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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 메모

진짜 생산자는 누구일까?

by ㅊㅈㅇ 2019. 7. 29.

 

국제행사의 코디네이터로도 일해봤고, 미술전문지 기자로도 일해봤고, 전시 기획도 해봤고, 잡지에 기고도 하고, 작가의 개인전에 서문을 쓰기도 하니 꽤 이런저런 포지션에서 일을 해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각 역할이 다 독립성을 가지고 있고,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결과물이 많이 달라지니까 모두의 역할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예술가, 작가가 아닐까 싶다. 예술가가 없다면 작품이 없고, 작품이 없다면 전시도 없고, 전시가 없다면 미술관도 없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경우에는 기획전을 꾸릴 때에, 평론가의 경우에는 주제비평을 할 때에 생산력이 가장 적극적으로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자기주도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내가 연구한 바를 소개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하면서도 기획자의 역량이 발휘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큰 규모의 회고전일 경우에 말이다. 어떤 작품을 셀렉하여 어떤 순서로, 어떻게 보여줄지를 결정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전시가 많이 달라지니까. 하지만 소규모로 신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의 경우는 대부분 작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기획자는 첫번째 관객이자 동지로, 의견을 말할 수는 있으나 작가가 그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뭐라 할수는 없다. 기획자가 기관에 소속된 경우에는 기관의 방침이나 예산의 한도 등 현실적인 조건에 맞게 진행하도록 조언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전시 서문과 같이 글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의 청탁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경우,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가 하고자하는 메시지에 충실하여 그것을 언어로 풀어쓰는데 집중한다. (빈약한) 나의 지식을 과시하려고 한다거나, 작가가 생각지 않는 방식의 내용을 내맘대로 기술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시작점이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재료, 만들어진 결과물, 그리고 공간 내에 펼쳐져있는 방식에 기반한 글을 쓴다. 그러니 나의 경우는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작품에 충실하게 기대어 글을 쓰는 셈이다. 전시가 열리고 난 뒤에 쓰여지는 비평이나 리뷰의 경우는, 평론가나 기자가 자신이 보고 느낀대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전시든, 작품이든, 글이든, '평가'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난 후에나 가능한 일 같다. 

너무 바쁘다보면, 혹은 시간과 돈의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작가가 아닌 다른 문화생산자들의 생산력/창조성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 열리고 있는 전시들을 모아서 정리만 하는 잡지의 특집, 작가의 개별 역량에만 기대서 하나마나한 제목을 붙인 기획전, 개인전/대관전만 선보이는 공간, 저명한 인사들만 모은 준비 안된 토크 행사들,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를 많은 글에서 똑같이 인용하는 평론가.. 그러다 보니 다 비슷비슷해지고 뻔해지고 지루해진다. 속도를 좀 낮춰서, 갯수를 좀 줄여서, 좀 오랜시간 생각하고 준비해서, 뭐랄까 좀 더 공들여서 만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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