서도 여러종류의 기금이 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나 예술인복지재단과 같은 다른 사업주체들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기금 사업이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창작 지원 기금 뿐만 아니라 레지던시나 미술상 소장품 등 공모가 엄청 많다. 대학가는 것도 '입시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작가들에게도 정보나 전략이 중요해지는 시대인가 보다. 끊임없이 자기 PR을 하고 어딘가의 심사의 대상이 된다. 그래야만 생존하고, 버틸 수 있으며,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음을 입증하며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인전에 서문을 청탁 받는 경우가 있다. 돈을 준다고, 시간이 있다고, 다 수락하지는 못한다. 보내준 포트폴리오건, 작가노트건, 어떤 작업이건 내가 매력을 발견하는 경우에 일을 맡는다. 하지만 그 매력이라는 것은 미술계 내의 평판이나 유명세, 화려한 경력 등과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내가 공감하거나, 울림을 얻는, 혹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게 하는 요소가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사전에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한다. 작품을 실물로 보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아무에게도, 아무 곳에서도 공개하지 않을 목적으로 대화의 내용을 녹음해와서 집에서 다시 그날의 대화를 복기하며 키워드를 정리한다. 1-2주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작품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쓴다. 1-2주가 지나고 쓰여진 글을 다시 보며 고친다. 왜 나에게 글을 부탁했는지 연락 준 작가에게 종종 묻는다. 00 선생님 혹은 작가가 추천해서, 00 전시 기획한거 봐서 등. 작가들도 기획전에 초대하면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 왜 나를 초대하는지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궁금하다. 내 글은 읽어봤는지, 왜 나를 초대했는지. 가장 기뻤던 대답은, 내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정말 그 작가를/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는 대답이었다.
모든 관계에서는 reacher가 있고 settler가 있다. reacher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는 거고, settler는 그 상황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두 사람이 완전히 평등하고 동등해서 그 어느 누구도 내가 reacher 라는 생각이 안드는 상황에서 결혼을 하거나 오래 연애를 하거나 할거다. 그 누구도 내가 더 아깝다고 생각지 않는 그런 관계 말이다. 디자이너건, 작가건, 큐레이터건, 누군가와 일을 하게 될 때 '체급'이 맞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때가 있다. 너무 차이가 많이나면 동등한 관계에서 일을 하기 어렵고, 많이 난다고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합리적으로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지를 미리 알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쪽이 돈이 많~~다면, 그래서 노동에 대한 납득가능한 보상이 가능하다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일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서로 상생하는 관계를 위해 어떤 맥락에서는 '열정 노동'이자, '협업'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한 번이라도 같이 일 해본 사람, 레퍼런스 체크가 가능한 사람, 어떤 사람인지 오랜 시간 보아서 아는 사람, 책임감이 있어서 어떻게든 마무리를 잘 짓는 사람과 계속 일을 하게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전의 경우는 제외하고, 주제기획전, 그룹전의 경우를 생각해본다. "어떤 전시가 좋은 전시일까?"의 질문은 영원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기획전이 좋은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주제를 잘 다룬 경우. 1) 먼저 학술적으로 단단한 기반을 가지고 있어서, 역사적 맥락을 정리하는 데 의의를 가진 전시가 있다.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1990>같은 전시가 그럴 것이다. 3년이라는 오래 준비기간 동안 4개국의 국립미술관이 협력해 만든 전시다. 2) 단단한 주제를 가지고 있고, 그에 맞는 작가와 작품 셀렉션이 훌륭한 경우를 말할 수 있다. <귀신 간첩 할머니>같은 전시가 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전시는 모두 정~~말 많은 인력, 예산,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개인인 독립 큐레이터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전시는 아니다.
새로운 작가를 보여주는 경우. 1) 새로운 작가를 많이 소개하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celebration of painting>의 경우 뉴욕의 젊은 페인터들을 소개하는 전시였기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 경우도 일단 예산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2) 서베이 전시는 '베스트 앨범'처럼 여러 심사위원이 선정한 좋은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인데, 201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전시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영향력이 점차 줄어드는 듯하다. 특히나 유망한 젊은 작가를 모아서 보여주는 형태의 전시에서는 그렇게 '새로운' 작가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작가들과 할 수 있는 색다른 시도를 제안한 경우. 1) 작가들의 B컷과 같은 작업들을 모아 보여주는 <B side>나, 도면처럼 작품을 만드는 과정, 전후 기록 등을 다룬 <도면함> 이런 전시는 컨셉트가 독보적인 전시다. 2) 비교적 단단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 안에 주제의식과 연관된 컨셉트를 가지고 디스플레이하는 형태의 전시이다. 작품과 작품이 부딪치면서 새로운 화음을 만들게 하는 경우 말이다. 작품 셀렉이나 작품 위치 선정이 중요해서 큐레이터쉽이 더욱 부각되는 경우인 것 같다.
제한된 예산, 시간, 인력을 활용해 기획전을 할 때 해외작가의 작품을 초청해서 전시하는 일은 특히나 독립큐레이터에게는 쉽지 않다. 그러니까 개인이 이렇게 하는 경우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여튼 좋은 주제 기획전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고,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로 영향력이 큰데, 이런 전시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또 내가 만들기도 어렵고..
"왜 전시를 만드는가?" "전시는 누가 보는가?" 이 질문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 같다. 근데 또 생각을 오래하다보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딜레마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고 왔다. 내가 보지 않아도 이미 엄청난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면 쿠키 영상이 있다고 해서 기다린다. 몇분이 지나도 크레딧이 계속 올라가는데, 정말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최소 천명은 넘을 것 같다. 그런데 그만큼 영상의 퀄리티, 효과, 스토리진행 등이 잘 만들어져 있다. 미술은 대부분 작가의 1인 제작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전의 경우, 그것도 메이저 갤러리의 초대전이 아닌 경우는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예산도 적고, 인력도 현저히 부족한 상황에서 개인의 피와 땀을 모아 만든 작품. 스펙터클의 시대에서 이런 미술작품이 힘을 가지려면, 혹은 다른 엔터테인먼트/문화 산업과 비교해서 바꿀 수 없는 독자적 가치를 가지려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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