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예술경영의 올해 마지막 편집회의를 마쳤다. 2021년 한해를 돌아보며 어떤 이슈를 말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 문화다양성에 관해 짧게 썼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 이로부터 2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백신도 개발되어 많은 사람이 접종하였지만, 돌파감염과 변이 바이러스 등 2021년 12월 15일 확진자는 7850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팬데믹 이후의 삶은 많은 영역에서 변화했고, 복구 불가능해 보이는, 불확정적인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은 인류와 예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연대와 협력을 꾀하며 다양한 예술실험을 선보였다. 누군가는 진보에 대한 신뢰로 인간이 저질러온 만행을 반성하였으며, 누군가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누군가는 예술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믿어보며 순환적 생태계를 고찰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미술관은 무엇을 연결하는가: 팬데믹 이후, 미술관〉이라는 제목으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여, 팬데믹이 초래한 변화 속에서 바뀌어가는 미술관의 역할과 사회적 기능에 대해 논의했다.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살펴보면 문화 다양성에 집중하는 경향성을 볼 수 있다. 여성 서사, 퀴어, 인종적 다양성 등 백인, 남성, 이성애 중심의 주류 역사에 도전하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콘텐츠들이 점점 늘어나고 각광받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politacal correctness)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배제되어온 소수자의 존재가 가시화되는 경우가 급증했다. 이는 창작자들의 인식의 전환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도 점차 변화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국내 미술계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여성주의, 혹은 퀴어 미술의 확대도 눈여겨볼만 하다. 국내에서도 퀴어성을 드러내는 전시, 작품이 다수 있었으며, 양적인 팽창뿐만 아니라 미술의 영역을 급진적으로 확장해나가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퀴어는 이제 낙인이나 배제의 언어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2016년 ‘미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로 이어진 수많은 ‘미투’ 발언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견고한 연대를 만들게 했다. 여성 예술인 네트워크 ‘louise the women’, 여성 건축인 커뮤니티 ‘SOFA’, 여성 영상인 ‘FFF’, 여성전시기획자 모임 등 수많은 여성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에 선정된 정윤석 작가의 경우, 러브돌을 다룬 그의 작품〈내일〉이 여성혐오적 시선을 담아냈다며 작품을 철회하라는 대중의 의견이 공론화되기도 했다. 민감한 주제일수록 더욱 심혈을 기울여 담론 생성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빈약한 성 인지 감수성이 용인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화용 작가는〈몸이 선언이 될 때〉라는 기획전을 통해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그간 편견에 눌려 말할 수 없었던 여성과 소수자의 발언을 전시로 담아냈다. 2021 SeMA-하나 평론상에는 이연숙이 수상했는데, 그의 글은 ‘‘비체(abject)’의 개념을 통해 여성, 퀴어 예술가들 작품 속 물질과 실체, 정서를 분석하고, 타자적 존재의 감각을 세상과 인식의 혐오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그는 웹진 SEMINAR의 공동 운영진으로, 페미니즘, 퀴어 서브컬처에서 발견되는 소수자 문화의 저항형식을 주로 다룬다.
경기문화재단에서는 ‘더 나은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문화다양성 안내서’를 펴내기도 했다. 문화예술계에서 다양성을 침해하거나 특정집단을 혐오하는 일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관행적,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다양성 침해행위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이 안내서는 성평등언어의 활용부터, 혐오표현 방생 시 대처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영화〈매드맥스〉가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동시에 멋진 여성서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감독 조지 밀러가 완벽한 페미스트여서가 아니라,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극작가인 이브 엔슬러의 자문을 받아 문제가 있는 부분은 없는지 끊임없이 검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주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혐오를 양산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배제의 언어를 쓰지 않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과제로 모든 예술인들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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