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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4. 전시 서문

김민성 개인전 <MISSION CONTROL>(어울아트센터, 2022.3.14-4.2)

by ㅊㅈㅇ 2022. 3. 15.

어울아트센터 전시 전경 

 

회화적 설치: 가상과 실제의 경계

어울아트센터 갤러리명봉 <김민성 개인전> 2022.3.14.~4.2

 

비대면의 시대

20191231일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2018, 대한민국에서도 코로나19 의심환자가 확인된 이후 현재까지 누적 521만여 명이 확진되며, 연일 그 확진세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지난 2년 동안 우리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여럿이 모이는 일을 자제하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재택 근무하는 것이 당연해 졌다. 이제 우리는 어딘가를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최소화하면서 감염의 가능성을 줄이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개인의 작은 공간에서 다 이루어졌으며,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거치기만 한다면 큰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외부적 요인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경험하는 일을 지양하게 되다보니, 개인의 공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더욱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등을 이용해 온라인에 접속하는 일이 많아졌다. 뉴스도 읽고, 넷플릭스를 켜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멜론을 켜서 좋아하는 음악을 스트리밍하고,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고, 식자재 구입도, 은행이나 금융 관련 업무 역시 온라인에서 한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작은 컴퓨터 화면 위에서 이루어진다. 드문드문 띄워진 여러 창들은 내가 지금 어떤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대신 말해준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예술가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술 작품이 작가의 삶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담은 대상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삶의 변화가 작품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열린 창

플라톤은 회화를 환영(illusion)의 창조, 기만적 눈속임이라 말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실은 본질의 복제이고, 회화는 그러한 현실의 복제이기 때문에, 본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레온 바리스타 알베르티(L. B. Alberti, 1404~1472)<회화론(On Painting)>(1435)은 플라톤의 회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던 시기에 쓰인 책이다. 그는 자유로운 마음과 고귀한 지성의 소유자들이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회화를 보며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기술하며 회화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는 회화가 광학, 기하학, 수학의 원리에 입각한 지적인 활동임을 주장하고, 다른 활동보다 더 가치 있는 이유가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고대에는 건축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해, 집에 창문을 많이 만들지 못했고, 바깥 풍경을 실내에서 보기 위한 단순한 목적에서 바깥풍경을 그린 회화 작품을 실내에 걸었다. 화가들은 회화 작품을 통해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 재편집하여, 평면을 바라보지만 입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원근법을 활용했는데, “회화는 세상을 향한 열린 창이라는 알베르티의 표현은 당시 회화가 현실의 환영을 보여주는 창구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라는 개념은 여러 회화 작가들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데, 그 중에도 김민성이 바라보는 세상에 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김민성의 Desktop 1

김민성의 <Desktop 1>은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그린 작품이다.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에 그가 그린 것은 그의 데스크톱에 띄워져 있는 여러 창(browsers)들이다. 여러 종류의 창들은 화면 위에 여러 겹으로 겹쳐서 펼쳐져 있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지만, 동시에 대상을 명확히 읽을 수 읽을 만큼 자세하지는 않다. 관객은 흐릿하게 일그러진(blurry)한 이미지들을 통해 그것이 모니터 위의 풍경임을 알 수 있다. 에어브러시는 붓과는 달리 직접 화면에 닿지 않는 대신, 15~20cm 정도 화면 위에서 띄워져 있는 상태로 물감을 화면 위에 도포하도록 하는 도구다. 물감은 얇고 평평하게 화면 위에 뿌려지고, 매끈한 표면 처리가 가능해, 어찌 보면 온라인 환경에서 우리가 접하는 이미지와 가장 시각적으로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릴 때에는 캔버스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서 그림의 부분을 바라보게 된다면, 에어브러시로 그릴 때에는 캔버스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서 그리다보니 조망할 수 있는 화면의 부분이 조금 더 넓다는 차이가 있다.

<Desktop 1>을 살펴보면 관객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작가의 관심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유튜브의 재생 목록, 카카오톡의 채팅창, 주가지수를 확인케 하는 그래프,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장면, 스크린세이버로 활용한 자연풍경 사진까지.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컴퓨터 화면 상의 창들은 비단 작가 개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매일 접하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도상학적으로만 접근해 본다면, 변화한 시각 환경 속에서 오늘날의 일상을 담은 새로운 풍경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풍경화가 3차원의 현실세계를 2차원의 화면 위에 옮기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김민성의 풍경화2차원의 모니터 위 화면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3차원의 것을 2차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근법이 활용되었다면, 그의 작품은 애초에 그러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세로로 내어진 줄이 화면을 분할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각기 개별적으로 구분된 부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전체임을 암시한다. 여러 창들은 클릭 한번으로 하나의 창으로 줄어들 수도 있고 또 무한히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화면 내에서 이루어진 분할과 캔버스와 캔버스로 이루어진 분할은 따로 또 함께 공명한다. 이러한 장치는 하나의 화면 속에 여러 층의 면들이 이어진 형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김민성의 작품은 캔버스 내에서 그려진 이미지 자체로서 보다도, 그것이 전시장에서 어떻게 설치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제 회화는 개념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확장되고 있으며, 작가들은 공간에서 이루어질 관객의 경험까지도 세심하게 기획한다.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그의 작품은 크기대로 각기 다른 높이로 벽면에 걸리게 되는데, 가장 가까이에는 작은 크기의 작품이, 전시장 가장 안쪽, 즉 관객에게는 물리적으로 가장 먼 곳에 큰 크기의 작품이 설치된다. 회화 작품에서 원근법을 활용하는 경우, 먼 곳에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에 있는 것이 크게 그려지는데, 이러한 방식과 정 반대의 원칙이 적용된 듯 보이도록 한 것이다. 더 나아가, 가장 큰 크기의 캔버스들은 특정 위치에서 바라볼 때에 겹쳐보여서, 어디까지가 한 화면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화면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이어진다. 관객은 직접 전시장을 걸어 다니며 여러 시점에서 작품을 관람하게 되고, 우리의 시야에 당연하게 한눈에 들어오던 컴퓨터의 화면과는 물리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오늘날은 가상의 이미지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 정보가 한 데 뒤섞여 진실을 구별해내기 어려운 시대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와 영상들 속에서 회화는, 예술가는, 큐레이터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김민성은 다른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가장 동시대적 현상, 이미지를 에어브러시라는 도구를 이용해 매끈하게 그려내며, 회화적 설치 방식을 활용해 회화의 평면성, 원근법, 관객이 보는 방식 등 회화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직접 작품 사이를 거닐며 김민성이 만들어 둔 허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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