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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4. 전시 서문

김서울 개인전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디스위켄드룸) 전시서문

by ㅊㅈㅇ 2021. 12. 3.

 

필버트 패밀리 No. 13

김서울의 세 번째 개인전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디스위켄드룸, 2021.12.3~2022.1.7)에는 <필버트 패밀리(Filbert Family)> 연작 17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올해 상반기에 개최한 개인전 <A Beautiful Mind>(아트딜라이트, 2021.4.29~5.28)에 출품한 작품과 같은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이 전시되어, 지난 전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연작은 한 가지 개념을 집중해서 탐구하여 고민한 결과물로, 개별 작품의 특수성과는 별개로 공통된 개념적 토대를 공유한다. (작품명은 연작의 이름과 제작 순서에 따라 붙인 번호로 이뤄진다.)

연작의 제목 필버트 패밀리는 붓의 종류 중 하나인 필버트 붓(Filbert Brush)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이 붓은 헤이즐넛의 모양과 유사하게 타원형이며, 붓 머리는 납작하고 붓 끝은 뾰족한 특징을 가진다. 필버트 붓은 둥근붓과 납작붓을 합쳐놓은 것으로, 얇게 펴바르거나 두껍게 바르는 것, 곡선이나 직선을 그리는 것이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연작의 제목이 붓의 종류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붙여진 것은 이 붓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예상했겠지만, 출품작들은 모두 필버트 붓으로 그려졌다. 김서울은 고고학자와 같은 마음으로 한 제조사에서 만든 다양한 필버트 붓 25가지를 모두 구입하여 실험하였고, 필버트라는 형상을 하나의 모듈로 상정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다이아몬드, 타원, 하트, 격자무늬 등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수십여 종의 형태와 패턴을 추출했다. 그리고자 하는 형태에 따라 붓을 선택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붓이 그려낼 수 있는 형태가 캔버스 위에 옮겨진다는 점에서 무엇을 그리는지 보다는 어떻게, 또 왜 그리는 지가 작가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오랜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감상해 주기를 기대하고 바란다. 그렇지만 회화는 영상이나 퍼포먼스 달리 물리적 시간이 감상에 필수가 아니어서, 관객 대부분은 빠르게 그림 앞을 스쳐 지나가거나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으로 기록하고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작품을 직접 제작해 본 사람이라면, 어떤 물감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그림이 그려졌을 지 결과물만을 보고도 과정을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그렇지 않다.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관객이 그림을 보고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생각은 가장 먼저는 뭔지 모르겠다는 것 그 다음으로는 특정 이미지에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험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서울의 작품은 그려진 대상이 여타 작업에 비해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도상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요소다.) 오히려 제안하고 싶은 것은, 그의 작품이 어떤 순서로 어떻게 그려졌을 지를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이다. 김서울의 작품은 물감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제작됐는데, 작가는 관객이 제작 과정을 추적할 수 있도록 여러 단서들을 남겨두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먹거리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의 원산지를 표기하는 것이 법으로 지정되어 있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가 기반이 되어야 더욱 맛있는 음식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환경과 건강을 고려해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에 더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온다. 원료를 가공해 새로운 무언가를 제작한다는 점에서 회화 작품을 제작하는 것 역시 일종의 제조업이다. 다시 말해, 회화 작품에서도 어떤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을 매우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김서울은 뿐만 아니라 회화 작품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 모두 진지하게 고려하고 연구한다. 캔버스 천, 캔버스 나무 틀, 물감, , 프레임(액자)까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재료를 무비판적으로 쓰지 않는 대신, 최상의 재료 연구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김서울은 이전 연작을 진행하면서 올드홀랜드(Old Holland) 유화 물감 168색을 6년에 걸쳐 모두 구입하고, 벨라아르티(Bella Arti)사의 모든 캔버스 천 43종의 샘플을 모으는 등 재료 연구와 실질적 활용에 있어서 열정적인 연구자의 태도를 취한다. 그는 많은 젊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에어브러쉬나 롤러 마스킹테이프 등 더욱 매끈한 표현이 가능한 재료를 쓰지 않는 대신 붓과 물감과 같은 고전적인 매체를 이용해 금방 휘발되지 않는 단단한 작품을 지향한다.

필버트 패밀리 No. 10, 11
필버트 패밀리 No. 19

더 나아가 이번 전시 출품작 중 비교적 작은 크기의 작품들에 액자를 제작하였는데, 모두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대부분 액자라고 하면 기능적인 측면에서 액자를 떠올리게 된다. 다시 말해,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서울은 기존 의미의 액자라기보다는 작품과 함께 기능하는 일종의 구조물로 액자를 상정하며, 더 적극적인 조형 언어로 활용한다.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 작품 내부의 조형 언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액자를 제작하는 것이다. 액자는 그림을 일종의 가구처럼 만들어주는 틀로, 다양한 나무의 종류, 형태, 반사되는 물질의 결합 등을 통해 회화의 문법을 확장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작품의 양 옆과 위아래, 네 면을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액자 안쪽에 설치하는가하면(필버트 패밀리 No.10, 11 작은 버전), 작품에서 나타난 모듈을 액자의 형태에서도 반복하여 확장시키는 등(필버트 패밀리 No. 19 작은 버전) 액자의 실험적 활용을 확인해볼 수 있다.

<필버트 패밀리 No.13>은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좀 눈에 띄는 작품이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물의 외관 같은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일루전으로서의 회화를 지양해 온 작가의 그간 작업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필버트 붓을 이용해 건물에 필요한 건축 자재들을 하나하나 직조해서 쌓아올렸다. 아래에는 좀 더 단단하고 무거운 느낌의 자재를 표현했다면, 위로 올라갈수록 채도도 놓아지고 더 가벼운 느낌을 표현했다. 몰딩 페이스트, 콜드 왁스, 색연필, 유화 물감 등을 이용했다. 이 작품에 관해 말하면서 작가는 제작에 필요한 여러 재료들을 조화롭게 쌓는다는 의미에서 회화를 건축에 비유하여 언급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20155월 씨네 21에서 글쓰기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한 것이라 믿고 있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거기 있을만하고, 또 있을 필요가 있는 건물이 지어졌으면 한다. 한편의 글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인식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장인은 원하는 자재를 찾아 전국을 누비기도 할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정확하게 실어 나르는 문장은 하나뿐이어서 노력하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셋째, 건축적으로 배치할 것. 14개의 기둥 혹은 벽돌이 필요한 집이라면 그 개수만큼 단락을 만든다. 모든 단락의 길이를 똑같이 맞춰서 쌓아올린다.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한 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이 건축물은 무너진다.”

건축도, 글쓰기도, 그림도, 적합한 재료를 찾아 조화롭게 배치하고 무엇보다도 창작자만의 고유한 인식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모든 것이 과잉으로 넘쳐흐르는 오늘날, 그것만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서울이 전시에 붙인 제목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는 영화 <타인의 삶>에서 반체제 발언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스승이 제자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악보다. 제자인 게오르그는 스승을 위해 기꺼이 진혼곡을 쳤고, 게오르그를 감시하던 비즐러는 이 음악을 듣고 감화되어 눈물을 흘린다. 예술적 공감은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며, 비즐러로 하여금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도 타인의 삶에 뛰어들게 만든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에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김서울의 고지식한 태도를 이번 전시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길 바란다.

2021.11.30. 최정윤(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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