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희 <Call It Gala>Alkyd, pencil, oil on canvas 60x70cm 2017
이환희 <Gala> Alkyd, pencil, oil on canvas 199x255cm 2017
“추상으로의 환원은 매스미디어의 시각 이미지 과잉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무언가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나 내러티브가 없다면, 관객은 본다는 행위가 부여하는 즉각적이고 감각적 경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 추상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표현이라는 추상표현주의 개념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 추상회화는 매개 과잉인 현대사회에 하나의 해독제로 작용할 수 있다.” 1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맥락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 진 것인지,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얼핏 이환희의 작품은 두꺼운 마티에르(matière; 재질감)를 가진 추상미술의 일종이 아닐까 손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외관상 그렇게 볼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인 앵포르멜은, 기하학적 추상에 대응하여 현상을 부정하고 일그러진 질감의 효과를 살려 주관적인 표현을 한 국제적인 예술운동이고,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이름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기법적으로 일견 유사한 면모를 찾을 수 있다 할지라도, 이환희의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 색 선택의 방식, 표현 대상 등은 20세기 중반의 추상회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먼저 개인의 감정이나 표현방식의 주관적 특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표면 위에서 강조되는 물(物) 자체의 특성에 부여하는 의미가 상이하다. 작가 개인의 배경이나 제작 의도를 조금 더 가까이 살펴보도록 하자.
이환희는 1990년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조소과를 졸업한 그가 왜 평면회화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을까? “구상부터 완성까지 조각보다 상대적으로 즉각적이었기 때문에 회화를 했다”는 그는 “이렇게까지 해도 회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는 화면 위에서 선택한 색의 물감으로 다양한 질감 표현을 시도한다. 물감이 두껍게 여러 층 쌓인 화면이 있는가하면, 나이프로 깎아지르듯이 깔끔하게 덮은 부분도 있고, 물감을 튜브에서 바로 짜낸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있다. 재료 역시 특이하다. 알키드(alkyd)라 불리는, 물감을 섞을 때 사용하는 화합물을 그 자체로 작품의 재료로 쓰기도 하고, 색연필이나 연필과 같은 건성 재료를 유채 물감과 함께 쓰기도 한다. 특정 도상들은 각기 다른 작품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기호로서의 의미가 강조되는 형태는 아니다. 해독하기 어려운 기호들은 여러 작품에서 파편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그것들을 한 화면에 모아놓은 작품이 <Lancer>다. 이 작품에는 여러 작업에서 활용되는 모티프가 마치 지도의 범례처럼 가로로 길쭉한 화면에 배치된다.
이환희 <Lancer> alkyd, pencil, colored pencil, oil on canvas, 20x240cm, 2017
전시 제목은 Gambit이다. Gambit은 전략, 책략이라는 뜻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Gambit은 “초반에 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수(말이나 행동)”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어떤 전략인 것인지 앞에 그것을 설명하는 형용사가 없다.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일까? 무엇을 위한 전략일까? 전략 그 자체가 전략이 되는 것일까? 그가 보여주는 제스쳐나 형식 실험 그 자체가 곧 그만의 전략이 된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는 정신적인 것, 정서적인 것, 의미적인 것에 크게 의의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우 이성적이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또한 그가 활용하는 다양한 기법과 두터운 마티에르는 그것을 통한 특정한 감정의 표출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질감을 활용하는, 유희적 태도에 더 가깝다. 이러한 유희 충동은, 목적합리성과 기능주의, 엄숙주의에 대한 우회적 저항으로서 일종의 비판적 태도로 읽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소피스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선보인 새로운 시도로는 단연 오브제 작업을 꼽을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Katana>, 알루미늄으로 주조한 <Plaster>, 리셉션 데스크 앞에 놓인 <Understatement>, 안쪽 전시장에 위치한 <Mediocre Porn>과 <Portrait of a Website Recently Bought> 총 다섯 점이 조각적 오브제다. 이환희가 평면 위에서 하고 있는 실험과 비슷한 맥락의 덩어리들이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 온 셈이다. 납작하게 누워있는 육중한 <Katana> 양 끝 귀퉁이에는 이전 회화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심벌인 y자 형태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Booty Calls>와 같은 회화 작품의 양쪽 상단에 보면 유사한 기호를 발견할 수 있다. 우툴두툴한 표면과 그것을 뒤덮은 폴리우레탄 고무 재질은 그의 평면 작업에서 느낄 수 있던 감각적 요소들을 3차원에 그대로 옮긴 듯한 느낌을 준다. 이환희의 작품은 외부의 대상물을 모방하거나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작품 스스로 그 대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자기참조적(self-referential)인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환희, <Katana> Resin, polyurethane rubber 13x136x176cm 2017
이환희 <Booty Calls> Alkyd, pencil, oil on canvas 181x211cm 2017
이환희가 작품에 개별적으로 붙인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작품의 내용을 유추하는 데 일절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작품명은 모두 영어 단어로 이뤄져 있는데, 뜻을 알고 있는 평범한 단어도 있고, 알 수 없는 줄임말인 것도 있고, 대략 해석은 되지만 그게 왜 이 작품의 제목인지 도저히 작품과 연결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도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이전에 입구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게 뭔지 어리둥절했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전시를 다 보고,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는 작품명이 적힌 캡션을 읽어보고 나면 알 수 있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이름을 쭉 나열한 형태의 포스터라는 것을 말이다. 여러 이유에서 좋아하는 단어들을 쭉 모아두었다가, 작품이 완성되는 시점에 그에 걸맞은 단어를 취사선택해 임의로 제목을 붙인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선택하는 재료, 표현방식, 이미지, 제목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 과정에서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건조한, 혹은 이성적인 그만의 원칙에 따르는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글 서두에 인용한 글에서 추상으로의 환원이 꼭 기존의 형식주의적 작업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추상미술을 이미지 과잉 시대의 해독제라고 표현하며, 관객이 감각적 경험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고 적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환희의 작업을 마주하는 관객이라면 분명히 재료가 가진 물성의 실험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추상회화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재료나 맥락, 접근 방식에서의 차이가 뚜렷하다. 형용사가 생략된 전략 그 자체가 이환희의 전략이라면, 전통적인 방식의 회화적 표현의 외피를 입는 것 이외의 방식으로 그의 개념을 구현할 수 없을지 궁금해진다. 형식이 곧 내용이 되는, 그의 개념적인 회화 작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주되며 이어져나갈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소피스갤러리 설치전경 2017
-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 『테마 현대미술 노트』, 문혜진 옮김, 두성북스, 2013, p. 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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