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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7. 번역, 요약

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인식」, 1981

by ㅊㅈㅇ 2016. 4. 28.

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인식”, 1981

리차드 볼턴, 의미의 경쟁(20세기 사진비평사, 눈빛, 2001, pp.25-35.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1980년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20년대의 미술>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미술관이 설립된 첫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당대 회화, 조각, 건축, 판화, 디자인 작품이 전시됐다. 뒤샹의 <큰 유리>가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작품이었으나, 전통 장르 중 어디에 소속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려웠으며, 전반적으로도 회화나 조각보다는 사진, 영화, 디자인 작품이 더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MoMA50주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사진은 이 전시보다 피카소 회고전과 앤셀 애덤스 사진전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그 시기에 <아트 인 아메리카>에서는 피카소 특집을 마련하고, 피카소 심포지엄이 열렸으며, 많은 예술전공자들이 피카소를 신화화하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우리에게 자유에 관한 놀랄 말한 계시를 주었고, 우리 시대의 아방가르드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우리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잊어서는 안된다. 피카소의 큐비즘적 콜라주 작품에서도 모더니즘의 진보적 발전이 있어왔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가는 무엇을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이미 있었던 것을 취할 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만드는 것과 만든 것을 취하는 것. 정확히 이 지점에 회화와 사진의 존재론적 상이점이 위치한다. 회화는 그려지는 것이고, 사진은 찍히는 것이다. 앤셀 애덤스와 존 사코우스키는 둘 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작가의 주관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애덤스는 주어진 주건 아래 최상의 명징성과 완벽성을 추구해야한다고 말하고, 사코우스키는 삶의 실체에 대한 감각을 단순화하는 새로운 체계를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뉴욕 공공도서관 미술건축분과 사서로 줄리아 반 하프텐이라는 여성이 있다. 사진에 관해 공부하면서 자신의 도서관이 19세기부터의 빈티지 프린트를 포함한 많은 사진이 소장돼 있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중에서 몇몇을 발췌해 전시회를 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서관이 소장한 사진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줄리아 반 하프텐은 고미술과 건축분과를 판화분과와 통합하고, 기타 분과에서 모은 사진을 모아 미술, 판화, 사진 분과를 만들고 있다. 사진자료들은 작가들의 가치에 따라 재분류되고 있는 중이다. 1839년에 발명된 사진은 1970년대에 이르러 사진 그자체로 발견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코우스키는 예술 매체를 모더니즘적으로 구현하기를 원했고, 사진은 다른 어떤 예술 양식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는 새로운 양식으로, 사진이 재배치되기 시작하였다. 사진은 이제 미술, 사진 분과에서 보여짐으로써 기록, 증거, 예시 목적에 봉사하지 않게 된다. 18세기말 회화와 조각이 궁중과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미술관으로 들어가면서 자율성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스페인 내전을 알려주던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앞으로 그 작가 개인의 사진 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은 끝났다는 것으로서의 부정의 의미로 쓰이는데, 이는 어떤 긍정적인 대안으로서는 실패한 용어다. 사람들은 반혁명, 다원론, 예술에 있어서의 환상적 자유 등을 포스트모던과 동의어로 많이 쓰지만. 이런 현상을 포스트모던이라 지칭하는 것보다는 위축된 모더니즘, 화석화된 모더니즘으로 부르는 것이 낫다. 이는 모더니즘의 죽음에 따르는 병적 증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이 미술관으로 들어가고 자생적 예술로 새로운 지위를 갖게 되는 것 역시 모더니즘이 죽어가는 징조로 본다. 모더니즘적 의미에서 사진은 홀로서지 못하기에 하나의 예술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더니즘적 예술로서의 자기반영성을 가지는, 사진의 문법을 제대로 살린 사진이 있기는 했다. 스티글리츠가 극히 소수 사진에만 모더니즘의 자격을 부여했던 데 비해, 사코우스키는 사진 자체에 부여한 것이다. 사진에 대한 이런 이해는 전적으로 모더니즘을 곡해한 결과였고, 바꿔 말하면 모더니즘이 기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사진이 모더니스트 매체로 재평가되는 순간, 모더니즘은 끝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진이 모더니즘을 곡해하고 오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진이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 모더니즘을 오용한 부정적인 사례라면, 그 오용의 긍정적인 측면은 회화와 조각으로 정연하게 나눠지던 모더니즘의 순수한 체계를 오염시켰다는 데 있다. 에드워드 루샤<26개의 주유소>는 미술분과에 정리돼 있어야 했지만, 자동차 고속도로 분과에 꽂혀 있었다. 도서관에서 미술책을 어떻게 분류하느냐 하는 것은 루샤의 책과는 관련이 없다. 현재 분류체계로는 어디에도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여러 사망 징후와 모더니즘의 긍정적 대안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화석화된 모더니즘인 엘리자베스 머레이, 브루스 보이스의 회화과 모더니즘의 대안인 에드워드 루샤의 사진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름 아래 전시된다. 루샤의 사진은 모더니즘의 안식처였던 미술관을 탈출해 나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다원적 관점은 모더니즘의 시작을 마네제롬, 혹은 마네와 디즈데리가 열었다는 말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디즈데리는 최초의 명함판 사진을 만들어 사진의 상업화에 성공한 사람으로 그의 보잘것없는 명함판 사진은 현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벽에 <다게르 이후의 국립도서관의 걸작들>이라는 이름으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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