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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후기] <제3의 과제전> 내부 워크숍(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2019.9.4)

by ㅊㅈㅇ 2019. 9. 9.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제3의 과제전> 전시 전경. 2019 

올해로 3회째를 맞은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의 <3의 과제전>은 격년제로 진행되는 행사로, 미술대학교 4학년 및 대학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모로 이루어진다. 학예팀은 전국 32개 대학 지원자 172명 중 최종 5명을 선정하였고, 선정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폭넓은 미술계 관객에게 각자의 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기존의 참여 작가들에 비해 점차 더 현장에서의 활동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선정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전시공간의 큐레이터와 함께 일 해본 경험은 많지 않았기에, 스튜디오 방문, 작품 선정 및 디스플레이, 프레젠테이션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을 모두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참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또한 사루비아다방이라는 대안공간이 가진 역사와 상징성, 그리고 거쳐 간 수많은 선배 작가, 큐레이터들과의 네트워크를 염두에 둔다면, 작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되며, 잠재적으로 새로운 전문가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생공간을 비롯한 수많은 전시공간의 생성과 다양화된 전시 지원 기금 등을 통해 신진작가가 전시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나 여건이 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해본다면, 신진작가를 골라 선보이는 공모 선정 형태의 전시의 파급력이나 호소력이 예전만큼 강하지 않을 수 있다. 일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은 예전에는 특별한 제목이나 부제 없이, <젊은 모색>전이었던 것에 반해, 올해에는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특정한 주제나 테마로 신세대미술의 경향을 진단하고 설명하는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공정성을 위해 매번 다른 외부 심사위원을 초빙하여 선정 기준이 들쭉날쭉할 수 있는 여타 공모전과는 달리, 사루비아다방에서는 내부 학예팀의 심사로만 진행되고, 단단한 학예팀이 있기에 주제 기획전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참여작가 5인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흥미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양현모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고명도의 세계에서 어둠을 회화 평면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스마트폰을 오래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밝은 불빛에 눈이 아플 때가 있는데, 그는 폰을 들여다보느라 그 빛에 얼굴이 하얗게 날아간 어둠 속의 귀신같은 인물을, 밝은 불빛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 실제 하늘대신 커튼에 무늬로 그려져 있는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감수성을 잘 드러내지만, 밝은 색채의 다른 작업들과 좁은 공간에 어우러지면서 그 진가를 다 발휘하지 못했나 싶은 아쉬움은 남는다. 김문기는 젊은 세대의 솔직함을 잘 표현한 작가다. 저렴하고, 가볍고, 운송이 쉽고, 보관이 용이한, 예쁜 색감의 조각 작업을 만들고자 했다는 그는, 스냅 사진과 비슷한 맥락의 스냅 조각을 제작해 왔다.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랑을 주제로 한 기념비는 속이 텅 빈 껍데기 같은 덩어리로, 가볍고, 솔직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전지홍은 지역, 유산, 문화, 역사와 라는 개인 사이의 연결지점에 관심을 갖는다. 지도든, 교과서든 그것을 그리는 혹은 기술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에서 재 기술하는 시도를 보인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민조는 자신감 있는 선, 빠른 호흡, 거침없는 색 선택, 묽은 질감, 많은 작업량 등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가진 작가다. 톤다운 된 색채에서 풍기는 물컹하고 비릿한 분위기 역시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이다. 인터넷 서치로 시작한 서커스를 다룬 작업은 이전 작업과는 달리 새로운 주제적 시도라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클리셰적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수민은 회화 평면의 형식 실험에 집중한다. 웹툰을 그리는 일도 병행한다는 작가는, 만화의 면을 분할해서 구축하는 것과 같이 캔버스 표면을 분할하고 구획하기도 한다. 특히 터너의 그림을 옮겨 재해석한 <Slave Ship>은 미술사적 맥락을 작업의 주제로 삼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학예팀의 존재 유무는 전시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인지 디스플레이에 있어서는 모두가 상향평준화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본질적인 고민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유행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흐름을 표피적으로 쫓지 않고, 작가로서 오랫동안 가지고 갈 연구 주제는 무엇인지, 왜 작업을 하는 지에 관한 내적 고민이 가장 중요하리라고 본다. 이는 참여 작가뿐만 아니라 기획자인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작금의 시대는 전시도, 작품도, 패션도, 음악도 모든 것이 다 호흡도 짧아졌고, 수용하게 되는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짧게 소비되고 버려지거나 잊히지 않는, 작업이, 혹은 작가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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