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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 메모

글에 관하여..

by ㅊㅈㅇ 2021. 11. 18.

 

난 비평가가 아니라 거절했지만 어떤 웹진서 진행한다는 서베이


1. 처음으로 글을 썼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2012년 비엔날레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실무에 치여 미술사를 공부했던 것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담당해서 진행하던 작가의 작품에 관한 글을 쓰게 됐다. 해외감독이 기획한 비엔날레이고 외국 작가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고, 교육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료에게도 도움이될 것 같았다. 참여작가들의 정보가 담긴 브로셔도 제작되었고, 도록도 추후에 제작되기는 했지만, 진행 초기에는 자료가 많이 미비해 개인적으로 리서치하고 번역, 정리, 요약하는 일을 퇴근 후에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함께 일하는 해외작가들과도 소통하는 데 도움을 받았던 것 같고, 네이버 블로그에 그 글들을 게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 정보에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동료와 함께 잡지사에서 진행하는 비평 공모에 어플라이 하였고, 공모에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해당 잡지사의 기자로 일을 하게 되면서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환경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월간지는 편집기자, 에디터의 역할이 더 중요한 위치이다보니, 매달 잡지가 나와야한다는 빠른 속도의 삶에 지쳐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2.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나는 나 자신이 평론가, 비평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어떤 비평적 잣대나 명확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비판/비평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각 작가/작품이 가진 다양한 장점과 특성들을 오랜시간 면밀히 관찰하여 발견하고, 그것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언어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완전히 매몰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작가의 생각도 그래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가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작품을 읽거나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쓴게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가 있는 소지가 있는 경우 작가와 상의해서 작가가 원하는 대로 수정을 하기도 한다. 

(보통 엄청 꼿꼿한 비평가들은 절대 한 번 쓴 글을 고쳐주지 않으며, 매체에서 청탁한 글이라고 해도 기자가 상의없이 수정하는 경우 불 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제목도 못바꾸게 함. 그리고 본인의 잣대에 부합하지 않는 작가/작품의 경우에는 글을 절대 쓰지 않고 대부분 다 거절하며, '주례사 비평'처럼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칭찬을 써야하는 것을 변절(?) 수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글쓰는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본인 주도로 쓰는 주제비평은 아무래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원고료 넣으면 글이 나오는 '자판기식 비평'을 줏대없다고 엄청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

글쓰는 일은 나한테 엄청난 즐거움이다. 작품이나 전시에 관해 글을 쓰다보니 작가와 만나는 시간을 꼭 가지게 되고, 작업실에 방문해서 누군가의 작품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맺는 시간이 엄청 큰 행복감을 준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도 종종 받는데, 머릿속에 어지럽게 뒤얽혀있는 생각들이 글을 쓰면서 차곡차곡 정리되어 풀어져나오면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3. 글을 쓰는 것과 삶 사이를 이어줄, 지속 가능한 연결고리 같은 게 있을까요.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매 글은 나의 작품이기도 하고.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 가지는 창작욕? 물론 작가들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나는 유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작품과 전시에 관한 글 역시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출산 이후에는 사실 원고료가 주어지는 경우의 글쓰는 일만 거의 하고 있어서.. 지속가능한 연결고리는..;; 현실적으로는 돈이겠지만. 그 이전에는 누가 청탁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내가 관심있는 작가나 작품 전시를 찾아다니며 글을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큐레이터로서의 직업적 성취, 능력의 개발 뭐 이런 측면에서 글쓰기를 계속 했던 것 같다. 좋은 기획전을 만들기 위해 작가 리서치를 하고, 작가들이 가진 관심사는 뭔지 미리미리 알아놓고..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전시하기로 한 다음에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작가를 섭외하거나 찾는건 너무 힘든일이기 때문이다. 상황도 모르고 성향도 모르고.. 독립으로 전시 만들 때에는 이미 힘든 일이 많을거기 때문에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그리고 글 하나를 쓰고보면 또 다른 글이 쓰일 수 있게 되고, 누군가 한명을 만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책 한권을 읽으면 그것에 파생되어서 또 다른 책이 읽고싶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인것 같다. 그래서 글쓰기는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기를 집에서 키우면서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나에겐 글인 것도 같다. 

또 글을 썼던 이유 중 하나는 잊지 않기 위해서 였다. 전시 본 내용들을 기록하고, 간단하게라도 나의 감상을 적고, 사진으로 기록한 것을 정리해서 모아놓고.. 정보가 너무너무 많다보니까 사실 뭘 봤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도 기억이 잘 안날 때가 많다. 그런데 기록해놓으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가서 찾아볼 수 있음. 처음엔 네이버 블로그, 그다음엔 트위터, 이제는 티스토리 블로그를 기반으로 모아두고 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작가/작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리고 미술전공이 아닌 분이 읽고나서도 이 글은 다른 미술글들과 달리 명확히 아는 내용만 쓴 글 같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는 코멘트를 듣기도 했다. 그럴때 사실 엄청 큰 행복감을 느낀다. 작가나 큐레이터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어떤 통찰을 주는 글이 비평가가 쓰는 글이라면, 내가 쓰는 글은 더 넓은 대중을 향한 미술에 관한 쉬운 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무엇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집중하고 몰두하는 시간이 좋다. 아, 나만의 이상한 버릇이 하나있는데.. 컴퓨터에서 워드나 한글을 켜놓고는 글이 잘 안써지고, 일단 공책을 펼쳐서 펜을 들고 마인드맵처럼 내가 생각했던 중요한 단어들을 마구 쓰면서 순서나 개요같은 걸 잡는다. 그리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경우에는 대부분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한 뒤, 그 분량이 얼마나 많든지 꼭 전체를 다 다시듣고 녹취록을 만들어서 생생한 대화록을 가지고 있는다. 물론 공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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